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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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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味적인 시장](9)낙지만 찾으믄 섭하재, '무안' 맛이 '무한'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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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지·양파만 기억하시면 좀 무안합니다.

곱창김·웅어·운저리·황실이…‘무한’한 맛들이 있으니까요.

전남 무안 5일장

경향신문

그래도…낙지가 빠지면 ‘무안’하죠 여수 등 깊은 바다에서 잡힌 낙지는 몸집이 커서 주로 볶음용. 무안의 세발낙지는 연포탕이나 탕탕이용으로 많이 팔려요. 크기는 다르지만 가격은 비슷한 건 ‘안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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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신안군 증도에 식재료 강연으로 내려갈 일이 생겼다. 그 먼 증도에 갈 생각을 하니 깜깜했다. 날짜를 보니 강연 다음 날이 무안장이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강연을 흔쾌히 수락했다. 게다가 5월 초순, 햇양파와 햇마늘 수확이 한창인 무안 구경도 좋을 듯싶었다.

남쪽으로는 목포와 영암, 서쪽으로 신안, 동쪽으로 나주, 북쪽으로는 함평과 맞대고 있는 무안은 서해와 노령산맥 끄트머리의 반도를 품고 있어 산물이 다양하다. 그중에서 유명한 것이 바로 낙지와 양파다. 무안에 들어서면 양파즙 판매장이나 양파 저장고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라면 하나 시켜도 아삭하고 새콤달콤한 양파김치가 나오는 동네가 무안이다. 낙지 파는 식당이나 판매장은 과장 조금 보태서 한 집 건너 한 집일 정도로 많다.

■ “초장 찍어 먹어보랑께”

이번 출장길엔 낙지 요리는 피해 보자고 결심했다. 봄과 여름이 교차하는 시기, 낙지도 맛있지만 분명 계절의 맛을 품고 있을 다른 것을 즐겨보자 생각했다. 여행지에서 강박관념처럼 꼭 먹어야 하는 음식을 일부러 피하고 싶었다. 물론 낙지보다 못할 수도 있지만 평소와 다른 것을 찾는 행위 또한 여행의 재미 아닌가.

무안 오일장은 숫자 4·9가 들어간 날에 열리는 4, 9장이다. 2년 전에 새로운 곳에 터를 마련해 오일장을 연다. 천장이 있어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상관없이 편하게 장을 볼 수 있다. 장터 한편에 널찍한 주차장까지 마련되어 있어 이래저래 장보기가 다른 장터보다 편했다.

낙지로 유명한 고장답게 장터에서 호떡집만큼 불난 곳이 낙지 파는 곳이다. 전남 여수·순천·장흥 등지에서 잡힌 낙지와 200㎞ 넘는 해안가를 지닌 무안 곳곳에서 잡힌 낙지가 같이 팔리고 있었다. 여수 등 깊은 바다에서 잡힌 낙지는 무안 갯벌에서 잡힌 세발낙지와 달리 큰 몸집으로 주로 볶음용으로 팔린다. 작은 몸집의 무안 낙지는 탕탕이나 연포탕용으로 팔렸다. 크기는 달라도 가격은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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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이건 꼭 사야 해 ‘족편’ 무안 5일장터 들어서자마자 ‘득템’한 음식. 우족으로 만든 묵인 족편은 조리 시간이 6시간 넘게 걸려 쉽게 만들어 먹기는 어려워요. 족편 봉지를 건네는 장터 할머니의 일갈이 기억에 남네요. “초장 찍어 먹으면 맛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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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장터에 들어서자마자 눈여겨봐둔 족편이 장터를 두어 바퀴 돌고 나니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서둘러 지갑에서 5000원을 꺼내 세 덩어리를 샀다. 족편은 우족으로 만든 묵이다. 족을 푹 고아서 식히고, 굳혀 만드는 단순한 과정이지만 6시간 이상 걸리는 탓에 쉽게 만들어 먹기 어려운 음식이다.

우족에 풍부하게 들어 있는 콜라겐이 삶는 과정에서 녹았다가 식히면 다시 굳어지는 성질을 이용해 묵처럼 만들었다. “내가 말여, 우족을 푹 과. 그리고 식혀. 또 껍질을 푹 과. 두 놈을 합쳐. 그리고 굳혀. 짤라. 그래서 가지고 나온겨.” 족편 담긴 봉지를 건네며 할머니가 한마디 더 보탰다. “초장 찍어 먹으면 맛나.”

