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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공감세상] 최저임금을 위한 뒷북 변론 / 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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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로 밥을 먹고 산 지도 상당한 시간이 지났지만, 재판을 앞두고는 팔다리가 떨리고 끝나면 힘이 빠진다. 준비해 간 변론은 입속 옹알이로 바뀌고 재판장 질문에는 엉뚱한 답을 하며, 마음속 하고 싶은 말은 물론 해야 할 말의 절반도 못 하고 오기 일쑤다. 지난주 목요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최저임금 공개변론에서도 그랬다. 정부 정책을 대변하는 것이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는 핑계로는 변명이 안 되는 갈팡질팡 변론을, 그나마 참고인으로 나선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의 훌륭한 진술 덕에 겨우 마쳤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잠꼬대인지 미련 남은 넋두리인지, 내 멋대로 뒷북 변론을 중얼거려 본다.

저는 저기 겁에 질린 표정으로 피고인석에 앉아 있는 최저임금의 변호인입니다. 왜 겁에 질려 있느냐고요? 피고인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주목이나 뜨거운 관심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1987년부터 헌법에 자리를 잡아 이듬해인 1988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신기한 일이지요. 처음엔 피고인도 그런 관심이 싫지 않았답니다. 그동안 다들 무심하게 지나치던 자신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었으니, 내심 반가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경제적 어려움이 모두 피고인의 잘못이니 피고인만 없으면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거나, 이념편향성의 징표라는 비난까지 받게 되자, 이제 목소리조차 내기 어려워졌습니다.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그렇지 않아도 살기 어려운 사람들을 나락으로 내몬다고, 피고인 때문에 오히려 어려운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는다고 할 때였습니다.

검사는 피고인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짓을 하였는지 보라며 ‘영향률’이라는 수치를 이야기합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영향을 받는 근로자들이 전체 근로자 중 얼마나 되는지를 보여주는 수치인데, 지난 2년간 인상이 너무 급격하여 그 영향을 받는 근로자가 18%까지 올랐으니, 그만큼 많은 사용자들이 고통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어떻습니까? 왜 우리나라는 이 수치가 다른 나라보다 훨씬 높은가요? 2017~2018년만 그런 게 아닙니다. 이전에도 그만큼은 아니지만 다른 나라보다 높은 수준입니다. 유난히 저임금 노동자가 많기 때문은 아닐까요? 최저임금이 인상되어야 임금이 올라가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는 아닌지요?

이 법정에 서야 할 것은 피고인이 아닙니다. 왜 피해자들이 최저임금을 주기도 힘들 정도로 어려운지, 그 진짜 원인을 법정에 세워주십시오. 그리고 다시 한번 살펴주십시오. 이렇게 저임금 노동자도 많고 영세한 자영업자도 많은 우리 경제 구조가 맞는 것인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제대로 해왔는지.(대한민국 헌법 119조 2항) 그리고 난 연후에야, 피고인은 다른 법정에 설 것입니다. 과연 헌법이 피고인에게 부여한 본연의 소명, 즉 저임금 노동자에게 적정임금을 보장하여 인간다운 생활을 하게 하였는지(32조·34조)를 묻는 법정 말입니다.

지금에서 하는 말이지만, 처음에 본 변호인은 이 사건 변론이 그다지 내키지 않았습니다. 몰매를 맞고 있는 피고인을 변호하는 것이 내키지 않기도 하고, 경제는 쥐뿔도 모르면서 무조건 편을 들려고 속없는 이야기나 하느냐는 손가락질도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누구 편을 들어야 한다면, 그래요, 저는 감히 피고인의 편을 들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렇게 한쪽 편에 서는 것이 정치적이라고 한다면, 조금 전 참고인이 했던 말을 돌려드리겠습니다.

“각 나라의 최저임금 수준을 비교해 보면 소득수준이나 경제규모와는 관계가 거의 없다. 오히려 그 사회가 연대와 약자에 대한 배려라는 가치를 얼마나 무겁게 여기는지에 따라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의 정치라면, 최저임금이 그것과 무관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한겨레

김진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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