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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정부 ‘친기업 카드’…화학물질 규제 풀고 세액공제 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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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품·소재 탈일본 지원 대책

화학물질 인허가 ‘패스트트랙’

핵심 R&D 예타 면제, 세액공제

소재 개발 주52시간 특례 확대

중앙일보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이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일본 수출규제 대응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오른쪽 둘째는 최근 사의를 표명한 최종구 금융위원장. [사진 기획재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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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그간의 기조에서 벗어나 대기업의 부담을 줄여 주는 정책 마련에 나섰다. 일본의 ‘몽니’가 길어질 것에 대비한 대응책이다.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비하면서 연구개발(R&D) 투자 촉진으로 핵심 기술의 ‘탈(脫)일본’을 앞당기겠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다.

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 경제정책 부처는 단기 대책으로 일본의 수출 규제로 영향을 받거나 받을 우려가 있는 소재·부품을 국산이나 다른 수입선으로 대체할 수 있는지 점검 중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일본의 수출 규제 확대에) 영향받을 품목이 1000여 개라고 하는데 실제 조치가 이뤄졌을 때 어떤 품목이 중점이 될지, 밀접한 품목은 어떤 것인지, 기업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 투자 끌어내 경기둔화 방어

중장기 대책으로는 재정 확대는 물론 행정절차 간소화, 세제·금융지원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총망라했다. 그간의 대(對)기업 규제 일변도에서 탈피해 최근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계 주요 인사 초청 간담회에서 주요 기업인이 요청한 사항을 일정 부분 반영한 것이다.

우선 정부는 주 52시간 근무제 특례 확대 방침을 공식화했다. 국산화 속도를 내기 위해 실증테스트 등으로 연장근로가 불가피한 경우 특별연장근로를 인정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한다. 특별연장근로는 천재지변이나 그에 준하는 재해·사고가 발생했을 때 연장근로를 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다만 대상은 산업부에서 일본 수출규제 품목 관련 업체로 확인한 기업으로 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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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수출규제에 대응하는 정부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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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기업이 고순도 불화수소 등에 대한 대체재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만큼 이들 기업이 특별연장근로를 신청할 경우 한시적으로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정부는 R&D 인력 등이 주 52시간 이상으로 일할 수 있는 ‘재량근로제’를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이달 말까지 ‘가이드라인’도 제공하기로 했다.

또 제품 개발을 위한 R&D 등 필요한 부분에 한해 화학물질 인허가 기간을 단축하고, 신규 화학물질이 신속하게 출시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소재 부품의 ‘탈일본’을 위해 행정적 절차를 줄여 주는 일종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제도’다. 이는 일본 의존도가 높은 화학물의 경우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에 묶여 현실적으로 조속한 국산화가 쉽지 않다는 기업들의 요구를 반영한 조치로 해석된다. 아울러 이번 추가경정예산안 및 2020년도 예산안에 소재·부품산업 지원 예산을 최대한 담겠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다.

고순도 불화수소 제조기술 등 핵심소재·부품·장비 관련 기술 관련 R&D 비용을 세액공제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또 설비투자의 80% 가까이를 차지하는 대기업의 생산성 향상 시설 투자에 대한 투자세액공제율과 적용 대상을 대폭 늘린다. 초기 투자 단계에서 감가상각을 크게 인정해 세금을 덜 내고 투자금액을 조기에 회수할 수 있는 ‘가속상각’ 제도의 적용 범위도 확대한다. 신속한 기술개발이 필요한 핵심 R&D 과제의 경우 예비타당성조사가 면제된다.

한국 수출 감소폭 1위에 위기감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임시적·한시적 조치’라고 표현했다는 점에서 ‘친노동’에서 ‘친기업’으로의 정책 방향 수정으로 보긴 어렵다”면서도 “사태 극복에 대한 정부와 기업의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정부의 정책이 현재의 위기를 돌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극일(克日)의 선봉에 서고 있는 기업들이 활력을 갖고 투자를 늘릴 수 있도록 친기업 환경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여기에는 대기업의 투자를 끌어내 수출 및 투자 감소 등에 따른 경기 둔화를 방어하려는 목적도 있다. 세계무역기구(WTO)와 주요 투자은행(IB)에 따르면 지난 1~4월 세계 10대 수출 대국 가운데 한국의 수출 감소 폭이 1위다. 한국의 수출은 1814억8500만 달러로 6.9% 줄었다. 미·중 무역전쟁의 충격을 그만큼 많이 받았다는 얘기다. 이어 독일(-6.4%)·일본(-5.6%)·이탈리아(-5.2%) 순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본의 수출규제로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한국의 성장률 전망을 낮추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블룸버그가 이달 43개 IB 등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올해 한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평균 2.1%였다. 지난달 조사치(2.2%)보다 0.1%포인트 낮아졌다. IHS마킷과 ING그룹이 한국 성장률을 1.4%로 예상하며 가장 비관적인 전망을 했다. 캐피털이코노믹스가 1.5%, 노무라증권·데카방크·모건스탠리·OCBC가 1.8%를 점쳤다.

한·일 양국의 긴장 관계가 수그러들지 않는 상황에서 일본 정부가 백색 국가 제외 조치를 강행할 경우 한국의 성장률 전망은 더 낮아질 수 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보고서에서 “현재 한국의 성장률을 2.0%로 전망하지만 양국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으로 맞서 공급 체인이 심각하게 망가질 경우 성장률이 더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일본의 조치로 반도체 생산이 10% 감소할 것으로 보이며, 이에 따라 2019∼2020년 평균 성장률은 기존 2.1%에서 0.5%포인트 내린 1.6%로 떨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세종=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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