이번 출장길에 빼먹지 않고 가져간 물건이 있다. 바로 보냉백이다. 수산물이나 고기를 사고 싶어도 긴 출장길에 상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 선뜻 사지 못했는데, 이번엔 든든한 동행이 있어 맘 놓고 샀다. 스티로폼 아이스박스 두어 개 살 돈이면 괜찮은 보냉백을 살 수 있다. 환경도 살리고 돈도 절약할 수 있어 일석이조다. 게다가 접어서 보관할 수 있어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아 어찌 보면 일석삼조다. 낙지 좋아하시는 장모님 드릴 요량으로 낙지 몇 마리를 사서 보냉백에 넣고 읍내에 있는 로컬푸드 매장으로 갔다.

■ 무안 갯벌의 향 담은 곱창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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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창은 안 들었어요’ 곱창김 밀물·썰물 차가 크고 수심 낮은 해안에서 지주식으로 양식한 김. 향과 단맛이 뛰어나 참기름을 바르거나 소금을 치지 않고 김만 오롯이 구워 간장에 찍어 먹으면 12첩 반상이 안 부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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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에서 딴 건 몰라도 곱창김은 사야 한다. 지난번 청산도 출장길에 산 곱창김을 진작 다 먹어서 무안 출장길에 꼭 사려고 했다. 낙지와 양파가 유명한 무안에서 그에 못지않게 유명한 것이 황토다. 무안 갯벌은 황토와 펄이 적절히 섞여 있어 나는 것들이 맛이 다르다. 그런 무안 갯벌에 나무 장대를 박아 줄로 연결해 김을 양식하니 맛이 특별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 김이 곱창김이라면 두말할 필요 없이 지갑을 열어야 한다. 밀물과 썰물의 차가 크고 수심이 낮은 해안에서 하는 김 양식 방법을 지주식이라 한다. 지주식으로 양식한 김은 부유식(수심이 깊은 곳에서 부력체에 김발을 연결해서 하는 양식)과 달리 생산량이나 때깔은 좋지 않으나 김 특유의 향이 강하다. 지주식 김 중에서도 향과 단맛이 뛰어난 김이 곱창김이다. 곱창김은 참기름 바르고 소금 쳐서 굽기보다는 김만 오롯이 구워 먹는다. 참기름 향은 김 향을 방해할 뿐이다. 구운 김에 하얀 김 나는 갓 지은 밥을 올려 양념 안 한 간장에 찍어만 먹어도 12첩 반상이 부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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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왕~굿! 고소한 웅어 무안읍 망운면에서 만난 웅어회 비빔밥. 새콤달콤한 양념이 웅어의 고소한 맛과 잘 어울려요. 늦봄과 초여름 사이 비빔밥 재료를 고르라면 낙지보다는 웅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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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류 중 바다에서 생활하다 산란은 강이나 하천에서 하는 것들이 꽤 있다. 대표적인 것이 연어와 황어이지만 웅어도 빠지지 않는다. 반대로 민물에서 살다 산란은 바다에서 하는 것은 장어다. 5월이면 웅어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역으로 들어온다. 서천과 군산을 지나는 금강 하류 쪽에 웅어로 유명한 식당이 많다. 무안에서도 웅어가 나지만 5월부터 7월까지 웅어 맛을 아는 이만 즐긴다. 무안읍에서 서쪽으로 10여분 가면 망운면이 나온다. 작은 면 소재지의 허름한 식당에서 웅어회 비빔밥을 낸다. 새콤달콤한 양념이 웅어의 고소한 맛과 잘 어울린다. 이 시기에 낙지와 웅어 둘 중 하나를 비빔밥 재료로 택하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웅어를 선택할 것이다. 늦봄과 초여름 사이에 특히 맛있기 때문이다. 동원회식당(061-452-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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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저리와 보리밥 ‘너는 내 운명’ 농어목 망둑엇과 문절망둑의 사투리인 ‘운저리’. 전남 다른 지역에서는 문저리라고도 부른대요. 막걸리 식초로 무친 운저리 무침에 보리밥의 통통 튀는 식감은 찰떡궁합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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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을 구경하다 보면 운저리 보리비빔밥 메뉴를 가끔 볼 수 있다. 특히 해안가에 가까워지면 조금 더 자주 볼 수 있다. 지금은 신작로가 생겨 오가는 차가 적어진 한적한 옛날 도로 옆에 운저리 보리밥집이 하나 있다. 10여년 전에 유기농 고구마와 임자도 소금 때문에 몇 번 오갔던 출장길에 보기만 했던 식당이다. 바쁜 일에 궁금함을 누르고 지나쳤던 식당에 들어가 보리밥을 주문했다.

