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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대통령까지 나섰지만…SW수업시간 4분의1로 줄인 교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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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개혁 가로막는 교피아 ⑤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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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전국 중학교에서 소프트웨어(SW) 교육이 의무화됐지만 전라북도 무주군 일부 학생들은 아직 배우지 못하고 있다. SW를 가르칠 정보·컴퓨터 교사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무주군에 있는 6개 중학교에서 SW를 가르칠 기간제 교사를 뽑으려 했지만 단 한 명도 지원하지 않았다. 무주군은 올해 정보·컴퓨터 정교사를 선발해 내년부터 교육을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전라북도 소재 한 중학교 교사는 "교사 수를 늘릴 수 없는 이유는 해당 과목의 '시수(時數·정해진 수업 시간)'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시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SW 교육이 의무화됐지만 시수는 '눈 가리고 아웅' 수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인재 양성을 위한 코딩 교육이 시수를 둘러싼 교피아(교육+마피아)의 집단 이기주의로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SW 교육이 추가돼 다른 과목 시수가 줄면 해당 교사 숫자 또한 줄어야 하는데 이 점이 관련 사범대 학과 존폐 여부에 영향을 미치면서 일부 교사·교수들이 SW 교육 확대를 막고 있기 때문이다. 정권 초기 청와대의 강력한 SW 교육 확대 의지가 교육부와 사범대라는 교피아 연합군의 강력한 수비에 좌초된 사례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013년 3월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직후 '창조경제' 주무 부처로 신설된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SW 교육 의무화를 추진했다. 같은 해 10월 미래부는 'SW 혁신 전략'을 발표하면서 별도 SW 과목의 정규과목화를 강하게 추진했다. 윤종록 당시 미래부 차관(현 가천대 석좌교수)은 "별도 정규과목 형태로 일주일에 3시간씩 모두 68시간의 시수를 추진했지만 교육부는 움직이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교육부의 몽니 배경에는 SW 시수가 늘어나는 만큼 자기 과목 시수가 줄어들 기술·가정 교사들의 반발이 자리 잡고 있었다. 교육부는 난색을 표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교육부가 2014년 6월 개최한 SW 정규과목화 전문가 간담회의 경우 12명 전문가 중 SW 전문가는 2명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기술·가정 담당 교사나 해당 학과 사범대 교수였다. 이들을 이 자리로 부른 건 교육부였다.

한국정보과학교육연합회가 개최한 SW 의무교육 관련 세미나에는 이를 반대하는 교사와 교수들이 행사장을 점거하고 행사 진행을 방해하는 일도 벌어졌다. 김현철 고려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교육계에서는 SW 교육을 추진하는 사람들을 손가락질하며 밥그릇 지키려고 애쓴다는 표현까지 했다"며 "교육계는 '철옹성'과 같았다"고 말했다. 그 다음달인 2014년 7월 부처 합동 'SW 중심사회 실현 전략' 발표 행사 당일, 당시 행사 참석자들에 따르면 대통령은 교육부 고위 관계자에게 "SW 교육 하실 거죠"라고 한 번 물었는데 교육부 고위 간부는 대답하지 않았다. 같은 질문이 재차 이어지자 교육부 간부가 "네"라고 대답했다. 같은 해 9월 나온 '2015년도 교육개정안'에 SW 교육 의무화 방안이 가까스로 포함됐지만 시수는 초등학교 5·6학년 기준 주 1시간(총 17시간)에 그쳤다. 별도 과목 신설은 무산됐고 SW 교육은 실과 과목의 일부 단원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2015년도 교육 개정을 검토하던 '국가교육과정개정연구위원회' 11명은 모두 사범대 교수 출신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수도 34시간에 그쳤다. 이렇게 기술·가정 계열 교사들은 시수, 바꿔 말하면 자리를 지켰다. 반면 일선 초·중·고교는 SW 교육을 다른 과목 교사들의 별도 연수나 기간제 교사 선발로 갈음할 수밖에 없게 됐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부 또한 SW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며 "다만 시수 싸움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답을 찾기 힘들었다"고 해명했다. 업무에 관여했던 당시 미래부 관계자는 "교육부는 시수로 인한 교사, 교수들의 요구에 끌려다니기만 했다"고 했다.

1954년 정부가 내놓은 '교육과정 시간 배당 기준령'에 따른 시수는 2019년 현재까지 바뀌지 않고 있다. 과목 담당 교사, 교수 간 밥그릇 싸움이 치열해지면서 시수를 건드리는 일은 '금기(禁忌)'가 됐기 때문이다. 교육 개정 때마다 일부 과목 시수가 줄면 관련 교수·교사들이 교육부와 시수를 평가하는 교육과정평가원 등을 찾아 시위하는 일이 일상화됐다. 김진형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장은 "결국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인 한국 학생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적은 SW 교육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은 2014년 9월부터 초등학교에서 필수과목으로 180시간씩 컴퓨터를 가르치고 있고 미국 시카고 역시 같은 해 컴퓨터과학을 별도 정규과목으로 승격했다.

미래부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바뀐 문재인정부 들어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정부 출연 연구소의 한 책임연구원은 "교육부가 머리띠 매고 시위하는 사람들만 두려워하면서 정작 학생을 외면하고 있다"며 "교육부가 중재에 나서기는커녕 목소리 큰 사범대나 교원단체 말만 듣고 안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 = 정석우 기자 / 원호섭 기자 / 고민서 기자 / 김유신 기자 / 윤지원 기자]

[반론보도] "대통령까지 나섰지만…SW수업시간 4분의1로 줄인 교피아" 관련 반론보도문

본 신문은 2019. 4. 26. "대통령까지 나섰지만…SW수업시간 4분의1로 줄인 교피아"라는 제목으로 "교육부가 SW교육 확대를 꺼리며 사범대 출신들의 의견에 끌려 다닌 결과 한국 학생들이 세계에서 가장 적은 SW교육을 받게 되었다"는 취지로 보도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교육부는, 전문가 의견을 다양하게 청취하고 교육학적 관점을 고려하여 교과과정을 정하고 초·중·고 SW교육을 확대하였으며, 한국 학생들이 가장 적은 SW교육을 받는다는 기사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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