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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삼복 더위의 보양식, 장어 - 뱀장어, 갯장어, 붕장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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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윤의 미식탐구-18] 초복을 지나 완연한 여름으로 접어든 요즘. 너무 더워 사람이 개처럼 엎드려 지낸다는 의미로 '엎드릴 복' '굴복할 복'을 써 복(伏)날이라고 부르는 삼복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복날 음식을 이야기할 때 삼계탕과 더불어 장어가 손꼽히는데 장어는 칼슘, 인,철분, 비타민A 등이 풍부한 고단백 식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식당에 가면 민물장어와 바다장어 간 가격 차이가 크고 뱀장어, 갯장어, 붕장어 등 이름도 다양하다. 과연 각각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 쫄깃하고 단단한 식감, 민물장어

'비싼 장어'는 민물장어다. 뱀장어, 참장어 등 이름도 다양하다. 흔히 보양식으로 즐겨 먹는 장어구이에 민물장어가 쓰인다. 음식점 이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풍천장어의 풍천(風川)은 지명이 아니라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 즉 기수역을 뜻한다. 더불어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하구라는 뜻으로, 이곳을 통해 민물장어가 강으로 돌아온다. 전라도 고창과 경기도 임진강 등이 유명하다. 민물장어는 등이 회색이고, 배는 흰색이거나 노란색이 조금 섞여 있기도 하다. 비늘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피부 속에 비늘이 묻혀 있고 배지느러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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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족관에서 양식되는 민물장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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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물장어라고 불리지만 평생을 민물에서 사는 민물고기와는 다르다. 바다에서 태어나 강으로 거슬러 올라가 생활하는 회류성 어류다. 연어가 강에 산란을 하고 바다에서 자라는 것과는 정반대다. 민물장어는 바다에서 부화해 2~5월 사이, 즉 봄철에 이동을 시작하며 1년에 걸쳐 약 3000㎞를 헤엄쳐 강으로 올라온다. 여기서 짧게는 5년, 길게는 15년에 이르기까지 생활한다. 다시 8~10월께 가을 산란기가 되면 아무 먹이도 섭취하지 않고 6개월에 걸쳐 태평양 바다로 돌아가는데, 사이판·마리아나 해구 근처에서 알 1000만개가량을 낳고 최후를 맞는다.

우리가 보양식으로 먹는 장어는 대부분 양식한 것이다. 바다에서 부화해 강 어귀에 이르면 구이로 먹기에는 아직 작은 치어, 즉 '미성숙 실뱀장어'가 되어 있는데, 여기서 치어를 잡아 성체가 되기까지 7개월가량 양식한 뒤 식재료로 쓴다. 국내 실뱀장어 중 50% 이상은 고흥, 보성, 함평, 영광 등 전라남도에서 어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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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우면 완전히 껍질 쪽으로 말려드는 바다장어와는 달리 민물장어는 적당히 단단한 갈매기 모양이 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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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구이로 먹는 민물장어는 바다장어에 비해 육질이 탱글탱글하고 쫄깃하다. 소금이나 양념을 발라 구우면 갈매기 같은 모양이 잡히며 껍질이 쫄깃하고 단단한데, 살이 껍질 방향으로 완전히 말려 구부러지며 입에서 부드럽게 풀어지는 육질의 바다장어와 명백히 구분된다.

◆ 폭신하고 부드러운 식감, 바다의 붕장어

바다장어 중 민물장어와 비견되는 것은 붕장어로, 흔히 일본식 이름인 '아나고'로도 불린다. 붕장어는 등이 갈색이고 배는 백색이며 몸통 옆부분에 선명한 흰 점이 점선처럼 줄지어 있어 민물장어와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붕장어는 우리나라 전 연안에 서식하고, 양식을 하지 않아 대부분이 자연산이다. 붕장어는 성장하며 점점 더 깊은 바다로 내려가는데 2년생까지는 수심 10m 정도, 3년생은 30m까지 내려가고 4년생이 넘어가면 먼바다로 나간다.

민물장어를 회로 먹지 않는 것과 달리 붕장어는 잘게 썰어 회로도 먹는다. 아나고회가 바로 그것. 다만 장어 피에는 이크티오헤모톡신이라는 독성 물질이 있어 날로 먹으면 설사와 구역질, 심하게는 호흡 곤란 등을 일으킬 수 있어 전문 요리사의 손질을 거친 뒤 먹어야 한다.

◆ 여름철 최고의 보양식 갯장어, 갯벌의 하모

한편 경상남도 고성군은 갯장어로 유명하다. 갯장어는 전남에서 참장어·이장어·녹장어, 경남에서는 바닷장어나 뱀장어로 혼용돼 불린다. 일본어 이름 '하모'로 더 많이 알려졌는데, 아무것이나 잘 문다고 '물다'는 뜻의 일본어 '하무'에서 유래됐다고. 붕장어보다 더 날렵하게 생긴 입을 열어 보면 뾰족한 송곳니가 인상적이다.