운저리는 농어목 망둑엇과 문절망둑의 사투리다. 전남의 다른 지역에서 문저리라 하기도 하는데 짱뚱어도 망둑엇과의 어류지만 운저리와는 다른 종이다. 회 뜬 운저리를 채친 채소와 무쳐서 내온다. 여느 회무침을 시키면 나오는 외양과 비슷하지만 속 맛이 다르다. 이 집은 막걸리로 식초를 만든다. 부드러운 신맛이 좋은 막걸리 식초 덕에 무침의 양념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한다. 식초의 신맛은 따로 놀던 매운맛, 단맛을 같이 놀게 만든다. 식초 잘 쓰는 집 중에 맛없는 집이 없는 까닭이다. 쌀밥이 있음에도 굳이 보리밥에 비비는 까닭은 보리밥의 통통 튀는 식감이 부드러운 운저리회 맛과 어울리거니와 보리밥이 뭉치지 않고 잘 비벼지기 때문이다. 밥을 비비기 전에 운저리 회무침 하나를 집어 맨보리밥과 먹어보길 권한다. 운저리회 맛을 오롯이 즐길 수 있다. 날이 더워질수록 빛을 발할 메뉴다. 양정식당(061-453-8233).

■ 깡다리도 황실이도 1인분은 안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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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째 먹어야 제맛! 황실이 민어과의 황석어. 지금 시기 잡히는 것은 조림이나 튀김으로도 먹어요. 황실이조림 속 황실이는 살이 부드러워 한 마리 통으로 먹는 게 제대로 먹는 법이죠. 녹진한 내장맛까지 즐길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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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다리? 무안 읍내를 걷다 보니 식당 메뉴판에 깡다리 조림이 있다. 조금 더 걸어가니 황실이 조림이 있다. 분명 사투리일 건데 뭔지 감이 오지 않았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 물어보니 황석어(정식 명칭은 황강달이)였다. 황석어는 민어과의 생선이며, 조기와 사촌지간으로 생김새가 비슷하지만 크기가 작은 생선이다. 주로 젓갈을 담가 무침으로 먹지만 늦봄과 초여름에 잡힌 것은 조림이나 튀김으로 먹기도 한다. 황석어, 아니 황실이 조림 맛이 궁금해 주문했다. 조림이지만 국물을 탕만큼이나 넉넉하게 부어 나온 것을 자작해질 때까지 조린 다음 먹는다. 여느 생선처럼 살을 발라 먹는 것이 아니라 한 마리 통으로 먹는 것이 황실이 조림을 제대로 먹는 법이다. 살이 한없이 부드러워 발라내기도 어렵고, 통으로 먹어야 녹진한 내장 맛도 함께 즐길 수 있다. 국물 한 숟가락 밥 그릇에 끼얹고 황실이 한 마리 올려 푹 떠먹었다. 그렇게 몇 번 하다 보면 금세 빈 밥그릇이다. 보스음식점(061-454-1214). 상호가 특이해서 물어보니 바쁘니깐 다음에 오면 알려 준다고 한다. 궁금해서라도 다시 가고픈 식당이다. 양념 솜씨를 보니 한여름에 병어 조림을 먹어도 좋을 듯싶다.

홀로 떠나는 출장이 많다. 대부분 1박2일 일정이라 혼자 몇 끼를 먹어야 한다. 혼자 먹는 것이 익숙하지만 다른 불편함 때문에 입맛만 다실 때가 많다. 불편함은 다름이 아니라 1인분이 안되는 메뉴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어쩌다가 한 번쯤 먹고 싶은 메뉴가 있으면 2인분을 주문해 먹기도 하지만 뒷맛은 씁쓸하다. 한 상 차림에 드는 비용이 많으니 식당 입장에서는 2인분 이상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여행 문화가 바뀌고 있고, 해외에서 편하게 1인 주문을 경험한 이가 많아짐에도 변화가 더디다. 나 홀로 여행객이 많아지는 추세지만 식당 문화는 여전히 예전 그대로다. 요즘 지자체마다 관광객 늘리는 데 많은 관심을 쏟는데, 혼자 식당에 가서도 눈치 볼 필요가 없어진다면 공항이나 역사에 걸려 있는 광고판보다 관광객 유치에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 필자 김진영

경향신문

제철 식재료를 찾아 매주 길 떠나다 보니 달린 거리가 60만㎞. 역마살 ‘만렙’의 24년차 식품 MD.


김진영 식품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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