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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작가 최인훈의 딸, 아버지를 회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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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씨, ‘회색인의 자장가’ 펴내 / “아버지는 나에게 영원한 신화”

“밖에서 말로 행동으로 사건으로 일어나는 일만 현실이 아니야. 요기 요 쪼그만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도 엄연한 현실인 거지. 요 안에 그걸 항상 기억해야 한다. 안과 밖이 어느 게 더 중요한 게 없어. 다 똑같이 중요한 거야.”

‘광장’의 작가 최인훈(1936~2018)의 1주기(23일)를 맞아 그의 딸 윤경씨가 ‘회색인의 자장가 - 내 아버지 최인훈과 함께했던 날들’(삼인)을 펴냈다. 딸은 ‘복잡한’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회고한다. “돌이켜보면 아버지는 가공의, 상상의 예술의 세계가 지니는 가치와 중요성을 내게 알려주고 싶어 하셨던 것” 같지만 “하늘의 별과 마음속 별이라는 아버지의 두 가지 현실이 내게는 ‘미친 여자 널뛰기’였다”는 것이다. 이처럼 과장하지 않고 솔직하고 객관적인 서술 태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이어지는 거장의 이면은 흥미롭고 애틋하다.

세계일보

손녀 이은규가 그린 할아버지 최인훈의 초상화.


평론가 김현은 일찍이 최인훈 집을 방문한 뒤 “전에도, 그렇기는 하였으나, 친척과 친구가 곁에 없다는 데서 생기는 고독함이 집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면서 “그로서는 독서로써 그것에서 피해갈 수 있겠지만, 그의 가족들은?”이라고 썼는데 집안에서 책만 보는 아버지는 딸에게도 답답했다. “나는 독서로 인해 고독해지고 그것을 또다시 독서로 피해 가는 굴레는 짊어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질려버렸다. …책 때문에 손발이 모두 묶여버린 것 같았다.”

아버지는 독서는 물론 말 한마디, TV 시청에도 깐깐하게 관여해 불만도 샀지만 부녀의 소통은 시간이 흐르면서 깊어진 듯하다. “나는 아버지 인생에서 큰 사건이 되지 못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희망을 놓지 않고 있었지만, 아버지의 정신적 유산을 나에게 물려주려고 애썼지만, 나는 나를 알았다. 내게는 아버지가 풀 수 없는 문제를 이어 풀 만한 역량이 없었다. 아버지는 너무 컸고 나는 너무 얕았다. 애초에 그러고 싶은 의지도 없었다. 다만 아버지에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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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 앞에서 벌을 서는 할아버지 최인훈에 이르면 “예스 걸이 되지 말고 야망을 가져라”며 딸을 키우면서 엄격했던 모습이 사라지고 깊은 사랑으로 가득한 인간적 면모도 보게 된다. 문학과 생을 대하는 엄격한 태도와 애정은 딸이 전해주는 다양한 이야기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다. 딸은 말한다.

“아버지가 깃들인 영원한 이야기를 허공에 묻어두고 힘들 때마다 별을 보듯 성스럽게, 아니 울면서 쳐다보겠다. 아버지는 내게 영원한 신화이다. 극복하고 싶으면서 간직하고 싶은 신화이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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