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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매경춘추] '라면가게'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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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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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은 늘 아쉽고 아름다웠다. 사소한 것일수록 그랬다. 별다른 사연도 없는 사람 하나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나는 라면을 좋아한다. 간혹, 아침을 거르고 출근하는 날이면 회사 근처에서 라면을 먹곤 한다. 회의가 끝나고 8시 40분쯤이면 좋은데, 내가 아는 분식집은 9시가 넘어서야 문을 연다. 일을 하다가 나갈 수도 없고 하면 아쉽게도 아침 라면을 포기할 때가 있다. 한 후배가 일본대사관 앞에 가보라고 했다.

그 집 이름이 '라면가게'였다. 아주 조그마했다. 처녀 같은 안경 쓴 여자가 혼자서 무표정한 얼굴로 열심히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그리고 몇 번…. '라면가게'를 가면서 나는 그 아가씨의 근접하기 어려운 무표정이 결코 건방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몇 시에 문을 여세요?" "7시 30분 전에요. 내려오실 때 전화주시면 미리 해놓을 게요." "몇 평이에요?" "4평이요."

조그마한 가게지만 깔끔한 분위기, 칠그릇의 라면 공기와 찬그릇, 그리고 오만이 아닌 자신의 일에 대한 당당함과 라면 한 그릇에도 정성을 쏟고 손님에게 주인의 본분을 잃지 않는 모습이 아름답고 존경스러웠다.'

이 글은 내가 다니던 신문에 썼던 칼럼의 한 부분이다. 그의 아름다운 장인정신이 지금까지도 그를 기억하게 하고 있다.

아무리 각박하고 살벌한 뉴스 속에서 산다지만, 나는 요즘도 또 다른 '라면가게' 주인들을 주변에서 흔히 본다. 멋지고 존경스러운 사람들이 뉴스의 바깥세상에서 아름답게 살고 있는 모습을….

12일 새벽 U-20 월드컵 준결승전에서 에콰도르를 1대0으로 꺾고, 아시아 최초의 월드컵 결승전 진출로 한국 축구의 새 역사를 쓴 20세 이하 축구대표팀 선수들과 정정용 감독, 스태프들의 모습도 감격이고 존경이었다. 요즘의 연예, 스포츠 스타들도 놀라운 프로정신으로 연일 감동을 주고 있다. 메이저리그 5월의 투수로 다승(9승), 평균자책점(1.36) 1위의 기록을 던지고 있는 류현진, 아시아 선수 최초의 메이저리그 200홈런을 날린 추신수, 토트넘을 유럽챔피언스리그 준우승으로 견인한 손흥민, US여자오픈 우승의 이정은,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의 봉준호 감독, 21세기 비틀스로 세계 팝의 전설을 새로 쓰고 있는 방탄소년단(BTS) 등이 말하자면, 장인정신의 본분을 잃지 않고 세계에 한국의 팬서비스를 하고 있다.

아침 7시에 훈련이 시작인데, 5시에 나오는 추신수에게 감독이 7시에 나오라고 했다. 추신수는 말했다. "저는 실력이 부족해서 2시간 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뉴스에 비치는 우리 사회도 덜 사납고 더 존경스럽고 손님을 위한 따뜻한 소식을 제공하는, '라면가게' 아가씨 같은 장인정신을 보여줄 수는 없는 것인지. 아쉬운 대목이다.

[신대남 큐브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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