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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참을성 없는 20대도 진~한 전통에 빠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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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창극단 신임 예술감독 유수정

조선일보

/고운호 기자


"아이고, 되다!"

20일 오후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뜰아래연습장. 다음 달 5일 막을 올리는 창극 '심청가'(연출 손진책) 연습을 마치고 나온 유수정(59)이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며 외쳤다. 지난 4월 창극단 신임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그는 입단 32년 차 창극단의 '맏언니'이기도 하다. 지난해 초연 때와 마찬가지로 안숙선 명창과 번갈아 '심청가'의 도창(導唱·창극의 해설자)으로 무대에 선다. 그는 "직책이 두 개라 연습에, 회의에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겠다"며 "차라리 대여섯 시간 걸리는 완창 무대가 더 쉬운 것 같다"며 껄껄 웃었다.

아힘 프라이어의 '수궁가'(2012), 오페라 연출가 이소영의 '적벽가'(2015) 등 그간 국립창극단이 판소리 다섯 바탕으로 만든 창극은 파격적인 시도가 주를 이뤘다. 반면 지난해 명동예술극장에서 초연한 '심청가'는 판소리에 오롯이 집중한 작품. 5~6시간이 걸리는 완창 무대에서 핵심 대목을 추려 150분 길이의 창극으로 재탄생시켰다. 당시 손진책 연출은 "우리 소리가 먼저 보이고 느껴지게 하겠다"며 무대와 소품을 최소화하고, 반주 또한 온전히 전통 악기로 구성했다. 유 감독은 "수많은 버전의 심청가 무대에 올라봤지만, 이 작품은 압축적이면서도 판소리의 본질은 제대로 살렸다는 점이 남다르다"며 "핵심만 간결하게 보고 싶어 하는 젊은 세대에게도 소구하는 작품"이라고 했다.

1987년 국립창극단에 특채로 입단한 유수정은 창극 '춘향가'의 춘향, '심청가'의 심청, '수궁가'의 토끼 등 주역을 도맡아왔다. 그는 "젊은 시절 심청을 맡았을 때보다 지난해 도창을 맡았을 때 훨씬 행복했다"고 했다. "도창은 실력뿐 아니라 오랜 세월 갈고 닦은 연륜이 필요해요. 소리꾼이라면 누구나 꿈에 그리는 역할이죠. 더구나 평생 스승으로 모셔온 안숙선 선생님과 '더블'(캐스팅)이라니…."

조선일보

창극 ‘심청가’의 도창(해설자)으로 무대에 선 유수정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그는 “배우일 때는 내 역할만 잘하면 됐지만, 이제는 예술감독이 됐으니 작품 전체를 생각해야 한다”며 “처음부터 둘 다 잘하려고 하기보다는, 마라톤처럼 힘을 안배하며 3년간 달려보겠다”고 말했다. /국립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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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가야금 명인 유대봉의 외동딸이자 '만정제 춘향가'를 완성한 명창 김소희의 대표 제자다. 평탄한 길을 걸어온 것 같지만, 그는 "소리를 시작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고 했다. "아버지가 징글징글하게 반대하셨어요. 버릇처럼 '고등학교 마치고 시집이나 잘 가라'고 하셨죠." 그러나 열여섯 소녀는 국립극장에서 장영찬·김진진 주연의 창극 '춘향가'를 본 뒤 '평생 소리꾼으로 살겠다'고 결심했다. "돌아가실 때가 돼서야 아버지 마음이 누그러지셨어요. '이왕 할 거면 남 앞에 우뚝 서는 톱이 되라'고 하셨죠."

국립창극단은 전임 김성녀 예술감독이 이끈 7년 동안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서양 고전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와 창극을 결합해 관객층을 넓혔고, 다수 작품이 해외 무대에 진출해 호평받았다. 유 감독은 "앞으로는 보다 '진한 전통'에 집중하려 한다"고 했다. "이젠 창극 공연이 열리면 어르신뿐 아니라 젊은 세대들도 찾아오죠. 지금부턴 깊이로 승부해야 한다고 봐요." 본인의 강점으로는 "지금도 단원들에게 언니·누나로 불린다는 점"을 꼽았다. "명함만 새로 팠을 뿐, 본업은 소리꾼이고 단원들에겐 선배죠. 감독과 단원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창극단을 이끌 겁니다. 이왕 할 거면, 잘해야죠." 6월 5~16일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02)2280-4114

[양승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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