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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문화가 인간을 영리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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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호모 사피엔스, 그 성공의 비밀
조지프 헨릭 지음, 주명진·이명권 옮김/뿌리와이파리·2만8000원

인류가 지구 상에서 가장 성공한 종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다른 종에 비해 뇌가 엄청나게 크기 때문일까. 우리는 치타처럼 빨리 달릴 수 없지만, 시속 300㎞로 주행하는 날렵한 스포츠카를 발명했고, 시력과 청력이 형편없는데도 손바닥만 한 휴대전화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언제든지 소통한다. 그러니 큰 뇌에서 비롯된 타고난 총명함이 오늘의 인류를 만들었다는 추론은 꽤 그럴듯하게 들린다.

하지만 수많은 학자가 주선한 인간과 침팬지의 대결 결과를 살펴보면 우리의 ‘뇌부심’이 지나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일 라이프치히 진화인류학연구소의 에스터 헤르만과 마이클 토마셀로는 침팬지 106마리, 독일 어린이 105명, 오랑우탄 32마리를 대상으로 38가지에 이르는 인지검사를 실시했다. 공간, 수량, 인과 능력을 측정하는 검사에서 두 살 반배기 아이들은 자신보다 훨씬 작은 뇌를 가진 침팬지와 비슷한 평균성적을 나타냈다. 심지어 도구사용에서는 침팬지가 74%의 정답률로 23%의 정답률을 보인 인간 아이들을 가볍게 제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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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학자 이노우에 사나와 마쓰자와 데쓰로는 침팬지 어미와 새끼 세 마리에게 터치스크린의 숫자(1~9)를 알아보고 순서대로 두드리도록 훈련시킨 뒤 정보처리속도와 작업기억을 검사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이 방법으로 침팬지와 일본 대학생들이 대결을 벌인 결과, 작업기억은 인간이 우수했지만 처리속도는 침팬지가 월등히 빨랐다.

조지프 헨릭 하버드대 인간진화생물학 교수는 다양한 실험과 인류학 자료들을 근거로 “우리 인간은 지적인 종이기는 하지만 결코 우리 종의 생태적 성공을 설명할 만큼 영리하지는 않다”고 말한다. 그가 20년간의 연구를 집대성한 <호모 사피엔스, 그 성공의 비밀>을 통해 밝힌 인류의 성공 비결은 ‘집단두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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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릭 교수는 “우리 종은 문화에 중독되도록 진화해왔다”고 말한다. 여기서 문화는 “모두가 성장하는 동안 주로 다른 사람에게서 배우는 방법으로 습득하는 관행, 기법, 발견법, 도구, 동기, 가치, 믿음 등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덩어리”를 가리킨다. 앞서 소개한 두 살 반배기들과 침팬지의 대결에서 인간 아이들이 100, 침팬지가 0을 기록해 인간이 압승을 거둔 항목이 딱 하나 있다. ‘사회적 학습 능력’이다. 헨릭 교수는 “놀라울 정도로 사회적인 우리 인간은 서로에게 배우기 시작했고, 한 세대가 이전 세대로부터 조금씩 주워 모은 노하우를 연마해 여러 세대 뒤에는 이렇게 생산한 관행과 기법의 도구 모음이 너무 크고 복잡해진 나머지 개인의 독창성과 사적인 경험만으로는 생전에 알아낼 수 없게 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더 유용한 정보의 덩어리(문화)를 더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학습자가 살아남는 ‘자연선택’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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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대한 정보를 습득해야 하므로 뇌는 급속도로 커졌다. 아동기가 연장되고 폐경 이후의 삶이 길어지면서 생존에 필요한 노하우를 습득할 시간과 후대에 전달할 기회가 생겼다. 인간의 문화적 학습능력과 유전적 진화는 이처럼 긴밀히 상호작용하면서 인간의 해부구조와 생리, 심리를 형성했다. 헨릭 교수는 이를 ‘문화-유전자 공진화’라고 부른다. 또한 우리가 개인적인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사회규범을 준수하려 하는 것은 “문화적 진화가 ‘자기 길들이기 과정’을 통해 우리를 친사회적이고 유순하며 규칙을 따르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유전적 진화를 주도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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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릭 교수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남을 본받으며 적절한 규범을 활용해 폭넓게 상호 연결된 커다란 집단 안에서 살 수 있도록” 진화했다. ‘뇌부심’ 대신 공동체와 집단지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장착한 채, 서로 배우고 협력하며 낯선 사람을 받아들이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인류 진화의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얘기다. <호모 사피엔스, 그 성공의 비밀>은 태곳적 원시인이 아니라 인류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다.

이미경 자유기고가 nanazaraz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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