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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일단 부자 증세부터 언급, 서민 반발 피해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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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내에서 나오기 시작한 증세론은 대기업과 고소득자를 겨냥한 것이다. 법인세는 이명박 정부 때 이뤄진 법인세 인하(25%에서 20%) 이전 시점으로 법인세율을 되돌리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소득세와 관련해서는 40%대에 달하는 면세자 비율을 줄여 저소득자도 소액의 세금을 내게 하는 대신 고소득자에 대해서는 세율을 높이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대기업과 고소득자 중심으로 세금을 높임으로써 일반 서민이나 중소 자영업자의 반발을 피하면서 재정 확대 정책의 돈줄도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정치권에선 "증세를 추진하면서 부자와 서민을 갈라치는 정치적 계산을 염두에 둔 전략"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부자 증세로 갈라치기

기업에 매겨지는 법인세와 관련해 이명박 정부는 2010년까지 2억원이 넘는 기업 소득에 대한 법인세율을 25%에서 20%로 낮췄다. 그 뒤 최고 세율 구간이 두 차례 추가돼 200억원이 넘는 소득에는 22%, 3000억원 초과 소득에는 25% 세율이 적용되고 있다. 이 25% 세율이 적용되는 구간을 크게 낮춰 과세 대상 기업을 예전처럼 대폭 늘리자는 것이다. 500억원 이상 기업 소득에 대해 세율을 25%로 되돌리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민주당 정책위원회에서 경제·재정 정책 입안을 맡고 있는 최운열 의원은 본지 인터뷰에서 "기업에 근로자 임금을 올려주고 투자를 적극적으로 하라고 법인세율을 낮춰줬지만 실제로는 사내 유보금을 쌓아두거나 부동산을 사들이는 쪽으로 흘러갔다"며 "세율 인하가 기업의 투자 의욕을 높여주지 않는 것으로 드러난 만큼 세율을 원상회복해 국가 재정이라도 튼튼하게 하는 게 낫다"고 했다. 최 의원은 다만 "현재 실물경제가 위축돼 있는 만큼 당장 법인세를 인상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했다.

소득세율을 높이는 경계선으로는 과세표준(세금을 매기는 기준이 되는 금액) 1억5000만원 선이 거론된다. 현재 과표 8800만~1억5000만원인 경우에는 35%, 1억5000만원 초과분은 38~42% 세율을 적용받는다. 익명을 요구한 민주당 한 의원은 "과표 8000만원대에 대한 고율의 과세는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 안팎이던 1990년대에 정한 것"이라며 "이 구간에 대한 세율은 낮추고, 그 위 구간에 대한 세율을 높여서 고소득자일수록 세금을 더 많이 내게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2017년 근로자 1800만명 가운데 740만명이 각종 공제·감면을 받아 근로소득세를 전혀 내지 않았다. 면세 근로자 비율이 41%가 넘는다. 민주당 한 의원은 "소득이 있으면 일단 소득세를 내도록 하는 것이 원칙에 맞는다"며 "소득 하위 20% 근로자는 소득세를 내고 그에 상응하는 금액이나 그 이상을 근로장려금(EITC) 등의 형태로 돌려받게 해야 한다"고도 했다.

◇시행은 총선 이후로 미룰 듯

증세는 국민의 세 부담을 늘리기 때문에 인기 없는 정책으로 통한다. 노무현·박근혜 정부는 급증하는 복지 지출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증세를 추진했다가 조세 저항에 부딪혔다. 이 때문에 민주당이 대기업·고소득자에 대한 세율은 높이면서 중소기업·서민은 끌어안는 구도를 모색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특히 저소득자에 대한 근로장려금을 확대한다면 저소득자의 실질적인 소득세 부담은 없게 되고 고소득자만 증세분을 떠안게 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출범 두 달 만인 지난 2017년 7월 '부자 증세론'을 꺼내 들었다. 당시 추미애 대표는 첫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초(超)대기업과 고소득자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자"고 제안했다. 세수 증대에는 큰 효과가 없었지만 다수 국민의 조세 저항은 피할 수 있었다. 추 대표가 제시한 방안은 연 5억원 이상 소득에 42% 소득세율, 연 3000억원 이상 기업 소득에 25% 법인세율을 적용한다는 내용으로 2017년 말 통과됐다.

민주당의 이번 세제 개편 추진 시점은 내년 총선 이후가 될 공산이 크다. 민주당 한 의원은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만큼 총선 전에 이를 추진하기는 어렵고, 구체적인 개편안을 마련하기에 시간도 촉박하다"고 했다.



최규민 기자;김경필 기자(pi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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