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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걸 페미니즘’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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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각성’

청소년 대상 페미니즘 책 출간 활발

‘나의 첫 젠더수업’ ‘악어 프로젝트’…

“도서시장 위축돼도 수요 여전” 전망



한겨레

2017년 말 출간된 청소년 페미니즘 책 <나의 첫 젠더 수업>(김고연주 지음, 창비)은 1년 반 만에 11쇄를 찍어 3만부에 육박하는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출판 시장이 워낙 불황인데다, 청소년 인문사회 분야 판매가 활발하지 않은 상황을 고려하면 엄청난 관심을 받고 있는 셈이다. 청소년 페미니즘 교양서 <페미니즘 교실>(김고연주 엮음, 돌베개)도 책이 나온 지 불과 한달 만에 재쇄를 찍게 됐다. 판매가 상당히 고무적이라고 출판사도 자평한다.

<82년생 김지영>의 해설을 쓴 여성학자로 잘 알려진 김고연주 박사(서울시 젠더자문관)는 출판계가 주목하는 청소년 페미니즘 분야의 저자다. 그는 “지금의 10대 여성들은 어느 세대보다 성별 고정관념과 성역할에 의한 억압, 여성 혐오 발언, 성희롱 같은 일상 속 차별에 민감하다”며 “나이가 어리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적 대상화 되거나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10대 여성들이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고 공부할 책을 필요로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말했다. 온라인서점 알라딘의 박태근 인문엠디(MD)는 “페미니즘 이슈에 대한 학생, 교사, 사서, 학부모 들의 관심이 높아져 2017년부터 관련 단행본이 꾸준히 발간되고 있고 관련 수요가 유지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10대 청소년들을 겨냥한 페미니즘 도서 출간은 줄줄이 예정돼 있다. 사계절 출판사는 다음달 청소년용 <페미니즘 탐구생활>을 선보인다. 번역서인 이 책은 페미니즘의 기본개념과 역사 속 주요 페미니스트 소개를 담으며, 10대 독자 대상이지만 꽤 중량감 있는 개론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5권의 어린이·청소년 페미니즘 책을 펴낸 출판사 우리학교도 여성주의 자기방어 훈련에 대한 책을 준비 중이다. 김영숙 우리학교 편집장은 “2016년 5월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성인도서에서 시작된 페미니즘 출판 붐이 청소년 도서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어린이·청소년 전문 출판사들을 중심으로 이 분야 저자를 찾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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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책들은 전문가의 추천이 판매에 큰 영향을 미친다. 남녀 성별 이분법, 몸, 가족, 혐오 등 젠더 문제를 다방면으로 풀이한 <나의 첫 젠더 수업>은 2018년 학교도서관저널, 전국국어교사모임, 학교도서관 사서협회 등이 뽑은 추천도서에 올라 판매에 도움을 받았다. <며느라기>로 유명한 수신지 작가의 그림이 어우러진 페미니즘 교양서 <페미니즘 교실>은 만듦새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김고연주 박사를 비롯해 여성학자, 페미니스트 교사, 성폭력상담소 연구원, 인권활동가 등 국내 최고의 전문가들이 총동원돼 혐오와 막말이 놀이가 된 학교 교실 속으로 들어간다. 권영민 돌베개 청소년팀 팀장은 “꾸밈노동, 데이트 폭력, 성소수자 문제, 미투 운동 등 예민한 페미니즘 이슈들을 제한없이 다루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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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게 2차 성징은 일종의 폭력이 된다. 남성 청소년의 2차 성징이 성적 주체로 자신을 확립하는 일이라면, 여성 청소년의 2차 성징은 성적 대상화를 경험하고 남성 중심 사회가 제시하는 젠더 롤에 따라 자신의 몸을 맞추어가는 일이다. 나의 몸은 내가 아닌 ‘고등어’ ‘은꼴사’ 등 남성 판타지를 담은 이름으로 호명된다.” <걸 페미니즘>(양지혜 외 지음, 교육공동체벗, 2018)은 청소년 페미니스트 당사자들이 직접 쓴, 흔치 않은 책이다. 가정, 학교, 알바 일터의 성차별과 청소년 성소수자가 처한 현실, 촛불을 든 여성 청소년이 ‘광장’에서 겪은 어이없는 어른들의 이야기까지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전문가 못지않은 젠더에 대한 사유와 필력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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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노블 부문에서는 서구 여성운동의 역사를 다룬 <시스터즈>(마르타 브린 글, 제니 조달 그림, 한우리 옮김, 한겨레출판)가 눈에 띈다. 2016년 5월 강남역 살인사건과 미투 운동 이후 20~30대 여성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던 프랑스 작가 토마 마티외의 그래픽 북 <악어 프로젝트>(맹슬기 옮김, 푸른지식)는 2016년 6월 초판 이후 지금까지 15쇄를 찍어 3만부 넘게 팔려나갔다. 윤미정 푸른지식 대표는 “발간 초기에 성폭력을 다룬 그림이 너무 노골적이라는 반응을 보이던 40대 독자들이 이젠 상당수 구매 대열에 동참해 청소년 자녀들에게 책을 사주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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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일러스트레이터 재키 플레밍이 남성 중심의 역사를 신랄하게 풍자한 유쾌한 그림책 <여자라는 문제: 교양 있는 남자들의 우아한 여성 혐오의 역사>(노지양 옮김, 책세상, 2017)는 17~20세기 이른바 ‘천재’라는 남자 위인들이 여자를 어떻게 배제하고 멸시했는지 능청스럽고도 날카롭게 설명했다. <나도 몰라서 공부하는 페미니즘>(키드 글·그림, 팬덤북스, 2018)은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페미니즘 만화 ‘페미툰’을 단행본으로 만든 페미니즘 입문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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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청소년 페미니즘 입문서로 전문가들이 손꼽는 <소녀,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우리학교, 2017)는 정희진, 김고연주, 김홍미리 등 12명의 페미니스트들이 성 정체성, 여성 혐오, 환경문제 등에 대해 쓴 책으로, 1만부 이상 팔려나갔다. 14살 로사가 점점 변화하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탐색하는 과정을 그린 <나에 관한 연구>(안나 회그룬드 지음, 이유진 옮김, 우리학교, 2017)는 볼로냐 라가치상을 받은 고급스러운 철학 그림책으로 국내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그밖에도 한국사에서 제외된 여성들의 역사를 설명한 <이임하의 여성사 특강>(철수와영희, 2018)과 <처음 읽는 여성 세계사>(케르스틴 뤼커·우테 댄셸 지음, 장혜경 옮김, 어크로스, 2018)가 청소년 페미니즘 역사서로 권할 만하다.

교보문고 집계를 보면, 2009년 27종에 머물렀던 페미니즘 도서 발간은 2016년 55종, 2017년 95종, 2018년 105종으로 뛰었다. 올해 다섯 달 동안에만 벌써 41종이 서점에 깔렸다. 2019년 5월 중순 현재 온라인서점 알라딘에서 ‘페미니즘’을 키워드로 검색되는 책은 375종, ‘젠더’ 키워드 검색 결과는 280여종이다. 이 중 청소년 대상 페미니즘 책들 대부분이 2017년 이후 출간되었다. 한국 사회의 젠더 이슈가 수그러들지 않는 한, 10대들의 ‘페미니즘 공부’도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어린이·청소년 추천 페미니즘 도서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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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움말: 교보문고, 알라딘, 김고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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