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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김진의 나 혼자 간다](5)훌라춤보다 매혹적인, ‘불의 땅’에 핀 생명과 풍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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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하와이

경향신문

빅아일랜드 19번 하이웨이에서는 압도적인 풍광 덕분에 보통사람도 근사한 사진 한장쯤은 건질 수 있다. 왼쪽으로는 푸른 태평양이, 오른쪽으로는 황량한 초원과 용암이 굳어버린 드넓은 땅이 감탄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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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은 서쪽, 다른 날은 동쪽에서

호놀룰루의 숨은 해변과 풍경을 담고

코나 커피를 마시고 맥주를 홀짝이며

별것 없는 일상에 감사했다

마우나케아의 장엄함에 경탄

화산국립공원의 분화구 속을 걸으며

몇 줌의 흙을 디디고 핀 꽃을 보고

처음으로 생명력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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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주문 같은 말, 알로하!

하와이 원주민은 뉴질랜드의 마오리족과 비슷한 외모를 가져서 오래전부터 궁금했고 끌렸다. 뉴질랜드 오클랜드 박물관에서 폴리네시아인의 이주 역사가 그려진 지도를 마주했을 때, 태평양을 길게 항해하던 선을 따라 뉴질랜드에서, 피지에서, 사모아에서, 하와이까지 나의 여행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하와이엔 어디나 ‘알로하(Aloha)’가 있다. 사랑을 고백할 때도, 미안할 때도, 만날 때도, 헤어질 때도 ‘알로하!’. 모든 감정을 하나에 담은 말은 어떤 광고 카피보다도 강렬한 메시지를 전한다. 지금의 알로하는 ‘당장 이걸 사세요!’라는 의미 같다. 공항에도, 광고판에도, 서핑보드에도 수영복 엉덩이에도 알로하가 있다. 훌라춤이 없는 하와이도 상상하기 어렵다. 크루즈에도, 호텔 로비에도, 온갖 관광책자에도 훌라춤 일색. 제례의식이자 구전문학이었던 훌라춤의 의미는 온데간데없고, 원주민은 조개 껍데기와 꽃을 목에 걸고 엉덩이를 흔들어대며 알로하를 주문처럼 외웠다. 호놀룰루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이방인들은 마법에 걸리고 만다. 놀고 먹고 자고 돈 쓰는 것 외에 딴 생각을 하는 것은 휴양지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듯이. 두둑한 지갑을 들고 렌터카 사무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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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를 대표하는 와이키키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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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은 할 줄 알죠?”

물론. 마음을 완벽히 끈 것은 원색의 컨버터블 차였지만 너무 비싸서 이내 마음을 접고 연식이 몇 년 된 아반떼를 빌렸다. 하와이의 모든 것은 비싸다. 렌터카도 가장 싼 것이 하루에 15만원이 넘었다. 그러나 하와이에서 차를 빌리지 않고는 도무지 제대로 된 여행을 할 수가 없다. 와이키키에만 머물 예정이라면 모르겠지만 섬을 구석구석 훑으려면 차가 필수다. 미국에서 차가 필요없는 곳은 아마도 뉴욕뿐일 것이다. 내 생애 가장 비싼 렌터카 비용을 지불하고 나서야 로망은 실현되고 있었다. 하와이에서 드라이브라니! 컨버터블은 아니지만 창문을 활짝 열면 비슷한 느낌은 난다. 푸른 공기를 가로지르며 긴 머리를 휘날리면서 운전을 한다. 스카프는 꼭 짧게 매야겠지. 이사도라 던컨처럼 자동차 바퀴에 스카프가 끼여 질식사를 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햇빛은 작살처럼 무섭게 내리꽂혔지만 바람은 시원해서 어디든지 한없이 달려나갈 것 같았다.

■관광객을 마취시키는 호놀룰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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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적인 풍경을 간직한 사우스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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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후섬에서는, 누구나 그러하듯이 와이키키 비치 부근에 짐을 풀고 일주일을 보냈다. 해가 뜰 때는 다이아몬드헤드 전망대를 찾아 와이키키를 내려다보고 새파란 바다와 고층빌딩이 비대칭적으로 펼쳐지는 근사한 풍경에 감동을 받기도 했다. 내려오면서 인공시럽으로 물들인 무지갯빛 빙수를 사먹었다. 어느 날은 서쪽 끝까지, 또 다른 날은 동쪽 끝까지 달리면서 숨은 해변을 찾아냈고 바위 사이로 바닷물이 뿜어 오르는 광경을 구경하고 모든 전망대를 찾아다니며 풍경을 눈에 담았다.

