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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6 (일)

[필동정담] 佛·伊와 韓·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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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유럽의회 선거가 23일부터 나흘간 진행된다. 이번 선거의 주 전선은 유럽 통합을 강화하려는 중도 진영과 반(反)난민을 기치로 내건 극우 진영 간 대결이다. 이 과정에서 사이가 나빠진 나라가 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다. 프랑스는 통합, 이탈리아는 반난민을 주장하며 티격태격해 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반(反)정부 '노란조끼' 시위에 혼쭐나던 올해 초 이탈리아 주요 정치인들이 시위대에 지지를 표명했다. 루이지 디마이오 이탈리아 부총리는 노란조끼 지도부와 만나 유럽의회 선거 공조를 논의하기도 했다. 프랑스 외무부는 비난 성명과 함께 주(駐)이탈리아 대사를 소환했다. 지난 2월 일이다. 난민 문제를 둘러싼 양국 갈등은 꽤 됐지만 지난해 이탈리아에서 극우 포퓰리즘 정부가 출범하면서 더 얼어붙었다.

일본의 대표적 지한파 인사인 오구라 가즈오 전 주한 일본대사가 최근 요미우리신문 인터뷰에서 한일 관계를 프랑스·이탈리아 관계에 빗대어 설명한 것을 봤다. 오구라 씨는 국가 관계의 성숙도는 정치·외교 외에 국민 교류에 좌우되며 최근 한일 간 외교 갈등에도 국민 교류가 영향받지 않는 것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또 장차 정치와 민간 교류가 분리되는 성숙한 관계로 가야 한다면서 그 모델로 프랑스·이탈리아를 들었다. 대사 소환 어쩌고 해도 두 나라 관계의 기초는 끄떡없다는 얘기다.

오구라 씨 주장에 공감하면서도 한일의 미묘한 인식 차를 느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갈등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나는 이것을 한일 관계와 연결할 생각은 못 했다. 한국인인 내가 느끼는 한일 문제는 역사적 연원이 깊고, 무겁고, 결정적으로 피해·가해 구도다. 이런 감정이 누락된 프랑스·이탈리아 갈등은 그저 이웃 국가 간 일상 다툼 정도로 보인다. 한국인은 한일 관계를 오랜 라이벌인 독일·프랑스, 또는 피해·가해 구도인 독일·폴란드와 비교하는 데 익숙하다. 반면 한국을 라이벌로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었을, 또한 가해자 의식을 자청하고 나설 리가 없는 보통 일본인들은 그런 비교가 생경하거나 불편할 것이다. 역학구도상 지금의 한일 관계는 독일·폴란드보다는 프랑스·이탈리아 관계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다만 아직 한국인의 마음 상태는 거기까지 가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노원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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