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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구조 때 '순직 영웅' 나오는 한국, '영웅' 안 만드는 헝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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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정서상 시신수습 포기할 수 없어, 위험 무릅쓰고 선체 진입

"물살 세도, 선내엔 물 멈춰있어 작업 가능… 인양은 최후의 방법"

"선내로 들어가 실종자를 꺼내오겠다."(한국 정부)

"'영웅'을 만들어내고 싶지 않다."(헝가리 정부)

한국·헝가리 양국(兩國) 정부가 다뉴브강에서 침몰한 유람선 '허블레아니'호에 대한 수중 수색을 중단하기로 사고 7일째인 4일(현지 시각) 합의했지만, 합의 직전까지도 양국은 이처럼 상반된 주장을 펴며 팽팽히 맞섰다.

한국 정부는 그간 국내 주요 선박 침몰 사고 때마다 희생자 시신을 건져 올리기 위해 악조건에서도 잠수요원을 투입해왔다.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당시 수중 수색은 10일간 진행됐다. 수색 작업이 끝난 것은 고(故) 한주호 해군 준위가 수색 도중 잠수병으로 순직한 것이 계기였다. 2014년 세월호 사고 당시 수색은 200여일간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민간 잠수사 2명이 각각 잠수병과 작업 중 폭발 사고로 숨졌다. 이런 순직자를, 이번에 헝가리 정부는 '만들어내고 싶지 않은 영웅'으로 표현한 것이다.

조선일보

지난 4일(현지 시각)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유람선 침몰 사고 현장에서 잠수요원이 수중 수색을 위해 사다리를 타고 강으로 내려가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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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는 선체 인양에 합의한 이후에도 희생자 시신 수습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7일 슬로바키아에서 열리는 회의에서 헝가리 외교장관을 만나 실종자 수색과 선체 인양 등에 대한 협조를 거듭 요청할 예정이다. 헬기나 선박으로 수색을 계속하면 실종자를 추가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정부 입장의 배경에 '국민 정서'가 있다. 김은정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별이 어려운 건 세계 공통이겠지만, 한국의 경우 '얼굴 보고 보내야 진짜 보내줄 수 있다'는 특유의 정서가 있는 것 같다"며 "이런 과정을 거쳐 가족을 애도하고 가슴에 묻는 것"이라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문가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가 전 정권과의 차별성을 보여주려는 의도에서 더욱 시신 수습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사고 이후 다뉴브강은 수중 수색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유속(流速)이 사고 당시 최대 시속 11~15㎞ 수준이었고, 이후 조금씩 느려지고 있지만 6일까지도 여전히 시속 4~5㎞ 수준이었다. 국제적으로 쓰이는 미(美) 해군 다이빙 매뉴얼은 유속이 시속 1.85㎞를 넘으면 잠수사들의 수중 수색을 금지하고 있다. 유낙균 전 해군 해난구조대장은 "이 규정은 '위험성이 있다'는 의미가 아닌 '투입하지 마라'는 의미"라고 했다. 다뉴브강에 들어갔던 잠수사들은 "수십㎏ 납덩이를 차고 입수했는데도 몸이 물살에 밀리더라"며 "시야는 진한 블랙커피 속에 빠진 것 같았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서도 양국 잠수사들은 수중 수색을 통해 지금까지 선체 인근에서 시신 3구를 건져 올렸다.

한국 정부 입장을 지지하는 전문가도 있다. 이번 인양 결정이 이른 감이 있다는 것이다. 장창두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명예교수는 "물살이 세도 일단 선내에 들어가면 물이 멈춰 있어 작업이 가능하다"며 "인양 시 선체가 부서지면서 시신이 떠내려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인양은 최후의 방법이어야 한다"고 했다. 함혜현 부경대 교수는 "그간 수색 작업으로 선내·외 상황을 파악했다면 추가로 실종자를 찾을 가능성은 더 높아진 상태였다고 본다"고 했다.

다른 쪽에선 '헝가리 정부 판단이 당연하다'는 평가가 있다. 정영석 한국해양대 교수는 "장시간 작업을 위해 호스를 잠수복에 연결하고 진입할 경우 호스가 꼬이거나 끊겨 2차 사고가 날 수 있다"고 했다. 유낙균 전 해군 해난구조대장은 "우리도 악조건 속 잠수사 투입을 '영웅적 행위'로 드높이는 것을 그만해야 한다"며 "유가족 심정과 국민 정서를 고려하되 또 다른 비극을 막기 위해 잠수사 투입 기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했다.





[이동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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