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진적 변화 보다 점진적 변화 중시
檢 개혁 취지엔 공감…수사지휘권 유지 바람직
국정철학 이행·조직 안정 '두 마리 토끼' 과제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가 8일 오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노진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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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성기 이승현 기자] 법과 원칙주의자에 뼛속까지 검사….
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장에 선 윤석열(59··사법연수원 23기) 차기 검찰총장 후보자를 설명하는 말들이다. 동기들보다 한참 늦은 9수 끝에 검찰에 입문한 데다, 52세이던 2012년 3월 늦장가를 간 탓에 ‘검찰총장’(검사 총각 중에 대장)으로도 통했다. 연수원 기수가 높은 선배들조차 그를 ‘석열이형’으로 불렀다. 통이 큰 데다 ‘보스 기질’도 강해 따르는 후배들이 많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문재인 정부 2기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되기까지 그의 검사 인생은 ‘롤러코스터’에 비유된다. 특수통으로 잘 나가던 그는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 수사를 계기로 급전직하 했다.
지난 2013년 국정감사장. 사건 수사팀장이던 그는 당시 수뇌부의 외압을 폭로하면서 지금도 회자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다. 직속 상관 면전에서 외압 의혹을 거리낌없이 폭로한 그의 모습은 ‘원칙주의자’ 또는 ‘강골검사’ 이미지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대중적 인지도는 수직 상승했지만 치러야 할 대가는 가혹했다. 수사팀에서 배제된 그는 정직 1개월 처분을 받은 뒤 박근혜 정부 내내 한직을 돌았다. 조직에 대한 배신감에 때려치울 법도 했지만 그는 때가 오길 기다렸다.
◇와신상담 끝에 화려한 부활…성향은 보수·자유주의자
와신상담·절치부심했던 그는 국정농단 특별검사팀 수사팀장을 맡으면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린다. 현 정부 출범과 함께 서울중앙지검장 자리를 꿰차면서 화려한 복귀를 알렸다. 지난 2년간 전직 대통령, 전직 사법부 수장 구속 등 적폐 수사에 거침이 없었다.
이같은 그의 행보는 차기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되는 밑거름이 됐다. 청와대는 지난달 윤 후보자 발탁 배경에 “각종 부정부패를 뿌리뽑을뿐만 아니라 검찰 개혁과 조직쇄신 과제도 훌륭히 완수할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권 일각에선 반대 기류도 있었다. 윤 후보자의 ‘성향’으로 볼 때 훗날 청와대와 집권 여당에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지난달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경우에 따라 윤 후보자가 지닌 칼날은 양면적”이라며 “정부 이야기도 듣지 않고 자신의 원칙대로 강직하게 행동할 수 있다는 점에 걱정이 있을 정도”라고 털어놓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도화선이 된 촛불집회에 대해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큰 획을 긋는 역사적 사건”이란 긍정적 평가를 내놓았지만, 주변에선 실제 성향은 보수주의자에 가깝다고 평가한다.
윤 후보자 자신도 국회에 보낸 서면 답변서에서 본인의 가치관에 대해 “검사로서 법을 집행하는 업무의 특성상 급진적 변화보다는 사회의 점진적 변화를 중시하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본인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으로는 밀턴 프리드먼의 대표작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를 꼽기도 했다. 미국의 대표적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프리드먼은 이 책에서 “자유보다 평등을 앞세우는 사회는 평등과 자유, 어느 쪽도 얻지 못한다”고 적었다.
◇현 정부 핵심 국정과제 검찰 개혁…‘검찰주의자’ 행보는
중앙지검장 시절 국내 10대 대기업 중 6곳을 직접 수사했을 정도로 재계 역시 칼날을 피해가지 못했지만, ‘반(反)시장주의자’라는 평가는 부적절해 보인다. 경제학자인 부친의 영향을 받은 윤 후보자는 시장경제체제는 각 주체간 신뢰를 바탕으로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판단한다. 인사청문회 모두 발언에서도 “사회적 약자를 힘들게 하는 반칙 행위와 횡포에 엄정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조직 수장으로서 검찰의 독립과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윤 후보자는 “정치적 사건과 선거 사건에서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고 법과 원칙에 충실한 자세로 엄정하게 처리하겠다”며 “국민의 눈높이와 동떨어진 정치 논리에 따르거나 타협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윗선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을 기반으로 좌고우면하지 않는 스타일에 비춰 검찰 개혁에 있어 현 정부와 궤를 같이 할지는 불투명하다는 말도 나온다.
“최종 결정은 국민과 국회의 권한”, “검찰은 제도의 설계자가 아니라 정해진 제도의 충실한 집행자”라는 원칙을 표명하긴 했지만, 각론에서는 미묘한 차이를 보였다. 검찰의 직접수사 기능을 축소 또는 폐지하되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은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밝힌 것. 윤 후보자 역시 문무일(59·18기) 현 총장처럼 현 수사권 조정안에 대한 검찰 내부의 반대 기류를 대변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현 정부의 국정철학을 이행하되, 조직 내부도 다독여야 하는 짐을 짊어진 윤 후보자의 과제는 지금부터 시작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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