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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생명유지장치 뗐는데 "다시 붙여라"…佛 달구는 존엄사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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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째 식물인간…5년 다툼 끝 연명 중단 판결

항소법원이 번복…생명유지장치 재부착 명령

뉴스1

식물인간 판정을 받고 11년째 병상에 누워있는 뱅상 랑베르. © AFP=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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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서연 기자 = 회복 가능성이 거의 없는 중병 환자나 부상자들에 대해 이른바 '수동적 안락사'를 허용하는 프랑스 법의 '죽을 권리'(right-to-die)를 둘러싼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지난 20(현지시간) 법원 명령에 따라 병원에선 식물인간 상태인 환자에게서 생명유지장치를 뗐다. 이 자체로도 상징적인 행위였는데 하루도 안 돼 번복 명령까지 내려졌다.

AFP통신에 따르면 프랑스에선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생명을 인위적으로 끝내는 '안락사'는 불법이지만 음식물 등을 공급하는 튜브를 떼는 방법의 '존엄사'는 허용된다.

논란을 구체화한 주인공은 11년간 연명의료를 받아온 한 남성. 환자 가족들끼리는 물론 프랑스 사회까지 찬반 의견으로 격렬하게 나뉘고 있다.

파리 항소법원은 이날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CRPD) 검토가 끝날 때까지 "모든 조치를 취하라"면서 뱅상 랑베르(42)에 생명유지장치를 다시 부착하라고 명령했다. 의료진이 그의 생명유지장치를 뗀 지 채 몇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랑베르는 지난 2008년 오토바이 사고로 식물인간 판정을 받고 11년 동안 병상에서 지내온 환자로, 자가 호흡은 가능하지만 인공관을 통해 영양분과 물을 공급받으며 생명을 유지해 왔다.

2013년 의료진은 더 이상의 의료 행위는 의미가 없다고 판단해 그의 아내에게 존엄사를 권고했다. 연명의료가 중단될 경우 랑베르는 며칠 혹은 일주일 내에 숨을 거두게 된다.

랑베르의 가족은 존엄사 여부를 두고 의견이 갈렸다. 연명의료 중단이 오히려 더 인간적인 일이라고 믿는 랑베르의 부인 및 형제 6명과 달리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부모와 다른 형제 2명은 계속 살려둬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

2014년 의료진은 랑베르의 수분과 영양분 공급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부모와 형제 2명은 '더 나은 치료로 랑베르의 상태가 나아질 수 있다'며 법원 명령을 받아 이를 저지했고 이후 5년간의 법정 공방이 시작됐다.

올해 초 프랑스 법원은 랑베르의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쪽에 손을 들었다. 프랑스 행정사건을 담당하는 최고법원인 행정최고재판소는 지난달 유족 및 의료진이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판결했다. 랑베르의 부모는 즉각 유럽인권재판소(ECHR)에 제소했지만 ECHR은 이를 기각했다.

하지만 CRPD가 이달 프랑스 정부에 랑베르 사례에 대한 자체 조사를 진행하는 동안 연명의료 중단 결정을 보류해달라고 요청했다. 해당 검토에는 수년이 걸릴 수도 있다.

프랑스 정부는 CRPD의 심의 결과를 참고하겠다면서도 그 결과를 따라야 할 법적 의무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랑베르의 부모는 ECHR에 CRPD의 검토가 끝날 때까지 연명치료 중단 결정을 철회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ECHR은 이미 지난달 이와 유사한 사례를 기각했고 새로운 심리를 시작할 증거가 없다며 다시 거부했다.

항소 법원의 연명의료 재개 명령 뒤 랑베르의 어머니는 "이것은 매우 큰 승리"라며 "그들은 다시 랑베르에게 영양분과 수분을 공급할 것이다. 이번 만큼은 법원의 결정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반면 존엄사를 지지했던 랑베르의 조카 프란시스는 연명치료는 "의료와 사법 체계가 만든 순전한 가학행위"라고 비판했다. 랑베르의 아내 레이철은 20일 "그가 가는 것을 보는 일은 그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AFP에 따르면 법원의 판결 전 프란치스코 교황은 랑베르의 생명을 유지하는 쪽을 지지했다. 그는 "언제나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 (생명은) 시작부터 자연적인 최후가 있기까지 신의 선물"이라며 "버려버리는 문화에 이를 굴복하지 말자"고 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연명의료 중단을 막아달라는 랑베르 부모의 요청에 대해 "치료 중단 결정은 그의 법정 대리인인 아내와 의료진의 지속적인 논의 끝에 내려진 것"이라며 개입하지 않았었다.
s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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