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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기생충’ 봉준호 “나는 좀 이상한 장르 영화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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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제71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뒷줄 왼쪽 두번재) 감독과 주연배우들이 22일(현지시간) 공식 사진 촬영 행사에서 웃음 짓고 있다. 칸=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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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스스로 장르 영화 감독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조금 ‘이상한’ 장르 영화를 만들고 있죠.”

제72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인 영화 ‘기생충’에 대해 “(예전) 봉준호가 더 눈부신 모습으로 돌아왔다”(버라이어티)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를 봉준호 감독은 ‘장르 변칙’에서 찾았다. 22일(현지시간) 칸영화제 중심 건물 팔래 드 페스티벌에서 열린 ‘기생충’ 공식 기자회견에서 봉 감독은 “장르적 흥분을 추구하는 동시에 그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공존한다”며 “그렇게 자기 분열하며 열린 공간 안으로 정치적 메시지가 끼어들고 한국인의 삶과 역사, 인간적 고뇌가 섞이게 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2003년 ‘살인의 추억’ 이래 봉준호 감독의 가장 성숙한, 한국 사회 현실에 대한 발언”(할리우드리포터)이라는 목소리도 들린다.

‘기생충’은 봉 감독이 2009년 ‘마더’ 이후 10년 만에 한국에서 촬영한 영화이기도 하다. 앞서 ‘설국열차’(2013)는 할리우드 배우들과 작업했고, ‘옥자’(2017)는 온라인 스트리밍업체(OTT) 넷플릭스가 제작했다. 봉 감독은 “평소 하던 대로 시나리오를 쓰고 스토리보드도 직접 그리면서 편안하게 작업했더니 원래 내 느낌대로 영화가 나온 것 같다”며 “기이하고 변태적인 이야기를 격조 있게 연기해 준 배우들에게 감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기생충’이 전날 밤 공식 상영된 이후 칸 현지에서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단순한 예우나 의례적 언사가 아닌 열광에 가까운 반응이다. 한국 영화 최초 황금종려상(최고상) 수상에도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간 분위기다. 크리스티앙 준 칸영화제 부집행위원장은 “‘기생충’은 올해 초청작 중 내가 가장 사랑하는 영화”라며 각별한 애정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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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맨 왼쪽) 감독과 주연배우들이 공식 상영회가 열린 21일(현지시간) 프랑스 칸 뤼미에르 극장 레드카펫에 섰다. 칸=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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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상영 당시에도 극장 안은 흥분으로 들끓었다. 엔딩크레디트가 떠오르기도 전에 갈채가 쏟아지기 시작해 기립박수가 10분간 계속됐다. 객석 곳곳에서 “트레 비앙(Tres bienㆍ매우 좋다)” “브라보”라며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한국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최근 몇 년 사이 칸영화제에서 상영된 한국 영화들 중에 압도적으로 분위기가 좋았다”는 평이 나왔다. 봉 감독을 비롯해 배우 송강호, 이선균, 조여정, 최우식, 박소담, 장혜진, 이정은 등 이날의 주인공들은 감격에 눈시울을 붉혔다. 영화 ‘설국열차’와 ‘옥자’로 인연을 맺은 영국 배우 틸다 스윈턴도 극장을 찾아와 봉 감독을 포옹하며 뜨겁게 축하했다.

‘기생충’은 가난하지만 사이 좋은 가족이 젊고 부유한 IT기업가 가족과 만나면서 벌어지는 계급 충돌을 그린다. 가족 모두가 백수인 기택(송강호)네 장남 기우(최우식)는 친구 소개로 박 사장(이선균)네 집에서 고액 과외를 하게 되고, 기택네 가족은 순진하고 단순한 안주인 연교(조여정)를 교묘하게 이용해 박 사장의 호화 저택에 침투하듯 발을 들인다. 과외 교사, 가사도우미, 운전 기사 같은 신분제 직업이 두 가족이 만나는 접점으로 작용하고, 서서히 경계가 지워지기 시작하면 스크린은 웃음기를 거두고 파국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설국열차’로 계급사회 전복을 시도하고 ‘옥자’로 자본주의의 야만성을 고발했던 봉 감독은 양극화된 한국 사회를 재료 삼아 신자유주의 체제를 해부한다. ‘공생’이 불가능한 곳에서 ‘기생’은 일종의 생존 투쟁이다. 기생 아래 또 다른 기생이 존재하는 아이러니가 충격과 공포를 부른다. 상영 중 박수가 터져나왔을 정도로 폭발력이 크다. 해학과 풍자, 잔혹한 비극이 뒤엉킨 ‘기생충’은 봉준호식 블랙 코미디의 정수로 꼽을 만하다. 박 사장네 저택과 기택네 반지하 방의 선명한 공간 대비, 그 둘을 연결하는 가파른 계단의 수직적 이미지 등 빼어난 미장센도 주제의식을 북돋는다. 영국 일간 가디언의 평론가 피터 브래드쇼는 “‘기생충’이 덩굴손처럼 뻗어 와 당신에게 깊숙이 박힐 것”이라는 평을 남기며 별 5개 만점에 별 4개를 매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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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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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은 영화평론가는 “계급사회와 불평등에 관한 문제는 전작에서도 보여줬지만 ‘기생충’에서 더욱 명징하게 드러난다”며 “봉 감독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유머, 디테일, 캐릭터가 잘 버무려진 작품”이라고 말했다. 전혜정 런던아시아영화제 집행위원장은 “봉 감독이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했다”며 “보편성 있는 주제이기 때문에 선입견 없는 해외 관객들이 더욱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했다.

‘기생충’은 막바지를 향해 가는 칸영화제의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기생충’과 같은 날, 배우 브래드 피트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마고 로비가 총출동한 쿠엔틴 타란티노(미국) 감독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도 공식 상영됐다. 두 대가의 ‘빅 매치’는 올해 칸영화제 최고 화젯거리였다. 봉 감독과 타란티노 감독은 친분이 두터운 사이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가디언에서 별 5개 만점을 받았다. 페드로 알모도바르(스페인) 감독의 ‘페인 앤드 글로리’와 켄 로치(영국) 감독의 ‘소리 위 미스드 유’도 칸 현지 평론가들 사이에서 ‘기생충’의 경쟁작으로 거론되고 있다. 폐막식은 25일 오후에 열린다.

칸=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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