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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 (토)

농성장서 5·18 맞는 이들…"39년 동안 하루도 편한적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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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일째 국회 앞 농성' 5·18 농성단…"기한 정하지 않아"

"옳은 길 간다는 신념…지지해 주시는 시민들 큰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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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일째 국회 앞 농성을 진행 중인 남승우 5·18민중항쟁 구속자회 부회장(60·왼쪽)과 김용만 5·18민주화운동서울기념사업회 이사(56)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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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권혁준 기자 = 어느덧 39번째를 맞이하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 농성장에서 39주기를 맞는 올해는 다른 때보다 조금 더 안타깝고 고되다. 하지만 이들은 "그 일이 있고 나서 39년동안 편하거나 쉬웠던 날은 한 번도 없었다"며 담담한 표정을 짓는다.

'5·18 농성단'은 지난 2월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5·18 망언' 사태 이후 꾸려졌다. 5·18민중항쟁동지회(오항동)와 5·18민주화운동 서울기념사업회를 중심으로 100여명의 인원이 모였고 2월11일부터 국회의사당 앞 농성을 시작해 18일 현재 97일째 진행 중이다.

농성장을 거의 매일 지키는 인원은 10여명, 그 중에서도 하루도 빼놓지 않은 인원은 남승우 5·18민중항쟁 구속자회 부회장(60)과 김용만 5·18민주화운동서울기념사업회 이사(56) 등 5명이다.

김씨는 "그동안 숱한 망언이 있어도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민의의 전당 국회에서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남씨도 "사실 단식투쟁에 돌입하려는 생각이었지만 많은 분들이 만류해서 참고 있다. 환갑의 나이에 몸도 성한 곳이 없지만 이렇게 올라왔다"고 말했다.

'5·18 농성단'은 매일 아침 국회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또 농성장 옆에서는 5·18 당시의 참상이 담긴 사진전도 열고 있다. 농성 100일차를 맞는 오는 21일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자택 앞에서 집회를 진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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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농성단이 농성장 옆에서 진행하고 있는 5.18 민주화운동 사진전.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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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다 되어가지만…"그날의 진실, 아직도"

농성단의 요구사항은 크게 4가지다. 5·18 망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을 국회에서 제명할 것, 전 전 대통령과 극우논객 지만원씨를 구속 수사할 것, 5·18 역사왜곡 처벌 특별법을 제정할 것, 지난해 조사위원 추천문제로 여야가 대립해 출범하지 못하고 있는 5·18 진상조사위원회를 가동할 것이다.

무엇보다 이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진상규명'이다. 김씨는 "사건이 일어난 지 40년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면서 "진실이 밝혀져야만 당시 책임자들의 처벌도, 피해자들의 대우도 정확하게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5·18은 처음부터 은폐와 조작이 일어나 남은 자료로 진실을 알 수 없다. 가해자들의 양심고백을 최대한 많이 모으고 피해당한 분들의 기억과 맞춰보는 방법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5·18 유공자 명단을 공개하라'는 일부 의견에 대해서도 의연한 표정을 지었다. 남씨는 "우리도 원하는 바다. 정확하게 공개해서 잘못된 건 바로잡고, 대신 함부로 이야기한 사람도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씨 역시 "광주기념공원 지하홀에 이미 4300여명의 유공자 명단이 공개돼 있다. 국립묘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미 10년 전의 일"이라며 "그런데 이제와서 명단을 공개하라는 말 자체가 웃기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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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농성단이 97일째 농성을 진행 중인 천막.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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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런 폭동이 어디 있나"

남씨는 처음엔 시민군에 합세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여기저기서 시위를 하고 있어 구경을 하고 있는데 고등학생 정도 되는 애가 얻어맞아 응급차에 실려가더라"면서 "그걸 보고 나도 모르게 차에 올라타서 (시민군에) 합류하게 됐다"고 들려준다.

김씨는 당시 고등학교 2학년에 불과했다. 그는 "19일에 휴교령이 내려지고 시내에 갔는데 사람들이 갑자기 뛰어오면서 '도망가'라고 외쳤다"면서 "영문도 모르고 뛰어가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고, 전경에게 곤봉으로 맞아 머리에 피가 터졌다"고 회상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계엄군의 트럭에 김씨가 탈 자리가 없었고, 김씨는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한 뒤 사흘 뒤부터 본격적으로 투쟁에 나섰다.

이들에게 광주, 5·18은 아픈 기억인 동시에 '시민의식'과 '동지애'를 느끼게 한 항쟁이다.

김씨는 "5·18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주먹밥이다. 당시 계엄군이 외곽을 완전히 봉쇄하면서 쌀 한톨 보급이 안 됐지만 거리에서는 시민군에게 주먹밥을 나눠줬고, 목이 쉰다고 계란도 줬다"면서 "사재기를 한다던지, 값을 올려받는지 하는 상황은 전혀 없었다. 폭동이라고 하지만 절도나 강도같은 범죄도 없었다. 이런 폭동이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남씨도 "처음에는 구경만 하던 사람들이 옆 사람이 얻어맞고, 죽고, 끌려가는 것을 보면서 하나 둘 거리로 나섰다"면서 "그들은 잔인하게 짓밟으면 공포에 질릴 것이라 생각했겠지만, 어느 순간 분노가 공포를 넘어서면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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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 기한? 자유한국당에 묻고 싶어"

그랬던 그들에게 5·18에 대한 비하와 왜곡, 망언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사건이다. 오랫동안 반복되는 비극을 막기 위해서라도 '5·18 역사왜곡 처벌 특별법'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씨는 "5·18은 전두환·노태우가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사법적으로, 국회에서 특별법이 만들어지면서 입법적으로, 5·18 국가기념일 지정과 5·18 국립묘지 승격으로 행정적으로 인정을 받았다. 여기에 2011년에는 유네스코에서 '민주화운동에 크게 공헌했다'는 이유로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을 특별문화유산으로 선정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미 국내외적으로 평가가 끝났음에도 폄훼 시도가 이어지기 때문에 법적인 근거를 만들어놓을 수밖에 없다. 정치적 입장을 떠나 반인륜적인 문제라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아직 '망언사건'도 정리되지 않은 마당에 특별법을 기대하기는 요원해보인다. 이들 역시 농성이 언제까지 이어질 지는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김씨는 "농성기한은 정해놓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당에게 '언제까지 버틸건지' 묻고 싶다"면서 "잘못을 했으면 인정을 하고 사과를 해야 하는데 '눈가리고 아웅'식이다. 그럴 수록 우리의 분노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39년간 쉽지 않은 싸움을 이어오고 있지만, 그래도 '옳은 길을 간다'는 신념만큼은 확고하다.

김씨는 "농성을 하는 우리한테 '빨갱이'라고 욕하고 가는 분들도 계시지만, '응원한다'며 격려를 보내주시거나, 몰래 후원금을 놓고 가는 분들도 많다"면서 "이미 대다수의 분들은 어느 쪽이 '정의'인지 알고 계실 것"이라고 말했다.
starburyn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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