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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R이 있었다면 마라도나 ‘신의 손’은 어떻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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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뉴스분석 왜?

축구계 주목받는 VAR

영상판독심판 2016년 첫 도입

지난해 K리그, 오심 95건 잡아내

영상판독 거쳐도 결국 오심 내기도

“5% 경기에서 실수 바로 안잡혀”

100% 완벽한 판정은 어려워

기술은 보조, 판정은 주심의 몫

명백한 실수 정정이 제도 목표

경기흐름 끊지만 공정성은 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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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결승전에서 잉글랜드와 서독(현 독일)이 맞붙었다. 2-2 동점이던 연장 전반 11분 잉글랜드의 슛이 서독의 크로스바를 맞고 땅을 한번 튕기며 골문 밖으로 나왔다. 주심은 골로 인정했지만, 텔레비전 화면에 나타난 공의 궤적은 노골이었다. 잉글랜드는 서독을 4-2로 눌렀다. 44년 뒤인 2010년 남아공 월드컵 16강전에서 잉글랜드와 독일이 다시 만났다. 독일이 2-1로 앞선 전반 38분 잉글랜드의 슛이 독일의 크로스바를 맞고 땅을 한번 튕긴 뒤 골문 밖으로 나왔다. 중계화면으로 볼 때 완벽한 골이었지만 주심은 노골을 선언했다. 독일은 4-1로 이겼다. 한번씩 ‘오심’의 혜택을 주고받은 셈이다.

#2.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의 8강전. 0-0으로 맞선 후반 6분 잉글랜드 문전에서 단신의 디에고 마라도나(아르헨티나)와 장신의 잉글랜드 골키퍼가 공중에 뜬 공을 향해 동시에 떠올랐다. 공은 마라도나가 교묘하게 들어 올린 손을 먼저 맞고 골문으로 들어갔다. 주심은 이를 골로 인정했다. 아르헨티나는 2-1로 이겼다. 마라도나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그건 신의 손이었다”고 말했다.

오심 사건들은 축구 역사에서 두고두고 입길에 오른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그 덕분에 풍성해졌지만 불공정한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주심이 판정을 내리고 경기가 끝나면 이를 뒤집을 방법은 없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최근 판정이 내려지는 과정은 좀 더 엄격하게 바뀌었다. 영상판독심판(VAR=Video Assistant Referees) 제도 도입 때문이다.

#3. 지난 2월 네덜란드 프로축구리그에서 열린 피테서와 헤이렌베인의 경기. 피테서가 2-1로 앞선 후반 42분, 헤이렌베인이 공격 때 측면에서 프리킥을 얻어 피테서 골문 쪽으로 크로스를 올렸다. 문전으로 쇄도하는 헤이렌베인 공격수와 피테서 수비수가 엉키다 넘어지는 사이 공을 잡은 피테서가 역습에 나서 한 골을 추가했다. 3-1. 피테서의 쐐기골이었다. 순간 영상판독실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이곳엔 영상판독실을 총괄 관리하고 경기장 주심과 교신할 수 있는 영상판독심판(VAR) 1명, 영상판독심판을 돕는 영상판독부심(AVAR) 3명, 영상기술자(RO) 4명이 있다. 영상판독부심이 피테서의 세 번째 골이 터지기 전 피테서 문전에서 발생한 프리킥 상황을 다시 재생한 뒤 화면을 가리키며 영상판독심판에게 말했다. “저기 가운데 선수들이 엉킨 부분 좀 볼래요? 수비수가 공격수 상의를 잡는 거 같은데.”

영상판독심판이 헤드셋 마이크로 경기장에 있는 주심에게 말했다. “잠깐만요, 지금 (문제 되는 장면) 확인하고 있습니다.” 주심은 한 손은 귀에, 다른 손은 쭉 뻗은 모양을 하며 영상판독에 들어갔음을 선수와 관중에게 알렸다. 영상판독심판이 영상판독부심과 논의를 끝낸 뒤 경기장 주심에게 문제 되는 장면을 설명하고는 이를 봤는지 물어봤다. “선수 두 명이 넘어지는 건 봤는데, 누가 잡은 건지는 못 봤어요.” (주심) 영상판독심판은 경기장 옆에 설치된 영상판독구역의 영상판독 모니터로 가서 해당 장면을 보라고 주심에게 권했다. 주심은 “그럽시다”라고 답한 뒤, 양손으로 영상화면을 상징하는 직사각형 모양을 그리고는 영상판독구역으로 뛰어갔다.

