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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시 ‘대안 없는 숙제’ 30년…허점투성이 정책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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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주택 수급 불안, 신도시로 해결 안돼

집 충분하다며 수요억제…집값 못 잡자 등 떠밀리듯 ‘3기 신도시’

교통 문제 지적엔 ‘변죽’만…변수 파악하고 단계적 추진 바람직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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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건물만 들어선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기반시설·편익시설·생산시설·문화공간 등 빈틈없이 계획되고 짜임새 있게 배치되어야 정상적인 도시 기능을 갖게 된다.”

1989년 정부가 치솟는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해 ‘1기 신도시’ 건설을 발표한 직후 보도했던 경향신문 기사의 일부다. 당시 제목은 <수도권 신도시, 대안 없는 숙제…“일단 짓고 보자”>로, “현재 구상 중인 신도시는 주민의 취업기회가 전혀 없는 단순한 베드타운으로 되어 있다. 인구의 이동·집중은 주택을 짓는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며 “인구 분산이나 도시과밀화 해소 등 국민경제의 균형발전 문제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30년이 흐른 지금, 예상은 그대로 현실이 됐다. 문제는 신도시 정책 방향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중장기 대책 없이 집값 잡기 수단으로만 활용되면서 당초 약속했던 자족기능 강화와 교통망 확충은 후순위로 밀렸다. 정책 불신도 깊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3기 신도시가 발표된 것이다.

■ 신도시 30년, 탄생부터 속전속결

국토교통부 자료를 보면, 신도시는 국토 및 지역개발이나 대도시 문제해결 등 두 가지 정책 목표로 추진되는 도시를 뜻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 개발된 울산 신시가지가 최초의 현대적 신도시다. 이후 경기 성남시와 서울 영동지구 및 여의도 등이 개발됐으나 개발 지역에 신도시라는 명칭이 따라붙은 것은 노태우 정부가 1989년 지정했던 경기 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 5곳이 처음이었다.

당시 정부는 ‘200만호 주택 건설 추진 계획’에 따라 1기 신도시를 추진했는데 이 목표를 5년 만에 달성했다. 토지 수용과 함께 분양에 돌입해 1990년에만 주택 75만가구를 공급했을 정도였다. 가파른 경제 성장으로 주택 수요가 급증하자 서둘러 주택 공급을 확대했던 것이다. 급등하던 집값은 신도시 입주가 시작된 1991년 하락세로 돌아서 한동안 안정세를 보였다. 다만 한꺼번에 공사가 몰리면서 건축자재가 부족하자 불량 철근과 바닷모래 등을 사용해 부실공사 파문이 일기도 했다.

정부가 ‘신도시 카드’를 다시 꺼낸 것은 14년 후인 2003년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경기가 살아나면서 집값이 다시 널뛰기 시작하자 참여정부는 2기 신도시를 지정했다. 목적은 역시 서울의 주택 수요 분산이 컸다. 이에 따라 판교·동탄·위례는 강남 지역의 수요 대체를 위해, 김포 한강·파주 운정·인천 검단은 강서·강북지역의 수요 대체 목적으로 선정됐다. 여기에 광교는 수도권 남부의 첨단·행정기능을, 양주(옥정·회천)와 평택고덕은 각각 경기북부와 남부의 택지공급 및 거점기능 역할을 맡았다.

2기 신도시는 1기와 달리 서울 등 주변지역과의 교통체계 구축 및 기업유치를 통한 자족기능을 갖추게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정부는 서울 경계에서 10㎞ 떨어져 수도권의 과밀해소와 주거안정에 기여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토지보상금이 대거 풀리면서 수도권 땅값이 들썩이며 집값도 끌어올렸다. 판교와 동탄이 일자리를 갖춘 주거지로 탈바꿈했을 뿐 운정과 검단 등 나머지 신도시는 현재 개발이 끝나지도 않았으나 미분양에 시달리고 있다. 그린벨트를 해제해 대규모 택지를 공급하면서 수도권 녹지가 빠르게 사라지는 부작용도 발생하고 있다.

두성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서울의 주택 수급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수도권에 주택을 대량 공급하는 게 문제”라며 “핵심은 피하고 우회방안을 내놓다보니 서울 길목의 교통난과 수도권 집중현상 가속화 등 각종 부작용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 떠밀리듯 내놓는 정책들

공교롭게도 신도시 카드는 비슷한 주기로 등장했다. 2기 신도시가 1기 신도시의 14년 후에 나왔다면 3기 신도시는 2기 신도시가 발표된 지 15년 만인 지난해 ‘소환’됐다. 그러나 정부가 의지를 가지고 추진했던 1·2기와는 다소 결이 다르다.

사실 문재인 정부는 ‘주택 공급은 충분하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출범 직후 집값이 치솟자 다주택자를 겨냥한 수요억제책을 펼쳤던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집값이 좀처럼 잡히지 않자 떠밀리듯 내놓은 고육지책이 지난해 9월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 방안’이었다. 그러다보니 석달 후 남양주 왕숙, 하남 교산, 과천, 인천 계양 등 4곳을 개발한다고 했을 때도 ‘신도시’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다. ‘3기 신도시 아니냐’는 질문에 국토부 고위 관계자는 “우리가 규정짓기 적절치 않다”고도 했다. 그러다 이달 초 고양 창릉과 부천 대장을 ‘3기 신도시’로 추가 지정하면서 비로소 명문화됐다.

후폭풍은 거세다. 일산·파주·검단 등 1·2기 신도시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3기 신도시 때문에 1·2기 신도시의 집값 하락은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아직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수도권 광역교통망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위례신도시 트램사업은 10년간 표류하다 최근 재추진되고 있으며, 파주와 동탄을 잇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A노선은 첫 삽도 뜨지 않았다.

분위기가 심상찮자 정부는 여론 무마용 카드를 내놨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지난 23일 기자간담회에서 인천지하철 2호선과 대곡소사 복선전철의 일산 연장, GTX A노선 2023년 개통 완료, 자유로 등 수도권 간선도로의 지하화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반응은 싸늘하다. ‘서울 접근성을 높여달랐더니 베드타운끼리 이어주는 당근책’이라며 실효성이 없다는 평가부터 ‘이미 과거에 내놨던 말뿐인 사골공약’이라는 식의 비아냥도 넘쳐난다.

이태경 토지정의연대 대표는 “정부가 다주택자 물량이 시장에 나오도록 해 서울에서 수급을 맞추는 정공법은 쓰지않고 가장 쉬운 방법을 택한 것”이라며 “그러다보니 서울과 수도권은 계속 비대해지고 모든 자원을 빨아들이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두성규 선임연구위원은 “신도시는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물을 내놓을 수 없는 정책인데 정부가 상당히 다급해 보인다”며 “향후 3~4년간 주택 공급에 문제가 없다고 해왔던 만큼 차라리 시장 상황을 면밀히 살피면서 단계적으로 수행하겠다고 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인구 감소 및 고령화, 경기침체 심화 등 이전과 다른 변수가 많은 만큼 신도시가 정말 필요한지를 따져보고 주택공급 계획을 단기, 중기, 장기로 나눠 체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성희 기자 mong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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