도심에서는 치즈케이크와 팬케이크, 미국 스타일의 스테이크를 사먹고, 우연히 페루 음식점을 발견해 중남미 요리를, 외곽의 푸드트럭에서는 그 유명하다는 새우 요리를 두 번이나 사먹었다. 운전하다가 졸리면 마을 어귀에 차를 세워 잠을 청했는데 험상궂게 생긴 원주민이 차 안을 들여다보는 바람에 깜짝 놀라 운전대를 잡고 총알같이 와이키키로 돌아오기도 했다. 햇볕에 온몸이 그을린 서퍼들과 챙이 넓은 밀짚모자를 쓴 동양 여성들이 화이트 드레스를 입고 여유롭게 걷는 와이키키에 왔을 때, 비로소 안정감이 생겼고 하와이에 왔다는 실감이 나기도 했다.

하와이 최고의 종합테마파크라고 광고하는 폴리네시안 문화센터에서 그나마 어엿한 독립왕국이었던 시절의 하와이를 엿볼 수는 있었다. 하지만 VIP 패키지로 온 관광객의 만족을 위해 하와이는 여전히 알로하와 훌라춤 일색이었다.

독립왕국이었던 하와이가 미국으로 편입된 것은 1959년. 원래 사탕수수 밭이었던 와이키키는 제임스 쿡의 태평양 항해와 하와이·미국 합병 이후 휴양지, 군사기지, 쇼핑의 성지로 변해갔다. 원주민의 입장으로 말하면, ‘변질돼갔다’. 미국인의 입장으로 말하면, 어마어마하게 ‘발전했다’. ‘하와이는 미 제국주의가 만든 최고의 걸작품이고 괌과 사이판은 하와이의 부록이다’라고 생각해온 나도 호놀룰루에서는 미인에 혹해 전 재산을 탕진하고 마는 얼빠진 사내처럼 멍청해지고 있었다. 환상적인 여행지가 의도한 대로 이방인은 구경하고 헤엄치고 선탠을 하고 서핑을 배우고 쇼핑을 왕창 했다. 호놀룰루는 그 섬이 속한 합중국의 경제력처럼 강력한 마취 효과가 있었다.

■완벽한 일상을 만들어준 커피와 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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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 하와이 현지인들이 카누를 타고 낚시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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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놀룰루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하와이 섬들을 오가는 작은 비행기를 타고 빅아일랜드(Big Island)로 향했다. 도착한 곳은 빅아일랜드의 서쪽 관문 코나(Kona). 알로하와 훌라춤은 여전히 공항에서부터 관광객을 유혹했지만 호놀룰루처럼 혼을 빼놓지는 않았다. 조용한 분위기와 가벼운 공기가 맘에 들었다.

멕시코를 연상케 하는 커다란 선인장이 마당에 우뚝 박힌 하얀 집의 2층을 통째 빌렸다. 코나엔 사생활을 방해하지 않을 만큼 일정한 공간을 두고 단층이나 이층집들이 비스듬한 언덕에 옹기종기 모여있다. 코나의 첫인상은 커피처럼 따뜻했다. 대부분의 집은 서쪽을 향해 있고 오후면 햇볕이 집 안쪽까지 깊게 들어와 하얀 이불까지 보송보송하게 말렸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면 마을은 술 취한 볼처럼 벌겋게 변해갔다. 아침에는 새가 요란하게 울었고 창틀에는 도마뱀이 냉장고 자석처럼 붙어있었다. 도마뱀이 들어오는 걸 방지하기 위해, 집주인은 “아무리 더워도 그물망으로 된 문은 반드시 닫으라”고 당부했다. 호놀룰루보다 물가가 저렴한 것도 좋았다. 그중에서 코나 커피는 마시지 않으면 손해라고 느껴질 정도로 향과 맛이 훌륭했다. 작은 해변에서 다이빙을 반복하는 동네 아이들을 구경하며 코나 에일맥주인 ‘빅 웨이브’를 홀짝거리는, 별것 없는 일상에 감사했다.

