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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극장식 사파리’ 효과 얻고, 동물들 표정연기 놓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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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라이온 킹

실물 같은 컴퓨터그래픽 구현

비욘세 등 화려한 목소리 연기진

사파리여행 하는 듯한 효과 선사

동물들 감정표현 수단 사라지고

1994년 판 벗어나지 못한 연출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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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의 13번째 라이브 액션 영화’라고 일컬어지는 2019년 판 <라이온 킹>은 다들 아시다시피 라이브 액션 영화가 아니다. 출연 동물부터 자연환경까지 거의 컴퓨터 이미지로 만든 <정글북>(2016년 판)에서는 그래도 ‘모글리’ 역의 인간 배우(라는 말을 쓰는 날이 드디어 오고야 말다니) 닐 세티가 있었다. 하지만 <라이온 킹>에서는 드디어 모든 것이 컴퓨터로 만들어졌다. 돌멩이 하나, 풀 한 포기도 아무리 실물 같아 보여도 모두 컴퓨터그래픽(CG)의 산물이다.

요컨대 <라이온 킹>은 라이브 액션 영화가 아닌 컴퓨터 애니메이션이다. 다만 그 컴퓨터 애니메이션이 2016년 판 <정글북>처럼, 또는 그 이상으로 실물스러운(photorealistic) 애니메이션일 뿐.

그런데 이 실물스러움은 단지 컴퓨터그래픽의 정교함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예고편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듯, 2019년 판 <라이온 킹>의 동물들에게는 표정이 거의 없다. 또는 한가지 표정뿐이다. 실제 동물들이 그런 것처럼. 물론 웃음, 슬픔 등의 표정이 스쳐 가긴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디즈니 동물 캐릭터들이 보여온 의인화의 수준을 생각하면, 부왕 ‘무파사’나 하이에나 리더 ‘쉔지’가 보여주는 짤막한 웃음은 거의 웃음을 닮은 찡그림에 가까워 보인다.

‘자연 그대로’가 주는 부자연스러움

이런 ‘실물성 절대 엄수’의 원칙은 미술이나 조명의 색감 등에서도 유지된다. 예컨대 주인공 아기 사자 ‘심바’와 그의 여자친구 ‘날라’가 어둠의 땅 ‘섀도 랜드’의 코끼리무덤에 도착했을 때 마주친, 하이에나가 기어 나오던 거대한 코끼리 유골 등처럼 인공적 색채가 가미된 미술은 2019년 판에서 과감하게 배제되어 있다. 또한 ‘프라이드 랜드’는 세피아 톤, ‘섀도 랜드’는 청회색 톤, ‘하쿠나 마타타 랜드’(이건 물론 필자가 멋대로 붙인 이름)에서는 녹색 톤 등으로 뚜렷하게 구분되고, 컷 단위로도 상당히 표현적이었던 ‘조명’의 색감도 2019년 판에서는 거의 ‘자연광’에 가까운 톤으로 바뀌어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대표적으로는 ‘어서 왕이 되고파’(I just can’t wait to be king) 같은 뮤지컬 장면에서 등장하는 화려하고 그래픽적인 군무 연출은 없을 것이라는 건 충분히 짐작하시고 남음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는 대목이겠다. 뒤에서 얘기하겠지만 현실적이고 실물스러운 자연 묘사는 이 영화의 대단히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고, 이는 그 나름의 기능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런데 곤란한 것은, 위에서도 말했듯 이 실물성이 동물 ‘연기자’들의 얼굴 표정이라는 기본적인 감정 전달의 수단을 희생시키면서 추구되고 있다는 점이다. 의도적으로 관객의 감정이입을 차단시키는 이화효과를 노린 것이 아닌 이상, 이는 스스로 양발을 묶고 축구를 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형국에 다름 아닐 것이다.

물론 목소리 연기진의 라인업은 강력하다. 도널드 글러버(심바 역)와 비욘세(날라 역), 추이텔 에지오포(스카 역), 세스 로건(품바 역) 등의 유명 배우들이 두루 캐스팅되어 있다. 심지어 ‘무파사’ 역에는 오리지널 1994년 판의 캐스팅인 제임스 얼 존스가 그대로 캐스팅되어 특유의 카리스마를 다시 옮겨놓고 있다. 뭐, ‘티몬’ 역의 빌리 아이크너와 함께 티몬-품바 듀오를 업그레이드시키는 데 성공한 세스 로건의 연기를 제외한다면, 이들의 연기는 1994년 판에 비해 대체로 밋밋한 것이 사실이지만(특히 1994년 판에서 제러미 아이언스가 연기했던 스카에 비해 2019년 판의 스카는 더욱 그렇다) 연기의 함량은 부족하지 않다. 문제는 이들의 연기가 컴퓨터그래픽 동물들 표정의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한다는 데 있다.

