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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몸과 마음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을 거란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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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회비평가 바버라 에런라이크

의료 과잉진단, 건강 염려증 덫 고발

“죽음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한겨레

건강의 배신-무병장수의 꿈은 어떻게 우리의 발등을 찍는가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조영 옮김/부키·1만6000원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돌아가는 하나의 상품에 가깝다는 느낌을, 건강검진을 할 때마다 받는다. 검진센터 바닥에 붙어 있는 안내선을 따라 걸음을 옮기다 보면 시력과 청력, 호흡기, 치아, 내시경 검사까지 일사천리다. 의사와의 상담은 5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술을 좀 줄이셔야겠네요” “잠을 더 주무시는 게 좋겠어요”처럼, 딱히 특별할 건 없지만 ‘전문가’로부터 한 번 더 듣는다는 데 의의를 두는 말을 뒤로 하고 진료실을 나선다. 일련의 과정이 끝나면 ‘정말 이런 검사로 병을 발견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지만, 그래도 빼먹은 적은 없다. 미처 버리지 못한 알량한 기대와 희망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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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들르진 못하더라도 돈을 들여 운동 등록은 꼬박꼬박 한다. ‘자기관리를 하고 있다’는 안도감을 위한 보험이다. 스트레스를 핑계로 매운 음식을 잔뜩 먹고 나면 ‘절제하지 못했다’는 자책이 불쑥 고개를 든다. 최근에는 ‘마음 챙김’을 위한 명상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해보기도 했다. “이제는 ‘마음의 근육’이 필요한 시점이야”라고 되뇌이며.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건강을 관리해야 한다’는 현대인의 강박과 믿음, 풍경은 대체로 비슷하지 않을까. 당장 유튜브에 ‘홈트레이닝’, 일명 ‘홈트’를 검색해보라. 돈을 들이지 않고 집 안에서도 운동할 수 있다며 시작된 ‘홈트’ 열풍은 이미 거대한 산업으로 발전했다. 닭가슴살, 호밀빵, 잡곡밥 등 소위 ‘건강식’을 간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해주는 간편식 시장도 성장 중이다.

미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영세산업 수준이던 미국의 헬스케어 시스템은 연간 3조달러의 산업으로 발전했다. 건강 관리는 곧 세련된 라이프스타일을 영유하는 일이란 착시, 개인이 노력하면 ‘나이를 되돌릴 수 있다’는 환상, 젊음과 장수를 바라는 인간의 욕망이 뒤섞여 키운 시장이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통제함으로써 건강을 추구한다는 건 정말 가능한 일일까. 미국의 사회비평가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무병장수’란 현대인의 꿈에 제동을 건다. 책은 <긍정의 배신>, <노동의 배신>, <희망의 배신>에 이은 네번째 ‘배신’ 시리즈다. 긍정 이데올로기와 저임 노동,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의 몰락 실태를 들춰냈던 저자는 이번엔 의료 과잉진단과 건강 염려증의 덫을 고발한다.

저자는 의료산업이 우리의 기대만큼 과학적이거나 철저한 증거를 기반으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대규모로 반복해서 이뤄진 국제적 연구결과에 따르면, 정기적 유방 조영 검사 덕분에 유방암 사망률이 현저히 감소했다는 증거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과잉 검진은 여성에게 더 잔혹한 측면도 있다. 산부인과 연례 검진의 경우 “많은 여성들은 유방과 성기를 세세히 주의 깊게 살피는, 실제 성행위와 아주 유사한 이들 검사로 인해 정신적 외상을 입”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4년 미국내과의사학회는 “표준 부인과 검사가 증상이 없는 성인 여성에게는 쓸모가 없으며, 특히 검사에 수반되는 ‘불편, 불안, 고통, 그리고 추가적인 의료비’를 감당할 만한 가치는 더욱 없다”고 발표했다.

‘마음 근육’을 단련한다는 프로그램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실리콘밸리에선 직원들에게 ‘마음 챙김’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명상을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며 미래 지향적인 것”인 양 여기게 만들었지만 사실 “명상은 스트레스 관련 증상을 치료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근육 이완, 약물 치료, 심리 치료와 같은 다른 치료법보다 더 효과적이지는 않다”는 분석 결과도 있다.

노화를 질병으로 취급하는 사회는 철저한 식단 관리와 운동을 마치 개인의 도덕적 의무로 여기게 한다. 하지만 이런 통제가 과연 인간을 불멸의 꿈에 가까워지게 했을까? 피트니스 산업의 개척자인 짐 픽스는 매일 최소 10마일(약 16㎞)씩 달리고 식단을 제한했으나 52살에 심장마비로 숨졌고, 익히지 않은 채식을 해왔던 스티브 잡스는 56살에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그래서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과연 노화는 질병인가. 죽음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의료화된 삶’을 거부하겠다는 저자의 답은 이렇다. “창문 없는 대기실이나 삭막한 검사실에서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으며 “죽기에 충분한 나이가 됐다는 것은 패배가 아닌 성취”라고. 삶은 “우리를 둘러싼 경이롭고 살아 있는 세상을 관찰하고 그것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짧은 기회”일 뿐이라고 말이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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