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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SKT·KT도 화웨이 장비 3500억 규모 구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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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유플러스뿐 아니라 SK텔레콤·SK브로드밴드·KT 등 국내 통신업체 모두가 지난 4~5년간 화웨이의 통신 장비를 대량 구매한 것으로 확인됐다. 구매한 장비는 주로 유선 백본망(대규모 전송 회선)용이다. 휴대폰 통화는 무선으로만 연결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기지국과 기지국 간 장거리 구간은 유선으로 이어진다. 백본망은 통신 보안의 핵심인 셈이다.

이는 한국만의 상황은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국 대부분이 화웨이의 이동통신 장비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이 통신 보안을 이유로 한국 등 여러 나라에 화웨이의 5G(5세대 이동통신) 장비를 사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화웨이는 이미 세계 통신망을 좌우할 단계에 와 있는 것이다.

19일 본지가 미국 시장조사기관 오범(ovum)의 '세계 통신업체의 장비 계약 현황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한 결과, 화웨이는 현재 세계 530여 통신 업체에 장비를 공급·구축해 놨다. OECD 국가 중에는 이스라엘과 에스토니아·슬로베니아를 제외한 33국이 화웨이 이동통신 장비를 쓰고 있다. 그동안 국내에서 SK텔레콤과 SK브로드밴드가 화웨이 장비를 구매한 규모는 1500억원, KT는 2000억원 안팎인 것으로 추정된다. 화웨이는 5년 전 한국 통신장비 시장 공략에 본격 나서 현재는 미국 시스코와 백본망 2강(强) 구도를 꿰찼다. 국내 통신업계에서 화웨이 백본망 장비가 차지하는 점유율은 20~25%로 알려져 있다. 한 통신장비업체 대표는 "통신 네트워크는 거미줄처럼 얽혀 있기 때문에 점유율이 이 정도라는 것은 국내 대부분 통화와 인터넷 접속이 한 번은 화웨이 장비를 거친다는 뜻"이라고 했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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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미국 하원의 정보위원회는 "화웨이의 통신 장비가 중국 정부의 백도어(Back door·인위적으로 만든 정보 유출 통로)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는 보고서를 채택했다. 이 보고서는 "중국 정부가 화웨이 통신 장비를 통해 전달되는 이메일을 추적하고 미국 통신 시스템을 교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미 하원이 나선 계기는 미국 행정부와 군대 전산 시스템에서 화웨이의 유선(有線) 장비가 다수 발견된 것이다. 당시만 해도 유선 통신 장비의 최강자는 미국 시스코였다. 경쟁자도 에릭슨·노키아와 같은 유럽 업체였는데 갑자기 '중국 업체'가 급부상한 것이다. 미국 정부의 반(反)화웨이 캠페인은 이때 시작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트럼프 정부가 갑자기 꺼내 든 카드가 아니란 것이다.

하지만 미국과 화웨이 간 7년 통신 안보 전쟁은 거의 완벽한 화웨이의 승리였다는 것을 이번 '세계 통신업체의 장비 계약 현황 데이터베이스' 분석 결과가 보여준다. 현재 유럽·남미·아시아·중동·아프리카 할 것 없이 170여국의 530개 통신업체가 화웨이 장비를 구매해 쓰고 있다. 코너에 몰린 미국 정부가 반전 카드로 꺼내 든 게 '화웨이 거래 제한'인 셈이다.

미 정부는 2012년부터 자국 통신업체에 '화웨이 장비 사용 자제'를 요청했다. 실제로 장비 계약 현황 자료에 따르면 미국 통신업체와 화웨이 간 대량 계약은 2011년 4분기 지역 통신업체 크리켓 커뮤니케이션(cricket communication)이 마지막이다.

미국은 7년간 우리나라를 포함한 영국·일본·호주·캐나다 등 동맹국과 주변국에도 같은 요구를 집요하게 해왔다. 2013년 LG유플러스가 화웨이와 계약할 때 미국 대사관 측이 우리 정부에 "우려 표명"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12월 SK텔레콤이 제주도에 LTE 통신망을 화웨이 제품으로 구축하려다가 포기한 배경에 미국의 요구가 컸다는 게 정설이다. 당시 미국 하원 의원 3명이 자국 국방부로 '막아야 한다'는 연락을 보냈고, 이는 우리 정부로 전달됐다. 하지만 화웨이의 기세가 더 셌다. 이 기간에 경쟁사보다 30~40% 싼 가격을 무기로, 시스코·에릭슨·노키아를 모두 꺾고 세계 통신 장비 1위에 등극했다.

미 정부가 지난 5월 꺼내든 '거래 제한 조치'는 강력했다. 당장 화웨이의 연간 스마트폰 판매량은 4000만~6000만대 급감하고 통신 장비 매출도 창업 30여 년 만에 처음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은 17일 본사에서 니컬러스 네그로폰테 MIT 미디어랩 창립자와 간담회를 갖고 "(우리는) 심하게 파손된 비행기와 같다"면서도 "미국이 화웨이를 멈추게 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했다. 화웨이의 반격 중 하나는 지난 2월 미국 최대 이동통신사 버라이즌에 230건 이상의 자사 특허에 대한 사용료 10억달러(약 1조1870억원)를 내라고 요구한 것이다. 미국 사업 파트너의 뒤에 숨어 미 정부를 압박한다는 말도 나온다. 화웨이는 작년 퀄컴·인텔·마이크론 등 미국 반도체 기업에서 110억달러(약 13조원)어치를 구매한 큰손이다. 로이터는 17일 인텔과 자일링스 경영진이 지난 5월 말 미 상무부와 만나 "국가 안보와 관련 없는 부분은 제재 범위에서 빼달라"고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성호철 기자(sunghochul@chosun.com);김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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