물론 이런 정도의 사실성에 대한 고집으로 주최 쪽이 얻으려는 가장 큰 효과는 극장의 테마파크화, 그중에서도 특히 극장의 사파리화일 것이다. 다들 아시다시피 이것은 주최 쪽에는 극장 입장 수익과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이슈인데, 과연 2019년 판 <라이온 킹>의 실물성은 그러한 극장식 사파리, 또는 반나절 만에 다녀오는 아프리카라는 기능성에 최적화되어 있고, 그런 목적에서라면 대단히 성공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햄릿의 서사를 도입한 내셔널 지오그래픽 영화를 감상하러 간 것은 아니다. 더구나 이 영화에는 엄연히 대사뿐 아니라 노래(!)까지 있지 않은가. 동물 캐릭터의 의인화를 최대한 피하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살리는 정책은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위화감을 증폭시킬 위험을 피하기 어렵다. 같은 종 안에서 캐릭터 간의 구별이 훨씬 어려워졌다는 불편함은 둘째 치고라도 말이다.(이 불편함은 심바와 스카의 최후 대결 장면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물론 이 장면에서 액션의 역동성이나 에너지는 1994년 판을 능가하는 것이었지만.)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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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 긴 직선’ 같은 밋밋함

그런데.

그렇다면 2019년 판 <라이온 킹>은 내용이나 전개 면에서도 1994년 판 <라이온 킹>과 전혀 다른 방향이나 전략을 취하고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1994년 판을 관람한 관객에게 2019년 판 <라이온 킹>에 대한 스포일러는 불가능하다. 스포 할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뒤집어 말하면, 1994년 판을 보지 않은 관객에게는 1994년 판 전체가 스포일러다. 이미 인터넷 곳곳에서 1994년 판과 2019년 판을 하나의 화면에서 나란히 비교해놓은 영상들이 목격되고 있는데, 오히려 두 버전의 같은 장면보다는 다른 장면을 편집해 놓은 것이 훨씬 짧고 간결했을 것이라고 사료될 만큼 두 영화의 많은 부분은 컷 단위로 동일하다.

그렇다면 2019년 판 <라이온 킹>만의 설정에는 무엇이 있는가.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알라딘>에서의 재스민의 약진처럼, 날라 캐릭터에 대한 부각이다. 비욘세의 캐스팅으로 더욱 강조되고 있는 날라 캐릭터는 재스민의 ‘스피치리스’(Speechless)처럼 ‘스피릿’(Spirit)이라는 제목의 신곡도 갖추고 있다.(비욘세는 이 곡의 작곡에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이 캐릭터가 남기는 인상은 안타깝게도 재스민에 훨씬 못 미친다.

오히려 기억에 남는 것은 앞서도 말했던 세스 로건-빌리 아이크너의 현대적으로 업데이트된 개그다. 특히 미어캣인 ‘티몬’ 캐릭터는, 뒷다리 긁기 등 미어캣 특유의 코믹한 동작으로 인해 이 영화의 실물성 엄수 정책의 거의 유일한 수혜자가 된다. 더불어 이들의 ‘하쿠나 마타타’ 장면이 여러 동물의 아카펠라 버전으로 업데이트된 것 역시 재미있다.

또한 기억에 남는 것은 ‘하쿠나 마타타 랜드’에 있던 심바의 털 뭉치가 그야말로 산 넘고 물 건너는 긴 여정을 거쳐 현자 맨드릴원숭이 ‘라피키’(존 카니)에게 도달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맥락상 일종의 브리지에 해당되는 이 장면이, 2019년 판을 통틀어 ‘생명의 순환’이라는 중심테마를 가장 뚜렷하게 드러낸 장면이라고 기억될 만큼 2019년 판이 주는 정서적 울림은 밋밋하다.

영화 속 표현을 빌리면 ‘무심한 긴 직선’을 긋는 듯한 이 밋밋함의 가장 큰 원인은, 1994년 판에서 거의 달라진 것이 없는 이야기를, 그 안에 담긴 기복 많고 낙차 큰 감정들을 표현할 핵심 수단인 ‘배우’들의 표정을 거의 제거한 채 들려주고 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이것이 오리지널 버전에 대한 존경심의 산물인지 안전제일주의 및 보신주의의 산물인지는 알 수 없겠다. 어쨌든 우리는 ‘단지 셀 애니메이션을 컴퓨터 애니메이션 버전으로 다시 만들었을 뿐’이라는 평가를 피하면서, 동시에 ‘디즈니 라이브 액션’ 라인업의 일관성에도 부합하는 리메이크를 해야 한다는 고뇌가 남달랐을 것임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라이온 킹> 오리지널 버전의 흥행이나 영향력, 그리고 이어진 뮤지컬(극세사 동물 인형옷이 전혀 등장하지 않은 이 놀라운 뮤지컬)의 성공 등을 생각하면 더욱.

존 패브로 감독은 3년 전 <정글북>에서 이 까다로운 작업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하지만 <정글북>의 ‘자연보다 더 자연 같은’ 컴퓨터그래픽 애니메이션이 지닌 짧은 충격 지속시간을 생각한다면, 실물적 자연스러움보다 그를 발판으로 한 연출과 이야기에 무게중심을 두지 않은 <라이온 킹>은 못내 아쉽지 않을 수 없다.

심바는 수면에 비친 자신의 얼굴에서 아버지 무파사를 본다. 그리고 자신이 왕의 후예임을 비로소 자각한다. 컴퓨터그래픽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본 2019년 판 <라이온 킹>은 그러나 극장식 사파리 이전에 영화이자 이야기인 자신을 잊었다. 그렇게 길을 잃은 1994년 판 <라이온 킹>의 후예를 보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이 또 어디 있으랴.

한동원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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