빅아일랜드의 동쪽 도시, 힐로(Hilo)로 향했다.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다가 섬의 중심인 마우나케아(Mauna Kea) 방향으로 틀었다. 멀리 태평양이 내려다보이는 19번 하이웨이에서는 내내 감탄만 터져 나왔다. 왼쪽으로는 파란 태평양이, 오른쪽으로는 검은 현무암이 대륙처럼 펼쳐진다. 용암이 흘러내린 흔적은 빨래판처럼 남았다. 손을 대보니 여전히 뜨거웠다. 마우나케아가 가까워질수록 구름과 안개가 짙어 운전하기가 퍽 어려워진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꼬불꼬불한 오르막길을 빠져나가면 봉우리 하나가 우뚝 솟아있다.

바로 마우나케아다. 붉은 흙에서 유황 냄새가 피어 오르고 마른 나무는 강한 바람에 굴복해 낮게 자랐다. 해발고도가 4000m가 넘으니 시선 아래에 구름이 양털 카펫처럼 깔렸다. 관자놀이가 뻐근해지는 고산병 증세가 왔다. 태양의 붉은 기운이 천지사방을 물들이고 구름이 잽싸게 흩어지는 장면은 잘 만든 컴퓨터그래픽(CG) 같아서 나는 아마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아쉽게도 카메라는 장엄한 풍경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 경이롭다는 말의 뜻을 비로소 알았다.

■화산섬에서 느낀 생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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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이 아직도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화산국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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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로에서 빌린 집의 주인은 예술가였다. 오두막 형태의 집이 새로워 보여서 예약했는데, 가는 길이 만만치 않았다. 불빛 하나 없는 비포장길을 20분 정도 달려야 나타나는 집은 온 사방이 풀과 나무, 동물이었다. 큰 개와 토끼, 닭, 오리까지 자유로운 영혼의 커플은 다양한 축생과 인간이 자연 속에서 어울려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여장을 풀고 기절하듯 쓰러졌다. 예술가 부부는 본업으로 그림을 그렸고, 각종 허브와 토마토 같은 작물들을 키우면서 낯선 사람들에게 방을 내주고 하루에 8만원 정도를 받으며 생활을 꾸려가고 있었다. 집주인은 아침에 커튼을 열면 어느새 내 원두막 하우스로 찾아와 힐로에서 그날 구경해야 할 곳을 알려주고 그 다음날이 되면 ‘소개한 곳을 가보았는지, 소감은 어떠한지’를 확인했다. 예술가 부부가 강력히 추천했던 화산국립공원 끝자락, 붉은 용암이 하늘로 분출하는 곳은 밤이 깊어서 가보지 못했다. 다음날 그들의 얼굴엔 실망이 가득해서 미안할 지경이었다. 부부가 왜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는 한국에 돌아와 TV 여행프로그램 ‘하와이 편’을 보면서 깨달았다. 현지인이 강력하게 추천하는 곳은 어떻게든 갔어야 하는 것이다.

화산국립공원에서 거대한 분화구 속을 걸으면서 처음으로 생명력이라는 것을 느꼈다. 분화구는 검게 타버린 커다란 냄비처럼 둥글고 평평하게 푹 파였고 지름이 2㎞가 넘는다. 바닥에 누우니 등이 따뜻했다. 몇 줌 안되는 흙을 디디고 피어난 붉은 꽃은 향기가 짙었고 깨져버린 바위틈 사이로 수증기가 피어 올랐다. 여기는 여전히 살아있는 화산이다. 그 옛날 카누를 타고 태평양을 항해하던 폴리네시아인이 불꽃이 터지는 섬을 발견하고 정착하게 된 그 섬, 하와이. 그리고 그들의 후예는 해 질 녘 카누를 타고 바다에서 낚시를 했다. 불안정한 화산섬에서 식물과 동물과 사람이 그럭저럭 살아가는 모습이 좋았다. 호놀룰루의 알로하와 훌라춤보다는 말이다.

▶필자 김진

경향신문

기업 홍보팀에서 십여년 근무하다가 여행을 좋아해 여행작가가 되었다. 취미가 직업이 되면 안 좋다고들 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두루 누릴 수 있어서 여전히 행복하다. 여행과 글이 삶을 풍요롭게 한다고 믿는다.


김진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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