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52699133 0012019052552699133 02 0201001 6.0.12-RELEASE 1 경향신문 0 popular

"몸캠 당했는데 학교는 해줄 수 있는 게 없대요"

글자크기
경향신문

getty image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성적인 화상 채팅을 통해 돈을 뜯어내는 이른바 ‘몸캠 피싱’에 청소년들이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하지만 학교의 예방교육은 물론이고 사건 발생 이후에도 이를 구제할 의지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도권 한 중학교에 다니는 ㄱ군은 지난 4월 몸캠 피싱 피해를 당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 호기심에 켠 ‘랜덤채팅’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랜덤채팅은 사이트에 접속해 ‘대화하기’ 버튼만 누르면 무작위의 상대와 연결해주는 채팅 시스템. 회원가입이나 로그인이 필요 없고 서로에게 상대는 ‘낯선 사람’으로만 표시된다.

ㄱ군이 ‘16 남’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자 상대는 ‘20 여’라고 밝혔다. 대학 새내기라는 여성은 자신의 대학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하다가 ㄱ군에게 “이야기가 잘 통해 그냥 헤어지긴 아쉬우니 카카오톡 아이디를 교환하자”고 제안했다. 랜덤채팅은 아이디가 없기 때문에 대화를 종료하면 다시 상대를 찾을 수 없다.

돈 없는 청소년, ‘몸캠 노예’ 되기도

이들은 카톡 대화방으로 이동해 채팅과 영상통화를 하게 됐다. 여자친구가 있느냐는 질문에서 시작한 대화의 수위는 점점 높아져갔다.

ㄱ군은 영상통화를 통해 자신의 알몸과 얼굴을 상대에게 노출했다. 여성은 ㄱ군에게 목소리가 잘 안 들린다며 자신이 보내는 파일을 설치해 다른 화상채팅 어플을 만들라고 했다. 파일을 설치하자 상대의 태도가 돌변했다. ㄱ군의 얼굴과 알몸이 촬영된 동영상이 있으며 30만원을 입금하지 않으면 동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했다. 그제서야 ㄱ군은 자신의 휴대전화가 해킹됐으며 몸캠 피싱에 당했다는 걸 알게 됐다.

수중에 2만원밖에 없던 ㄱ군은 모바일 문화상품권을 구입해 상대에게 보냈다. 중학생에게 30만원은 너무 큰 액수였다. ㄱ군의 한 달 용돈은 4만원. 상대에게 “제발 한 번만 봐달라”고 울면서 빌었지만 소용없었다. 상대는 ㄱ군의 카카오톡 친구 중 무작위로 몇 명을 골라 단체 채팅방을 만들었다. 그리고 ㄱ군의 얼굴이 나온 사진을 공유했다. 언제든지 다른 사진이나 영상도 유포시킬 수 있다는 의미였다.

몸캠 피싱을 당하는 청소년은 ㄱ군만이 아니다.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 소속 여명 의원(자유한국당)에 따르면 최근 4년간 몸캠 피싱 피해자는 3만1000명에 이르고 이 중 절반이 청소년이다. 스마트폰 사용이 활발한 데다 성적 호기심이 크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이 수치심에 신고를 꺼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피해규모는 이보다 클 것으로 보인다.

경제력이 없는 청소년 피해자는 ‘몸캠 노예’로 동원되기도 한다. 입금을 하지 않는 대신 여성인 척 위장해 채팅방에서 또 다른 피해자를 ‘낚거나’ 매일 일정 시간 이상 온라인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몸캠 피싱 채팅방을 홍보하는 식이다. 실제 네이버 ‘몸캠 피싱 피해자 모임’ 카페를 보면 이 같은 2차 피해를 호소하는 글을 볼 수 있다.

한 청소년은 “방금 톡이 와서 일 제대로 하라고 하네요. 부모님한테 말도 못하겠고 너무 무서워요. 도와주세요”라는 글을 올렸다. 공개된 대화 내용을 보면 “제가 라인으로 끌어들이면 형이 마무리하나요”라고 묻자 가해자는 “○○, 넌 그냥 라인으로 끌어들이는 역할. 나머지는 할 필요 없다. 사람 너무 적다. 열심히 해라!!”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행동은 당장의 유포를 막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가해자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유포를 할 수 있으며, 나아가 범죄에 가담한 것으로 분류돼 이후 법적인 책임까지 따를 수 있다. 피해자 모임 카페의 관리자는 “가해자가 시키는대로 하는 청소년들이 적지 않다”며 “일을 더 크게 만들지 말고 무조건 부모님께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학생 대상 몸캠 피해도 ‘학교폭력’

여성 청소년이 피해자일 경우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몸캠 사실을 주변에 알리겠다는 협박뿐 아니라 특정 신체부위가 찍힌 동영상과 사진을 음란사이트에 유포하겠다는 협박에 시달린다. 실제 2017년 8월 가해자로부터 끊임없이 사진과 동영상을 요구받던 여중생이 건물에서 투신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현실과 달리 학교에서 청소년을 보호할 장치는 작동하지 않고 있다. ㄱ군의 경우 학교에 피해사실을 알렸지만 별 도움을 받지 못했다. 경찰에 신고한 게 전부다. 몸캠 피싱은 학교폭력으로 볼 수 없어 학교에서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이유였다. ㄱ군과 학교는 경찰 조사 결과만 기다리고 있다.

이에 대해 다수 교사들은 “학교의 의지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고등학교에서 학교폭력을 전담한 한 교사는 “학교폭력은 피해자가 기준이다. 가해자, 피해자 모두 학생이어야 학교폭력으로 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지금 상황은 학교가 학생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쉬쉬하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실제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을 보면 학교폭력이란 학교 안팎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발생한 상해, 폭행, 감금, 협박, 성폭력, 따돌림 등에 의해 신체·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를 말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가해자에 상관없이 피해자가 학생이면 학교폭력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또다른 교사도 “몸캠 피싱으로 인한 학생 피해가 심각하다. 피해자가 학생이기 때문에 학교폭력위원회를 열어서 인정결석 등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나아가 학교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기 때문에 정부나 교육청에서 구체적으로 실효성 있는 예방교육, 사후대책을 고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몸캠 피싱은 해킹이 된 이후에는 손쓸 방법이 없다. 경찰에 신고를 한다 해도 범인 검거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유포 가능성이 높다. 한국사이버보안협회에 따르면 몸캠 피싱 피해자 10명 중에 8명이 유포 피해를 겪는다. 10명 중 2명은 가해자에게 입금까지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1000만원을 입금한 피해자도 있다.

반면 몸캠 피싱은 수법을 미리 알고 있다면 예방할 수 있는 범죄다. 대부분 상대가 보낸 파일 또는 링크를 열어보면 휴대전화가 해킹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파일이나 링크를 열어보지 말라는 간단한 교육만 주기적으로 하면 된다. 하지만 일선교사조차 이런 내용을 모르는 경우가 많고 “왜 그런 짓을 했느냐”며 학생을 다그치기도 한다.

김현걸 한국사이버보안협회 대표는 “몸캠이 자극적인 소재이기 때문에 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미 많은 청소년들이 사이버 성폭력 문제에 노출돼 있는 만큼 혼을 낼 게 아니라 적극적인 성교육이 필요하다”며 “나아가 교직원 직무연수에도 사이버 성폭력 부분이 추가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최신 뉴스두고 두고 읽는 뉴스인기 무료만화

©경향신문( 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함께 볼만한 영상 - TV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