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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세상읽기] 호흡에 대한 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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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영화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에서 노교습가 세이모어 번스타인은 제자들의 명치에 차례로 손가락 끝을 대고 호흡을 체크한다. 그는 사람들 호흡이 엉망이고 살아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라고 말한다. 숨 쉬기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태어나면서부터 그냥 숨 쉬고 살았다. 나이가 들면서 이것이 좀 부자연스러울 때가 있다. 가슴이 답답할 때도 있고 사레가 드는 일도 잦다.

필자는 비타민제를 섭취하기 위해 물을 마실 때 생수병을 사용해왔다. 컵에 따르는 단계를 생략해도 되니 습관이 됐다. 약이 부드럽게 넘어가지 않고 목구멍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 자주 든다. 사레가 들기도 한다. 물만 마실 때도 그렇다. 지난봄 어느 아침에도 사레가 들었다. 한참을 콜록거리다 규명해보기로 했다. 우선 허파의 구조를 파악한 다음 몸의 근육 움직임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스무 번쯤 물을 마셔보았다.

기본적인 사실. 지금까지 필자는 호흡이 스스로 수축·팽창하는 큰 주머니 몇 개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틀렸다. 숨주머니인 폐포는 기관지 끝부분에 포도송이처럼 잔뜩 붙어 있는데 3억~5억개나 된다. 폐포는 근육이 없어 스스로 수축·팽창을 할 수 없다. 갈비뼈 아래쪽의 횡경막과 갈비뼈 사이를 메우는 늑간근이 폐포더미를 누르거나 놓으면 폐포에 있는 섬유질의 탄력에 의해 수축하거나 팽창한다.

관찰 결과. 생수병으로 입에 물을 부을 때 목이 뒤로 젖혀진다. 앞쪽 목 근육이 당겨지면서 연결된 늑간근을 당겨 흉곽이 바깥 위쪽으로 움직인다. 폐포가 커진다. 공기가 폐로 들어간다. 이후 물을 삼킬 때는 목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배에 힘이 들어간다. 횡경막이 위로 올라가고 당겨졌던 늑간근도 제자리로 돌아오면서 폐포를 수축시킨다. 공기가 나가면서 안쪽으로 들어가던 물과 목에서 부딪혀 와류를 일으킨다. 약이 목구멍 벽에도 부딪히고 사레를 일으키기도 한다. 컵으로 물을 마시면 적어도 목이 젖혀지지는 않는다. 여기에 더해 약간 목을 숙인 자세로 물을 마시면 늑간근이 수축돼 공기가 밖으로 나온다. 약과 물을 삼킬 때 공기가 움직이는 방향과 같아 자연스럽게 죽 빨려 들어간다. 결론은 날숨 상태에서 물을 삼켜야 한다는 것이다. 부득이하게 생수병을 사용해야 한다면 방법이 있다. 물을 입에 부은 후 삼키기 전에 뱃가죽을 당기면 횡경막이 위로 올라가 코로 공기가 빠져나오면서 날숨 상태가 된다. 그런 후에 삼키면 된다.

침대에서의 관찰.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바로 누우면 숨이 답답할 때가 있다. 베개로 인해 대부분 목이 약간 앞으로 꺾인 자세가 되어 흉곽이 좁아진다. 담을 수 있는 공기량이 줄어든다. 낮은 베개에 목을 걸치면 목이 뒤로 젖혀져 흉곽이 넓어지고 공기를 많이 넣을 수 있다. 몸을 뒤집어도 목이 조금 젖혀진 상태가 돼 흉곽이 커진다. 그래서 뒤집어 누우면 숨이 깊게 쉬어진다. 비슷한 효과를 내는 다른 방법도 있다. 보통 팔을 아래쪽으로 해서 자지만 머리 쪽으로 놓고 만세 자세로 자면 흉곽이 넓어져 호흡이 더 깊어진다. 이 자세는 몸부림치다 아내의 코를 때릴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아내가 미울 때 사용할 수도 있다.

연관된 관찰. 골프 스윙을 할 때 들숨 상태이면 몸이 부풀어 있어 회전을 방해한다. 날숨 상태에서는 몸이 훨씬 더 유연하게 회전한다. 골프 스윙은 날숨 상태에서 하라고 하는 이유를 알았다. 수영이나 분만 때 호흡을 배운다. 숨을 들이쉬는 동작에 초점을 맞추려 하면 어깨가 들썩이면서 용이하지 않다. 오히려 내뱉기에만 신경을 쓰면 그 반작용으로 저절로 들이쉬기가 된다. 중립 상태에서 한 번에 들이쉴 수 있는 공기량보다 한 번에 내뱉을 수 있는 공기량이 훨씬 더 많다. 내쉬기가 들이쉬기보다 쉬울 수밖에 없다.

이상 필자가 기본적인 사실 공부와 관찰을 통해 알게 된 것이다. 일상에서 호흡으로 인해 불편하던 몇 가지는 해소됐다. 호흡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다.

[문병로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주)옵투스자산운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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