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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50년 간첩누명 벗은 기쁨도 잠시… 검찰 ‘납북어부 사건’ 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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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 생존자 남정길씨 재심 청구해

“증거 무효” 무죄 판결 받아냈는데

검찰 “고문해 얻은 자백과 달리

법정 진술은 자유롭게 했다 봐야”

과거사 대응 매뉴얼 어기고 항소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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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으로 몰려 억울하게 옥살이한 납북 어부들이 50여년 만의 재심 끝에 무죄를 선고받고도 다시 법정 싸움을 하게 됐다. 과거사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되면 추가 증거가 없는 한 상소하지 않겠다던 약속을 깨고 진술의 신빙성을 이유로 검찰이 항소했기 때문이다.

1967년 5월 선원이었던 남정길(69)씨 등은 ‘제5공진호’라는 선박을 타고 경기 연평도 인근 바다로 나갔다가 북한으로 납치됐다. 남씨는 5개월 만에 돌아왔지만, 경찰은 “반국가단체인 북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 탈출했다”며 영장 없이 가둬 구타하고 물고문을 했다. 1969년 2월 남씨는 반공법, 수산업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1년 및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았다. 남씨의 동료들은 최대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한 자백이 핵심 증거가 됐다. 당시 재판에는 남씨 등을 고문한 경찰관이 배석해 있었다. 지난해 7월 남씨와 고인이 된 납북 어부 다섯명의 유족은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올해 3월 재심개시 결정이 내려졌다. 지난 12일 전주지법 군산지원 형사1부(재판장 해덕진)는 “남씨 등이 당시 고문을 받아 본인 의지와 관계없이 자백했기 때문에, 수사기관이나 법정에서 한 자백은 증거로서 의미가 없다”며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경찰에서 행해진 가혹행위로 자백을 했고 그로 인한 심리상태가 법정까지 이어졌다면 본인의 의지에 따라 자백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유일한 생존자인 남씨는 선고 공판 뒤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 이제 우리도 떳떳하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은 지난 17일 “수사기관에서 한 자백은 가혹행위 탓에 증거로 쓸 수 없다 해도, 공판정에서 한 진술은 자유롭게 진술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항소했다. 당시 일부 피해자가 법정에서 “수사 과정에서 고문을 당했다”고 진술했는데, 법정에서 ‘고문을 당했다’고 얘기할 정도면 법정에서 혐의를 인정한 다른 진술도 피해자의 의지로 이뤄진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달 대검찰청이 밝힌 과거사 대응 매뉴얼과 배치된다. 당시 대검 공안부는 “재심 사건에서 무죄가 선고될 시 일률적인 상소를 지양하고 유죄를 인정할 만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하면 상소를 제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남씨 등을 대리한 최정규 변호사(원곡법률사무소)는 “당시 피해자들은 불법구금과 고문으로 인격이 파괴됐고, 이런 상태에서 하지도 않은 범행을 자백하게 됐다”며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지도 않았는데 과거 진술을 이유로 항소하는 것은 좋지 않은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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