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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1 (일)

이슈 끝나지 않은 신분제의 유습 '갑질'

“내 회사인데…” 삐뚤어진 소유 의식… 사라지지 않는 오너 갑질 [대한민국 신인간관계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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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끊임없는 재벌 총수일가 일탈 / 직원들 하인취급 폭언·폭행 다반사 / 자녀들 결혼식에 강제동원 하기도 / 퇴행적 기업 문화·견제 시스템 부재 / 직장인 4명 중 1명 갑질 피해 경험 / “보유지분에 비해 과도한 의사결정” / 감시 눈길 느슨해지면 언제든 재연

세계일보

대한민국 대기업 총수 일가의 일탈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예전에는 횡령이나 탈세 같은 형사사건이 주로 도마에 올랐지만 최근에는 오너들의 ‘갑질’이 이슈로 등장했다. 기업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갈수록 예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더 이상 기업 내에서 발생하는 갑질을 용인하지 않게 됐다. 그럼에도 기업 갑질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오너 일가에 대한 회사 내 견제시스템이 허술하고 기업문화가 후진적인 탓이다.

◆숱한 총수 ‘갑질’ 논란… 폭언·폭행에 사적 동원까지

대기업 총수 일가의 갑질 논란은 2010년대 들어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2014년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조 전 부사장을 비롯한 한진그룹 총수 일가는 그간 여러 차례 구설에 올랐다. 동생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는 광고대행사 직원을 향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물컵 안의 물을 뿌리는 ‘물컵 논란’을 벌였고, 두 자매 어머니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은 자택 내 근무자들에게 수시로 욕설을 내뱉고, 집안 인테리어 공사 때에는 작업자들에게 화를 내고 욕설은 물론 폭력행위를 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명희 전 이사장은 필리핀 여성을 회사 연수생 신분으로 입국시켜 가사도우미로 일하게 했다는 혐의로 지금 재판 중이다. 개인의 사적인 일에 회사 인력을 동원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고(故)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손자인 정일선 현대비앤지스틸 사장은 2016년 수행기사들을 향한 ‘갑질 매뉴얼’이 공개되면서 논란을 빚었다. 수행기사들이 숙지해야 하는 이 매뉴얼에는 모닝콜과 초인종을 누르는 시기, 방법 등 하루 일과에 대처하는 방법이 빼곡히 적혔고, 정 사장은 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경우 폭언과 폭행을 했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갑질 논란은 대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지난 4월 직장인 68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재직 중인 기업의 전·현직 오너가 갑질이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23%가 ‘그렇다’고 답했다. 직장인 4명 중 한 명꼴로 갑질 경험이 있는 것이다. 기업 규모별로 볼 때 중견(21%), 중소기업(20%)보다 대기업(35%)에서 그 비율이 높았다.

기업 오너가 갑질이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고 한 응답자들을 대상으로 사례를 받은 결과 △부당이득 △폭력·폭언 △개인 업무지시 △채용 비리 등의 사례가 나타났다. 오너 자식 결혼식에 직원들을 차출해 서빙을 보게 하거나, 자녀를 채용해 직원을 감시하게 하는 식이다. 회삿돈으로 자녀의 용돈을 지급하거나 내연녀를 임원으로 특혜채용하는 식의 사례도 있었다. 직원 건강을 위한다며 마라톤대회에 강제로 동원하는 식의 ‘갑질’이 제보된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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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재판에만 의지… “회사 내 견제 필요하다”

기업 사주들의 일탈은 기업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생전인 지난 3월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했다. 가족들의 갑질 논란에 해외연기금은 물론 국민연금까지 “기업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며 반대표를 던졌다. 중견기업인 몽고식품의 김만식 명예회장은 운전기사를 상습적으로 폭행했던 것이 드러나면서 사퇴했고 매출은 반토막이 났다.

대기업 총수 일가의 갑질은 여론의 관심이 사라지는 순간 언제든지 재연될 수 있다. 기업 오너들의 ‘내 회사인데 누가 뭐라 하느냐’는 식의 사고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갑질은 언제든 다시 불거질 수 있다. 주식시장에 상장된 회사임에도 ‘내 회사’라는 사고방식이 강한 오너일수록 회사 임직원들을 부하나 신하처럼 다루게 된다. 이는 우리나라 기업의 의사결정이 오너의 독단으로 이뤄지고 ‘회사 내 견제’가 미약한 현실 탓이다. 앞서 인크루트 설문조사에서 응답 직장인의 93%는 오너 일가가 이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의 지배구조가 개선돼야 한다고 답했다.

이정우 경북대학교 명예교수는 “우리나라 재벌의 의사결정구조가 자체가 비민주주의적이고 지분에 비해 과다한 의사결정구조를 지닌다”고 지적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1998년부터 회사 밖의 외부인사가 이사회에 참여하는 사외이사제도를 두고 있지만 ‘거수기’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가 지난해 57개 대기업 집단 소속 상장 계열사 251곳의 사외의사 활동을 전수 조사한 결과 찬성률이 무려 99.66%에 달했다. 대주주 뜻대로 사외이사를 임명할 수 있는 현 제도상으로는 필요 시 ‘방패막이’가 될 수밖에 없다.

이도형 기자 scop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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