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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건보된다니 찍어나볼까" MRI 촬영, 文케어 이후 2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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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부터 뇌 MRI 건보 적용

가격 48만원→14만원으로 줄자 촬영건수 1년전보다 44만건 급증

대구에 사는 문모(74)씨는 작년 3월 뇌종양 수술을 받은 뒤 주기적으로 서울 대형 병원에서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을 한다. 갈수록 환자들이 늘어 요즘은 밤 8시 이후 시점으로 예약이 잡히고, 실제 촬영은 더 늦어질 때도 많다. 서울역에서 밤 10시쯤 출발하는 대구행 KTX 시간을 맞추기도 빠듯하다. 문씨의 딸은 "MRI 검사받으려는 사람이 정말 많다"고 했다. 대형 병원에선 MRI 촬영 환자가 급증해 새벽과 심야, 주말에도 MRI 촬영이 이어지고 있다. 예약 후 촬영을 기다리는 기간도 1.5~2배쯤 늘어났다. 우리나라는 2016년 기준으로 인구 100만명당 MRI 대수가 27.8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6.8대)보다 1.7배나 많은데도 이런 북새통이 벌어지고 있다.

환자 부담 30만원 넘게 줄자 MRI 촬영 급증

조선일보

대형 병원 MRI 촬영실 대기 행렬이 길어진 것은 건강보험 보장 범위를 넓히는 '문재인 케어'로 MRI 촬영에 대한 건보 적용 범위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작년 10월 뇌·뇌혈관 MRI 촬영을 시작으로 신체 부위별 MRI 촬영에 단계적으로 건보 적용을 확대하고 있다. 건보가 적용되면서 뇌·뇌혈관 MRI를 찍을 때 환자가 내는 돈이 평균 48만원에서 14만원 정도로 줄어들게 됐다. 비용이 30만원 넘게 싸지면서 촬영 건수가 늘어났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자유한국당 김명연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작년 10~12월 MRI 촬영 건수가 77만 건으로 집계됐다. 2017년 같은 기간(33만 건)의 2.3배에 달한다. 의료계에서는 MRI 촬영 건수가 더 가파르게 늘어날 것으로 본다. 건보가 적용되는 MRI 촬영 범위가 단계적으로 확대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대형 병원들은 MRI 추가 도입에 나서는 중이다. 서울 강남 A병원은 최근 MRI를 2대 늘렸다. 강북 B 대학병원도 1대를 추가 도입했다. 한 병원 관계자는 "급한 환자들의 경우는 새벽에 MRI 촬영을 하고 있을 정도"라고 했다.

건보 적자 5년간 9조 넘을 듯

이런 상황에 대해 서울의 한 대학병원 신경과 과장은 "예전엔 환자들이 머리 아프면 두통약을 먹었지, 종합병원으로 달려오지 않았다"면서 "건보 적용 이후 '뉴스에서 보험 된다길래 왔다'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체감상 이전보다 환자가 50%쯤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증상이 있어 MRI를 찍는 게 아니라 '형이 뇌출혈로 죽었는데 나도 그렇게 될까 겁난다'는 식으로 건강검진 하듯이 찍는 사람까지 생겼다"고 했다. 의사들이 불필요하다고 만류해도 "내가 뇌출혈로 잘못되면 책임질 거냐"고 반발하는 환자까지 있다고 했다. MRI 외에도 문재인 케어 시행 이후 초음파 촬영 등 각종 고가(高價)의 검사·진단도 급증하는 추세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상당수는 환자 요구에 따른 불필요한 진료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의료계의 시각이다.

의료계는 이런 상황이 병원, 환자, 건보 재정 모두에 독(毒)이 될 수 있다고 진단한다. 대형 병원들은 이런 상황이 병원 수익에 큰 도움은 되지 않고, 검사 대상이 갑자기 늘어 실제로 검사가 시급한 환자가 시기를 놓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병원업계 관계자는 "MRI 촬영이 늘면 병원이 돈을 많이 벌 것 같지만, 시설 확충비, 관리비, 인건비도 늘어나 부담스럽다"고 했다. 건보 재정에도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건보는 지난해 1778억원 적자를 내면서 2010년 이후 첫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부터 2023년까지 5년간 예상되는 건보 적자는 9조5148억원에 달한다.

[홍준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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