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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학교는 ‘비정규직’ 백화점…학생들 몸으로 차별 배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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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기간제교사노동조합 박혜성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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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교사입니다>(도서출판 이데아). 작년 1월 창립한 전국기간제교사노동조합(이하 노조) 박혜성 위원장이 최근 낸 책이다. ‘차별과 불안에 맞서 날개를 편 기간제 교사의 이야기’란 부제가 있다. 저자는 33살이던 1996년 처음 교단에 섰다. 그리고 2017년 2월까지 기간제 교사로 꼬박 15년 가르쳤다. 학교는 10곳을 거쳤고, 최장 5년 연속 가르친 학교도 있다. 올해도 18개교에 지원서를 냈지만 응답은 한 곳도 없다. 노조 활동 탓이라고 생각한단다. 지난 17일 서울 중구 새문안로 노조 사무실에서 저자를 만났다.

기간제 교사는 정교사 자격증을 갖춘 비정규 교사다. 정규 교사의 휴직·파견·연수 등으로 대체할 교사가 필요할 때 채용한다. <교육통계연보>(작년 4월 기준)를 보니 기간제 교사는 4만9977명이다. 공립 교원 중 약 12%, 사립은 20%에 이른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공공 부문 비정규직 제로’ 공약을 했다. 기간제 교사들이 현 정부 출범을 반긴 이유다. 하지만 정부는 그들을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뺐다. 여기엔 ‘기간제 교사의 일괄적이고 즉각적인 정규직 전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전교조 지도부의 뜻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2013년부터 전교조 활동을 했던 박 위원장이 전교조를 떠나 따로 노조를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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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은 100여 명입니다. 서울과 경기, 영남, 호남 4개 지부가 있어요. 노조 결성 뒤 기간제 교사 정규직화와 차별 폐지 활동을 해왔어요. 사실 정규직화와 차별 폐지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정규직화를 통해 다 해결할 수 있죠.”

노조는 조합원 민원 창구이기도 하다. 최근엔 이른바 ‘쪼개기 계약’으로 불이익을 받은 교사의 민원 해결에 힘을 쏟았다. “꼬박 1년 일하고도 정규 교사 사정으로 세 번 나눠 계약을 했다고 해요. 그런데 교육당국 전산 시스템 오류로 근무일이 11개월 29일이 됐어요. 이러면 호봉 승급이 되지 않죠. 시정을 요구해도 교육청이 난색을 보여 결국 국민권익위원회에 민원을 내 해결했죠.”

그는 ‘기간제 교사 1급 정교사 연수’가 올여름부터 광주와 울산, 경남, 세종에서 시작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2급 정교사가 3년 이상 교육 활동을 하면 1급 연수를 받을 수 있음에도 교육당국은 그간 기간제 교사에게는 연수 기회를 주지 않았다. “작년 대법 판결로 기간제 교사 연수가 가능해졌죠. 판결 뒤 기자회견을 두 차례나 했어요. 즉각 시행하라고요. 서울과 경기교육청이 시행 시기를 내년으로 미뤄 아쉬워요.”

책엔 기간제 교사로 일하며 겪은 차별 사례는 물론 올해로 도입 22년이 된 기간제 교사 제도의 실태와 문제점이 담겼다. “기간제 교사 절반이 담임입니다. 학생부장도 있어요. 노조 집행부 한 분이 이번에 기간제 교사 지원을 했는데 학생부장을 할 수 있는지 물어봤다고 해요. 학생부장은 정규 교사들이 기피하거든요. 한 학교에서 9년 연속 근무하는 기간제 교사도 있어요. 정규 교사가 육아휴직을 연달아 세 번 하면 가능하죠.” 그가 보기에 기간제 교사는 채용 형태만 다를 뿐 학교에서 하는 일은 정규 교사와 다르지 않다. 오히려 계약직 신분 때문에 수업이나 업무 분장에서 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는 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교육대학원에 들어가 2급 정교사(국어) 자격을 땄다. 대학원에 가기 전 10년 가까이 직장 생활도 했다. “임용시험은 세 번 보고 그만 뒀어요. 돈을 벌어야 했거든요. 암기테스트에 불과한 시험에 대한 회의도 있었죠.” 기간제 교사들은 노조 결성에 앞서 2016년 3월 전국기간제교사연합회를 만들었다. 그도 창립 멤버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두 기간제 교사가 계속 순직 인정을 못 받더라고요.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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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제 교사는 학교의 을이다. 제 목소리를 내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 교단에 섰을 때 아이들이 선생님이라고 불러주는 게 너무 좋았어요. 아이들과 눈 마주치고 수업하고 그들이 저를 사랑하고 믿어주는 것도요. 교사를 시작할 때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가 많았어요. 교사 생활이 너무 행복해 차별에 둔감했죠. 임용시험을 안 봤으니 차별은 당연하다는 생각까지 했죠. 그러다 8년 10년이 지나며 뭔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채용방식이 다르다고 같은 일을 하면서 다른 대접을 받는 게 옳은 것인지 의문이 생겼죠.” 예를 들었다. “방학 때 정규 교사는 쉬지만 기간제 교사는 15일 이상 학교에 나와야 하는 경우도 있어요. 저도 그런 일을 겪었죠. 일부 교육청 지침에 방학 때 급여를 주려면 기간제 교사에게 업무를 줘야 한다고 돼 있거든요. 방학 때 급여나 퇴직금을 주지 않으려는 ‘쪼개기 계약’ 관행도 사라지지 않았어요.”