“수비수가 공격수 상의를 잡는 게 분명히 보이죠?” (영상판독심판) “네, 네, 명확하네요.” (주심) 주심은 경기장으로 돌아가 피테서 골문 앞 프리킥 상황에서 발생한 피테서 수비수의 반칙이 인정된다며 헤이렌베인의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피테서의 세 번째 골은 취소됐다. 헤이렌베인은 페널티킥을 성공시켰다. 피테서가 3-1로 이길 경기가 한순간에 2-2 무승부로 바뀌었다. 피테서엔 악몽의 밤이었지만 경기 결과는 바로잡혔다.

축구계에 영상판독심판 제도가 도입되면서 이전 같으면 놓쳤을 상당수 오심이 바로잡히고 있다. 실제로 영상판독심판이 승부를 한순간에 뒤바꿔 놓으며 축구계를 들었다 놓았다 하기도 한다. 일부 축구팬들은 경기의 모든 상황을 정밀 검증하면 모든 오심이 바로잡힐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됐다. 축구는 오심이 없는 완전무결한 공정 스포츠로 거듭날 수 있을까. 대답은 100%는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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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오심은 나온다

축구 경기방식을 결정하는 협의체인 국제축구평의회(IFAB)는 2016년 3월 영상판독심판 제도 도입을 승인했다. 영상판독심판 제도는 별도의 영상판독실에서 영상판독심판이 경기 중 일어나는 상황(골, 페널티킥, 퇴장, 엉뚱한 선수에게 준 카드)을 실시간 영상으로 체크하다가 명백한 오심이라는 판단이 들 때 헤드셋 교신기를 통해 경기장에 있는 주심에게 알려 영상판독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때로는 주심이 먼저 영상판독을 요청해 이뤄지기도 한다.

이 제도가 적용된 첫 경기는 2016년 8월 북미 세미프로리그에서 열린 뉴욕과 올랜도의 2군 경기였다. 국제대회로는 같은 해 12월 열린 ‘2016 FIFA 클럽 월드컵’에 처음 도입됐다. 현재 23개국 프로축구리그에서 운영하고 있다. 일본 프로축구리그는 아직 도입하지 않았고, 스위스와 크로아티아는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국내에선 2017년 7월 K리그 클래식(현 K리그1)에 도입된 것이 최초다. 현재 국내 프로경기에서는 축구 외에 야구, 배구, 농구에 영상판독 제도가 도입돼있다.

지난달 대한민국이 준우승한 2019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대한민국과 세네갈(8강전), 대한민국과 우크라이나(결승전)의 경기에서는 페널티킥 선언, 골 및 반칙 여부 등 결정적인 순간 영상판독심판 판정이 잇따라 팬들의 희비가 엇갈리기도 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의 ‘2018시즌 K리그 VAR 판독 현황’ 자료를 보면, 총 410경기(K리그1 228경기, K리그2 182경기)를 치른 결과 주심이 영상판독을 거쳐 애초 내렸던 오심을 바로 잡은 건수는 95건이었다. 하지만 영상판독을 거쳐 주심이 판정을 내렸음에도 경기 뒤 오심으로 최종 확인된 것도 25건이나 됐다. 조영증 한국프로축구연맹 심판위원장은 “공이 골라인을 넘거나 카드를 엉뚱한 선수에게 주는 행위 등은 영상판독으로 금방 가려낼 수 있다. 객관적 판단이 가능하다. 문제는 페널티킥 선언과 레드카드(퇴장)를 줄 때다. 이건 주심의 주관적 판단 영역이다. 선수의 반칙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동작에서 나온 것인지, 고의로 반칙을 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인지는 영상판독을 해도 쉽지 않다. 더구나 이를 짧은 순간에 결정해야 한다. 영상판독이 도입됐으니 주심이 완벽한 판정을 해야 한다는 기대감도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현실에선 오심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실제로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지난 2일 “심판평가위원회가 지난달 30일 서울과 울산 경기에서 영상판독을 거쳐 주심이 판정을 내렸는데 결국 오심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지난 4월 서울과 강원 경기에 이어 두 달 만에 나온 ‘영상판독 오심’이었다.

