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6 (목)

[시선]‘강지환 사건’ 성폭력 범죄의 전형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탤런트 강지환이 성폭행 혐의로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여성들은 지인의 도움으로 신고했고 경찰이 출동해서 현행범을 붙잡았으며 그의 변호인은 ‘모든 혐의를 인정하며’로 시작하는 입장을 대신 발표했다. 성범죄 사건의 전형처럼 진행되는 이번 사건을 보며 성폭력의 핵심을 하나씩 짚어보고 싶었다.

경향신문

첫째, 함께 술 마시던 이가 모두 떠난 뒤, 그는 콜택시를 불러주겠다면서 가장 말단의 스태프를 붙잡았다. 택시가 필요하기도 했을 것이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 연예계에서 연차가 낮은 스태프라면 개인물건은 물론 각종 협찬물품까지 이고 지고 책임껏 날라야 할 테고 자기 차량을 가지고 있을 만큼 벌이가 보장되지는 않을 테니 외진 곳에서 나오려면 콜택시가 꼭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주연급 배우가 술을 권하는데 마다할 수 있는 권리가 그들에게 있었을까. 우리가 언제 몇 단계에 걸친 계약으로 묶여 있는 갑을, 아니 어쩌면 병 혹은 정 신분의 노동자가 ‘술은 이제 됐고, 나는 집에 가겠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였었나. 왜 그 시간까지 술을 먹었냐는 일부 사람들의 질문에는 애초부터 업무상 회식이었던 점과 피해자들의 위치에 대한 고민이 빠져 있다.

둘째, 강지환은 범행 직후 피해자에게 ‘잘못을 했다면 감옥에 보내달라’고 했다. 그러나 이 말은 처벌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지우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피해자들이 많이 겪는 2차 가해 중의 하나는 이처럼 ‘네가 나를 감옥에 보낸다’ 혹은 ‘피해자가 사건을 드러내서 가해자가 곤란해졌다’라는 말들이다. 소위 ‘앞날이 창창한 젊은 애를…’로 시작되는 문장이 그 예다. 이는 피해를 호소하는 여성에게 남자를 감옥까지 보낸 사람이란 프레임을 씌우는 악질적인 태도이다. 조민기의 죽음 이후 피해자들에게 결국 당신이 사람을 죽였다며 악플을 써대던 사람들의 논리와 같다. 그러나 가해자가 징역형을 받던 그러지 않던 피해자가 감옥에 보내는 것이 아니다. 그를 수감시키는 주체는 국가다. 이 모든 일은 그의 위법행위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셋째, 오빠로서 미안하다. 그는 이렇게 사과했다.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채 온라인으로 인한 상처를 걱정하는 말 자체도 궤변이지만 동생을 걱정하는 오빠의 모습으로 본인을 포장하는 태도는 더욱 가관이다.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피의자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에게 내가 오빠라는 관계의 우위는 차지하고 싶은 듯하다. 너를 댓글로부터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오빠의 모습, 인간 대 인간으로, 피의자로서 사과하지 못하는 그의 태도가 사실 성범죄의 핵심이다. 성폭력은 권력구조 안에서 발생하는 범죄이기 때문이다.

넷째, 화이브라더스코리아는 강지환과 계약을 해지했음을 알렸다. 앞으로 소속 아티스트를 잘 관리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어디에도 피해자 지원의 약속은 없다. 피해자들은 외주 스태프였으니 이 회사는 아무 책임이 없는 것일까. 본인들과 계약을 맺고 일 하던 사람들의 노동현장에서 벌어진 일이며 무엇보다 당시 소속되어 있던 배우가 저지른 일이건만 그저 강지환을 잘라냄으로써 무관한 일로 만들 계획인가보다. 신뢰가 무너진 배우 한 명은 빠르게 내보내면 된다지만 앞으로도 그 회사와 함께 일을 할 수많은 스태프는 어디서 신뢰를 쌓을 수 있을까. 연예인과 가장 측근에서 붙어 있어야 하는 스태프에게 필요한 것은 오빠가 아니라 안전한 노동환경이다.

미투운동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 숨어 있던 성폭력이 밖으로 드러난 지 두 해가 흘렀다. 그래서 결국 이 사회는 여성에게 좀 더 안전해졌는지 모두에게 묻고 싶다. 배우는 여성이, 노동하는 여성이, 돌보는 여성이, 즐기는 여성이 자신의 욕구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을까. ‘우리는 꽃뱀이 아니라 성범죄 피해자다’라는 당사자의 절규는 언제까지 반복되어야 하는가.

김민지 풀뿌리 여성주의 활동가

최신 뉴스두고 두고 읽는 뉴스인기 무료만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