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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수요일엔 미술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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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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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수요일에 뭐하시나요? 매달 마지막 수요일은 문화가 있는 수요일이랍니다. 문화야 일상이고 삶 속에 스며야 하는 것이데 이런 날을 만들어 문화 장려 운동을 한다는 건 아직까지 우리 삶이 팍팍하다는 얘기지요. 문화 예술 향유가 폭넓지 않다는 반증이고요. 물론 한류의 전성기라는 건 두말할 나위 없지만, 문화 필드 전체가 BTS나 봉준호 감독에 묻어갈 순 없죠. 문화 생활이라고 일컫는 일상의 이벤트는 거의 영화나 스포츠에 집중되어 있구요. 예술은 아직까지 현실과 동떨어진 무엇으로 여겨지곤 합니다. 아름답고 커다란 미술관들이 텅 비어 있는 걸 보면 맘 한구석이 안타깝고 애잔해지죠. 넓고 근사한 공간에서 텀블링이라도 하고 싶어집니다. 속속들이 누리고 싶고 즐기고 싶어서요.

문화가 있는 마지막 수요일마다 갤러리 탐방을 다닙니다. 서초구에서 동네분들과 문화 예술 모임을 하고 있거든요. 벌써 5년째네요. 처음엔 모여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걱정과 의문을 가졌답니다. 그런데 해마다 문화 예술 교육을 주관하며 우리는 성장했습니다. 도서관 축제도 직접 기획해보며 너무 즐거웠지요. 그러다가 좀 더 의미있는 일을 해보자 하여 보육원에 그림을 기증, 설치해주는 문화 사랑 갤러리 봉사 활동을 시작 했답니다. 지난 2년간 전국 20여군데 보육원에 그림을 걸어주었으니, 정말 대단하지요. 자화자찬 같긴 하지만 그림을 기증하려면 보통 일이 아니거든요. 먼저 보육원에 답사를 다녀오고, 어울리는 그림들을 모으고, 30여점 싣고 다시 가서, 미리 정해둔 위치에 그림들을 하나씩 걸어 나가죠. 서울, 부산, 상주, 화천,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갔답니다.

이유는 딱하나, 내 맘이 기뻐하기 때문이죠. 봉사도, 예술도 궁극적으로는 오직 나를 기쁘게 하는 일들입니다. 우리는 너무 타인을 의식하며 사는 나머지 내 마음의 상태보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더욱 집중합니다. 아름다운 미술관의 유명한 전시회를 가서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줄까지 서가며 전부 다 보느라 (보는 척 하느라) 몹시 피곤해지죠. 가뜩이나 뭐가 뭔지 모르겠는 현대 미술 작품들 앞에선 자못 심각해지다가 샛눈으로 얼른 제목을 보니 아뿔싸! <무제>입니다. 그래서 제가 늘 이야기합니다. 쫄지 말자고요. 주눅들지 말자고요. 예술에 굳이 거창하게 의미 부여할 필요도 없고, 걸려있는 그림 욕심내고 다 볼 필요도 없으며, 모든 건 내 마음이고 내 자유라고요.

오늘은 서초구 방배동에 위치한 유중아트센터에 다녀왔어요. 일본작가들의 4인 4색전이 열리고 있었죠. 아직까지 예술계에서 일본 문화 예술은 낯설고 때론 이단적이죠. 가장 가까이 있어도 역시 우리는 달라 수긍이 되기도 하고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야요이 쿠사마의 호박들부터 무라카미 다카시, 나라 요시토모, 미스터에 이르기까지 일러스트와 예술을 넘나드는 전방위적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일본 전시를 접하며 드는 확실한 생각은, 일본은 우리들보다 훨씬 자유분방하고 예술에의 진입 장벽도 아주 낮다는 것입니다. 특히 거침없는 표현과 그림의 도발에 우리는 일종의 통쾌한 재미를 느낍니다. "이것도 예술입니까?"에 "당연히 예술입니다."로 넓은 아량을 훈련시키며 범주를 넓혀갑니다. 2층에 위치한 유중 아트홀은 클래식 공연장을 갖춘 근사한 공간입니다. 그랜드 피아노가 객석과 거의 평행으로 배치되어 위압적이지 않고 다정한 기분이에요. 아마 예술이 일상속으로 스며들길 바라는 게 아닐까 미루어 짐작해봅니다.

함께 간 우리 선생님들은 소녀들처럼 그림에 닥지닥지 붙어서 호호깔깔 난리가 났습니다. 자주 보지 못하던 일본의 그림들이 웃기고 재밌다고요. 저는 소녀들같은 그 모습에 또 배시시 웃음이 그치질 않습니다. 처음에 "나는 그림을 볼 줄 몰라서" "나는 예술에 문외한이라" 하셨던 분들이거든요. 이제는 예술 앞에 주눅들거나 어려워하지 않습니다. 말그대로 쫄지 않고 자유롭게 느낌을 나누며 한껏 즐깁니다. 제가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가장 원했던 것이죠. 아름다운 공간을 누리는 것. 그 안에서 편하게 예술과 만나는 것. 그리고 그 마음을 누군가와 나누는 것.

날이 빠르게 더워지고 있습니다. 넓고 시원하고 아름다운 공간이 도처에 있습니다. 미술관 피서. 강추합니다.

[임지영 나라갤러리 대표/ <봄말고 그림>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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