영상판독 오심은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국제축구평의회는 지난해 초 연례 비즈니스 회의에서 영상판독심판 관련 보고서를 냈다. 국제축구평의회는 2016년 이후 진행된 804건의 프로축구 경기 결과를 분석했다. 보고서를 보면, 20경기 중 한 경기꼴로 주심의 명백한 실수가 바로잡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보고서는 ‘이 수치(5%)는 짧은 영상판독심판 제도 도입 기간과 인간 지각능력의 오류, 낯선 기술방식과 의사소통 여건 등을 고려하면 희망적 수치”라고 설명했다.

VAR는 ‘Video Assistant Referees’의 약어다. 그대로 번역하면 ‘영상보조심판’이다. 국제축구평의회의 영상판독심판 제도 설명자료를 요약하면, 이 제도의 주인공은 기술(영상 분석)이 아니라 주심이다. 기술은 주심을 돕는 보조 수단이다. 영상판독 여부도 주심이 결정하고, 최종 판정도 주심이 내린다. 영상판독실에 있는 영상판독심판은 문제 되는 장면이 무엇인지 주심에게 상황설명만 할 수 있다. 국제축구평의회는 영상판독 제도의 철학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판정은 주심이 한다. 주심의 판정은 영상으로 명백한 실수가 판독될 때만 바뀐다. 영상판독 제도는 ‘판정의 100% 정확성’이 목표가 아니다. 그것은 애초 가능하지도 않다. ‘최소 개입, 최대 이익’이 이 제도의 철학이다.”

이 제도가 추구하는 가치는 공정성이다. 주심이 영상판독을 할 때 시간제한은 없다. 공정한 결과가 경기 속도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 영상판독 과정의 투명성 확보 차원에서 모든 과정을 텔레비전 시청자에게는 중계화면으로, 경기장 팬에게는 전광판으로 공개한다.

하지만 영상판독심판이 경기에 과도하게 개입해 흐름을 방해한다는 비판 역시 끊이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피에를루이지 콜리나 국제축구연맹 심판위원장은 프랑스 여자월드컵 기간 중 기자회견을 열어 “영상판독심판이 존재하는데 이를 모른 척하거나 무시할 수는 없다. 판정을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는 도구를 갖고 있다면 당연히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병섭 대한축구협회 심판 전임강사는 “주심이 영상판독을 하는 시간의 제한은 없지만 영상판독심판 제도는 되도록 경기 중단을 최소화하려고 한다. 축구를 보는 사람의 감정 흐름을 해치지 않으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더 좋은 판정이 아니라 주심의 명백한 실수를 바로잡는 데 목표가 있다”고 말했다.

규칙이 최대로 적용된 경기가 목표

축구 규칙은 하나지만 이를 경기장에서 활용하는 경기운용 방식은 주심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경기 흐름을 중시해 반칙에 관대한 주심도 있고, 경기 규칙을 중시해 반칙에 엄격한 주심도 있다. 이는 전적으로 주심의 고유 권한이다. 주심의 주관적 판단이 개입되는 이상 판정 논란은 영상판독심판 도입 여부와 무관하게 지속될 수 있다. 오심도 계속 나올 것이다. 이 때문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영상판독심판 제도에 가장 보수적 태도를 보이다가 2019~2020시즌부터 뒤늦게 도입하기로 했다. 대한축구협회 한 관계자는 “축구는 경기 흐름이 중요하다. 그런데 영상판독을 해도, 하지 않아도 사람이 하는 일은 실수가 있을 수 있다는 게 영국의 태도였다. 따라서 경기 흐름을 중시하는 축구의 기본 가치를 어느 쪽이 더 떨어뜨릴지가 영국의 고민 지점이었다”고 말했다.

분명한 건 영상판독심판 제도 도입으로 경기 흐름은 다소 지연될 수 있지만 주심의 오심 비율은 전보다 줄어들 것이란 점이다. 유병섭 대한축구협회 심판 전임강사는 “영상판독심판 제도로 경기의 신뢰도가 올라가고 있다. 선수들이 위험지역에서 반칙을 조심하기도 한다. 퇴장성 반칙도 현저히 줄고 있다. 팬들은 축구의 규칙이 최대로 적용된 경기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신의 손’ 논란의 장본인 디에고 마라도나는 2017년 7월 국제축구연맹과의 인터뷰에서 영상판독심판 제도 도입을 지지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과거에 기술이 사용됐다면 월드컵 역사가 달라졌을지도 모를 수많은 사건이 있다. 이제는 모든 것을 바꿀 때다.”

김정필 기자 fermat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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