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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학생끼리 문제풀이 토론… 시끌벅적 교실서 창의력 ‘쑥쑥’ ['2019 미래교육' 현장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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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서울 창덕여자중학교 르포 / 교사가 전자노트·PC 이용해 수업 진행 / 매 과목 촬영 바로 유튜브에 올려 ‘복습’ / 모르는 부분 친구가 알려주도록 지도 / 자율적 학업 속 소통력·대인관계 체득 / 2015년 ‘서울미래학교 연구학교’ 지정 / 1인1태블릿·3D 프린터 등 ‘첨단’ 무장

세계일보

서울 창덕여자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지난 23일 오후 수학시간에 개인별로 제공된 태블릿PC를 활용해 수업을 듣고 있다. 이제원 기자


“저희가 좀 자율적이라서… 수업 초반은 어수선할 거예요.”

지난 23일 오후 2시50분. 서울 중구에 있는 창덕여중의 김유정 교사가 6교시 수업으로 향하던 중 말했다. “네네.” 으레 하는 말이겠거니 싶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수업에 들어가기 전 눈에 띈 ‘자율성’이라곤 학생들의 복장 정도였다. 교복, 체육복, 교복 하의에 체육복 상의, 혹은 그 반대, 그 위에 사복을 걸친 학생까지 수많은 조합의 ‘패션’이 바쁜 걸음으로 복도를 쏘다녔다. 하지만 어떤 옷을 입었든 교사와 마주치면 “안녕하세요. 선생님”이라며 고개를 숙이던 아이들이 대부분인지라 김 교사가 말한 ‘어수선’이란 상황이 머릿속에 쉽게 그려지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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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뒷문에 들어서자 12명의 학생이 토끼눈을 뜨고 뚫어져라 쳐다봤다. 김 교사가 “우리 누가 뒤에서 보고 있는 거 익숙하잖아”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웃음으로 수긍하며 이내 옆자리 친구들과 이야기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서울시교육청은 2015년부터 창덕여중을 ‘서울미래학교 연구학교’로 지정해 운영 중이다. 창덕여중의 교육법을 참관하러 찾아오는 국내외 교육 관계자만 해마다 1000여명에 이른다.

김 교사의 담당 과목은 수학. 수업은 일종의 전자노트인 마이크로소프트의 ‘원노트’를 활용해 진행됐다. 학생들의 책상마다 화면에 자물쇠 표시가 뜬 태블릿PC가 한 대씩 놓여 있었다. 잠금장치로 교사가 중앙통제를 할 수 있도록 해 수업의 집중도를 높였다. 교실 뒤편엔 수업 장면을 찍는 휴대폰이 삼각대 위에 올려져 있었다. 수업이 끝나면 바로 유튜브에 수업 동영상을 올려 학생들이 언제든 볼 수 있도록 했다. 수업 및 필기 내용도 자동으로 인터넷 드라이브에 저장돼 간편하게 복습이 가능했다.

기자의 중학생 때와는 사뭇 달라진 교실을 둘러보던 중 어느새 수업은 시작해 있었다. “차렷! 경례∼”가 없어 알아차리지 못한 걸까. 그래서만은 아니다. 흔히 “눈알 굴러가는 소리 들린다”는 엄포와 함께 교단을 향해 일제히 집중하던 전형적인 교실의 풍경이 없었다. 대신 교사와 학생이 끊임없이 질문을 주고받는 가운데 시장통 한복판에 서 있는 듯한 시끌벅적함이 교실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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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수업에선 중3 교육과정 중 합차공식의 인수분해를 배웠다. 교사의 개념 설명이 끝나자 학생들은 태블릿으로 전송된 응용문제 풀이에 나섰다. 미션 해결방식으로, 자신이 이해했다 생각하면 손을 들어 교사를 불렀다. 교사가 지정해 주는 문제에 정답과 함께 풀이과정까지 말로 설명하면 통과, 미진하다 싶으면 다시 문제풀이에 들어갔다.

김 교사는 교실 곳곳을 돌아다니며 “(이해하는 데) 개인차 있을 수 있으니까 모르겠으면 물어봐”라고 거듭 강조했다. 묻는 대상은 교사가 아닌 양옆의 친구들이다. 4명씩 나뉜 세 분단은 형식에 불과했다. 학생들도 교실을 돌아다니며 다른 학생들과 토론을 벌였다. 3학년인 전희주 양은 “친구에게 물어보면 ‘우리만의 언어’로 자연스럽게 얘기하니까 빨리 이해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참관자’를 아랑곳하지 않았다. 수업이 끝날 때까지 “조용히 해”라는 말은 교사가 아닌 학생의 입에서 나왔다. 주변의 열띤 토론에 친구가 해주는 설명을 듣지 못한 학생의 ‘투정’이다. 앞서 만난 유인숙 교장이 “우리 학교는 엎드려 자는 학생이 없다”고 말한 것이 떠올라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김 교사는 이 같은 수업방식이 미래에 필요한 창의력 등을 길러줄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인성교육도 대신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학생들이 서로 끊임없이 질문하면서 ‘소통’을 배울 수 있어요. 대인관계란 무엇인지, 사람 대 사람으로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 수 있죠”라며 “그래서 우리 학교가 학교폭력이 적은 편인지도 모르겠네요”라고 말했다. 김 교사에 따르면 창덕여중에서 학교폭력은 학기당 평균 1건 정도 발생하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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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여중은 4년 전 미래학교로 지정된 뒤 주로 ‘테크놀로지 학교’의 상징으로 소개됐다. 1인 1 태블릿, 7∼8대의 3D 프린터를 갖춘 공방, 학생들이 동그랗게 모여 앉을 수 있는 원형 회의실 등 넉넉한 스마트기기와 ‘혁신공간’을 갖춘 학교로 대변되곤 했다. 그러나 유 교장은 “우리 학교의 강점에서 스마트기기, 혁신공간이 차지하는 비율은 불과 20% 정도”라며 “나머지 80%는 학생들의 소통, 자율성에서 나온다”고 설명했다.

“오늘 평소보다 굉장히 빨리 풀었네? 기자님 매일 오시라고 해야겠다.”

오후 3시35분, 수업을 마치자 학생들은 뒤편을 흘깃 쳐다보더니 저마다 웃음꽃을 피우며 우르르 교실을 빠져나갔다. 창덕여중은 교과교실제 운영학교로 학생들이 수업마다 반을 이동한다. 학생들도 신경이 쓰이긴 쓰인 걸까. 물었다. “평소에도 분위기가 이래요?” 김 교사가 말했다. “비슷해요. 오늘은 조금 더 들뜬 것 같기도 하고….”

이동수 기자 samenumbe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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