지난해초 ‘기간제 교사 노조’ 결성
“쪼개기 계약, 방학 출근 강요 등
차별 철폐는 정규직화 통해 가능”


96년부터 10개 학교서 15년 가르쳐
기간제 교사 경험·실태 담은 책 출간
내달 1일 출간 기념 북콘서트


노조는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를 외친다. “기간제 제도 자체를 없애야 합니다. 임용시험 지원자의 10%만 임용이 됩니다. 90%는 기간제가 되거나 노량진 학원으로 가죠. 정규 교사를 늘리는 게 예비 교사들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기간제 교사 80% 이상이 대체 복무이죠. 정규 교사를 늘려 서로 도와가며 대체 근무를 하면 됩니다.” 기간제 제도는 학교 교육에도 영향을 미친단다. ”12월이 되면 재계약에 신경이 곤두서 저도 모르게 불안해져요. 여유가 있으면 넘어가도 될 문제를 두고 학생들에게 화를 내기도 하죠. 2월 첫 학기를 시작하며 세운 학습 목표를 달성하기도 전에 계약 중도해지를 당하기도 하죠.” 덧붙였다.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차별입니다. 그런데 학교가 비정규직 백화점입니다. 학교에서 비정규직 차별을 몸으로 배워요. 이런 학교에서 어떻게 평등 교육이 가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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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기간제 교사를 하며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물었다. “남자 고등학생 반이었어요. 수업하다 농담 한마디에 학생들과 깔깔 웃다가 제가 손을 들어 ‘그만’ 했어요. 그런데 딱 웃음이 멈추는 거예요. 그 상황에 놀라 학생들과 또 막 웃었어요. 아이들이 일순간에 웃음을 멈추는 게 신기했어요. 그만큼 제 수업에 집중한 거죠.” 기억하고 싶은 순간은 또 있다. “노동절 계기 수업 때 한 학생이 정규직이냐고 묻더군요. 거짓말을 할 수 없어 사실대로 말했어요. 수업을 마친 뒤 학생 두셋이 복도로 나와 저에게 ‘선생님 힘내세요’라며 환하게 미소를 짓더군요. 감동이었죠. (비정규직이라고 밝힌 뒤) 학생들이 반항하거나 무시하는 일도 없었어요.”

가장 아쉬웠던 순간은? 역시 학생과 함께한 순간이다. “담임을 했던 한 아이를 잘 보듬어주지 못한 게 지금도 안타까워요. 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 돌봄도 받지 못한 아이였죠.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였어요. 주변 원망이 강했죠. 일탈을 해 결국 전학을 보내야 했어요.”

노조 활동을 하는 지금도 출근길에 우연히 학생들이 선생님을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 울컥 한단다. “제가 지금 학교에 있으면 체험학습을 지도할 텐데 그런 생각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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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책을 냈는지 물었다. “기간제 교사들에게 노조가 기간제 교사를 위해 존재한다는 점을 알리고 싶었어요. 차별이나 부당한 일에 개인적으로 대처하기는 힘들어요. 노조와 같이 해결해가야죠.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분들에게 왜 정규직화가 필요한지도 알리고 싶었죠.”

그는 새달 1일 서울 지하철 서대문역 근처 ‘순화동천’에서 출판 기념 북콘서트를 한다. (02)334-0312.

전교조가 ‘기간제 교사의 전면적 정규직화’ 구호는 공유하고 있지 않지만 연대의 끈은 이어갈 것이란 얘기도 했다. “다른 사업장에서 정규직화 말이 나오면 박수를 치다가도 자기 문제가 되면 ‘우리는 특수해’라고 반대합니다. 전교조 지도부의 반대 목소리가 다른 공공 부문의 정규직화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어요. 하지만 차별 철폐처럼 같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안은 전교조와 계속 연대할 생각입니다.” 기자가 책 출간을 계기로 조합원이 많이 늘면 좋겠다고 하자 박 위원장은 활짝 웃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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