갯장어는 5월 봄부터 연안으로 이동해 모래나 갯벌에서 서식하며, 전라도와 경상도 등 남해안에서 여름에 가장 잘 잡히고 11월이 넘으면 어획하기가 어렵다. 그중에서도 제철은 7~8월. 갯장어 역시 양식을 하지 않아 모두 자연산인데, 500m 길이의 긴 줄에 5m 간격으로 낚싯바늘을 100개씩 단 '주낙'을 30줄 정도씩 얕은 바다에 던져넣어 낚는 방식으로 어획한다. 갯장어는 야행성이라 주낙을 던져넣은 뒤 하루나 이틀 정도가 지나 걷어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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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수에 살짝 데치는 하모 샤브샤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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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장어와 마찬가지로 갯장어도 회로 즐겨 먹는다. 한편 잔가시가 많아 손질하기가 까다롭고 붕장어에 비해 살이 조금 더 단단하다. 이외에도 지느러미를 깔끔하게 손질한 뒤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가볍게 끓는 육수에 데쳐 샤브샤브로 먹는다.

◆ 소주 부르는 소탈하고 정겨운 맛, 곰장어

부산에 가면 '꼼장어'라고 불리는 곰장어, 즉 먹장어를 빼놓을 수 없다. 다른 장어와 달리 생선 대가리 부분을 보면 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입 부분은 정체를 알 수 없이 굉장히 퇴화한 생물체처럼 생겼다. 또 다른 장어와 달리 먹장어목에 속하는데, 척추가 없는 무척추 원구류로 분류된다. 몸에 정소와 난소가 모두 있어 성장하면서 암컷이나 수컷으로 변하며, 때로는 자웅동체가 되기도 한다. 바다 연안에 서식하는 곰장어는 야행성으로 주로 바닥 모래나 진흙에 몸을 파묻고 지낸다.

국내에 유통되는 곰장어는 90% 이상이 수입산이다. 미국, 뉴질랜드, 캐나다, 베트남, 멕시코 등지에서 연간 약 4500t이 수입되며 국내 어획량은 연간 약 80t에 불과하다. 부산이 곰장어 구이의 명소가 된 것도 사실은 이 곰장어 수입 때문으로, 1970년대는 곰장어가 놀랍게도 가죽을 위해 수입됐다. 곰장어 껍질은 가죽 제품으로 쓸 만큼 단단하고 질겨서 지갑 따위를 만들기 위해 공업용으로 곰장어를 수입했다. 지금도 장어 가죽 지갑을 검색하면 어렵지 않게 구매할 수 있다. 이렇게 껍질을 벗기고 난 뒤 살을 버리는 것이 아까워 구워 먹은 데서 부산식 '꼼장어 구이'가 탄생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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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질 벗긴 곰장어. 껍질은 가죽으로 피혁 제품을 만드는 데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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숯불에 산 채로 구워 먹거나 매운 양념을 해 볶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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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장어는 다른 장어와 달리 껍질을 벗기고 숯불에 겉이 살짝 그을릴 정도로 구운 뒤 먹거나, 마늘과 고춧가루 등을 넣어 매콤하게 양념한 뒤 철판에 볶아 먹기도 한다. 살아 꿈틀대는 곰장어를 짚 더미에 넣고 불을 지르는 부산 기장의 '짚불곰장어'도 유명하다. 이렇게 짚불에 새까맣게 태운 곰장어는 목장갑을 끼고 껍질을 벗겨내 불어 가며 먹는 것도 제맛이다. 한편 곰장어를 산 채로 껍질을 벗기고 불판에 올리면 한동안 힘차게 꿈틀거리기 때문에 혐오 식품이라고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 장어, 보양식으로 제대로 즐기려면

여름 대표 보양식인 장어, 과연 건강상 효능은 얼만큼이나 있을까? 장어는 기름기가 많고 단백질이 풍부하며 비타민A, 미네랄 등이 풍부하다. 성분 각각은 피로 해소 등에 일부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사실 장어를 한두 끼 먹는다고 영양학적 효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장어 꼬리도 마찬가지다. 몸통과 유의미한 영양상 차이는 없으니 분위기에 맞게 서로 양보하는 것이 즐겁게 식사하는 미덕이다.

한편 장어 쓸개즙을 소주에 타서 먹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절대 금물이다. 장어 쓸개즙에 지방을 소화하고 콜레스테롤을 배설해 소화 흡수를 돕는 '담즙'이 잘 배출되도록 돕는 이담 작용이 있다고 알려져 있으나 잘못된 상식이다. 오히려 쉽게 부패할 위험이 있고, 장어 피에는 독성 물질이 있으므로 먹지 않는 것이 좋다.

기름기가 많은 장어를 맛있게 즐기는 방법은 생강채와 함께 즐기는 것이다. 생강은 살균 작용을 하고 콜레스테롤 흡수를 낮추며 산화 작용도 억제하므로 장어와 궁합이 좋다. 한의학 관점에서는 복숭아나 은행이 장어와 서로 상극으로 소화에 방해가 되므로 장어를 먹고 후식으로 복숭아는 먹지 않는 것이 좋다.

[이정윤 콘텐츠디렉터·다이닝미디어아시아 대표(julialee@diningmediaas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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