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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리뷰]비극? 셰익스피어도 웃고 갈 ‘언어유희와 패러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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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썸씽로튼’

경향신문

뮤지컬 <썸씽로튼>은 셰익스피어가 ‘록스타’로 추앙받는 르네상스 시대, 망해가는 극단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형제의 이야기를 담은 코미디 뮤지컬이다. 언어유희와 패러디가 가득해 감상 포인트가 많다. 엠트리뮤직·에스앤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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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햄릿>이 주요하게 등장하는 작품이다. 그렇다고 인간의 실존적 고민, 자기파멸의 비극 같은 것을 생각하면 곤란하다. 비극적인 구석은 눈을 아무리 씻어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여러 장면에서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소네트(14행시)가 노래가 돼 불린다. 그렇다고 서정적이고 로맨틱한 선율 같은 것을 떠올리면 곤란하다. 극중 소네트의 장르는 ‘록’이니까. 뮤지컬 <썸씽로튼(Something Rotten!)>은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대책 없이 웃기는 ‘코미디 뮤지컬’이다.

발상부터 기발하다. 셰익스피어가 ‘국민작가’이자 ‘록스타’로 팬을 몰고 다니는 르네상스 시대, 무명 극단을 이끄는 바텀 형제는 그의 그늘에 가려 올리는 연극마다 망한다. 형제 중 형인 닉은 급기야 예언가를 찾아가는데, 예언가가 어딘지 어리숙하다. 미래를 보긴 하는데, 나사 하나가 빠졌다.

미래의 극장에서 인기 있는 공연을 물으면? 당시에 없던 ‘뮤지컬’을 알려주지만, 작품명이 어째 조금씩 다르다. 셰익스피어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 될 작품을 물으면? ‘햄릿(Hamlet)’과 묘하게 비슷한 ‘오믈릿(오믈렛·Omelet)’을 알려준다. 주인공이 덴마크 왕자(Danish prince)라는 것도 보긴 하는데, 앞 단어만 읽고 말았다. 데니시(Danish), 덴마크식 페이스트리 빵이다. 결국 바텀 형제는 <햄릿>처럼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삼촌과 그와 재혼한 어머니가 등장하는 왕가의 식탁에 달걀 오믈렛이 올라가는 뮤지컬을 선보인다.

스토리보다 시종일관 쏟아지는 언어유희와 패러디 그 자체가 작품의 핵심이다. 제목인 <썸씽로튼>부터 그렇다. <햄릿>에서 궁을 지키는 경비병이 “이 나라 덴마크에 뭔가 썩었다”고 한 유명한 대사에서 따왔다. 극중 후원이 끊겨 고민하는 닉에게 다가오는 건 셰익스피어의 또 다른 희곡 <베니스의 상인> 속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다. 셰익스피어를 누르고 ‘정상(Top)’에 서고 싶어 하는 닉의 성이 ‘바텀(Bottom·바닥)’인 데다, “바텀이 올라설 거야!”라고 ‘원샷’(바텀스 업·Bottom’s Up)을 외쳐대니 객석에선 웃음을 참을 도리가 없다.

그저 웃기기 위한 패러디라고 하기엔 뮤지컬 장르에 바치는 헌사의 성격이 짙다. 예언가의 입을 빌려 “뮤지컬처럼 멋진 것은 없어”라고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대표 넘버(뮤지컬에 삽입된 노래)인 ‘어 뮤지컬’과 극중 뮤지컬 ‘오믈렛’에는 그간 관객들과 함께 호흡한 뮤지컬 캐릭터와 명장면이 숨어 있다. <라이온킹> <레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 <애비뉴Q> 등 수십편의 뮤지컬을 구석구석 녹였다. 재기발랄한 대사와 귀에 꽂히는 멜로디, 배우들의 열정적인 공연을 보다보면 ‘뮤지컬의 세계는 멋져’라고 화답하게 된다. 언어유희와 패러디가 가득하다보니, 셰익스피어 원작을 알수록, 뮤지컬을 많이 알수록, 영어에 익숙할수록 더 잘 즐길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한국 관객을 위해 대사를 바꾼 부분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하나만 예로 들자면 이렇다. 예언가가 미래의 뮤지컬을 읽어내는 장면에서 <리틀샵 오브 호러스>를 <지킬 앤 하이드>로 바꿨는데, 물론 잘못 읽었다. “지킬 박사와 하이트.” “진짜요? 뭔가 술 이름 같은데….”

2015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작품을 현지 프로덕션이 처음으로 내한해 공연한다.

월트 디즈니에서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한 캐리 커크패트릭과 그의 형제이자 그래미상 수상자인 작곡가 웨인 커크패트릭, 토니상 3회 수상자인 연출가 케이시 니콜로 등 창작진도 화려하다. 충무아트센터에서 오는 30일까지.

유정인 기자 jeong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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