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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4 (월)

점심값 때문에 밥이 안 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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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뭐 먹지?"는 배부른 소리

낮 기온이 35도까지 치솟은 지난 19일 오전 11시 50분쯤, 서울 종로의 허름한 백반집 앞에 5m 가까운 대기 행렬이 생겨났다. 줄을 선 뒤 입장하기까지 20분 이상 걸렸다. 5000원짜리 된장찌개를 주문하면 오이소박이·깻잎무침 등 네 가지 반찬이 따라 나온다. 이곳에서 불과 수백m 떨어진 곳에 그랑서울·D타워 등 깨끗하고 시원한 최신 식당가가 있다. 회사원 박모(56)씨는 "새로 생긴 식당가에 가면 아무리 싸게 먹어도 1만원"이라며 "애들 교육비를 생각하면서 더워도 참는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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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내 직장인들이 가파르게 치솟는 '점심 값'에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최근 수년새 오피스타운을 중심으로 대중적인 음식 가격이 급격히 오르면서 1만원이 넘는 콩국수, 1만원대 중반의 냉면, 2만원에 육박하는 삼계탕 등이 속출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 조사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서울의 대표적인 8개 외식 메뉴 가운데 6개 품목의 평균 가격이 지난해 같은 달보다 올랐다. 2년 전과 비교하면 냉면은 12.5% 올랐고, 김밥은 10%, 김치찌개 백반은 7.24%, 칼국수는 4.6%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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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강남·여의도 등 서울시내 주요 오피스 권역(圈域) 직장인의 체감 외식 물가 상승률은 이보다 훨씬 높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허모(24)씨는 지난 18일 코엑스 내 한정식집에서 생선구이 반상을 먹었다. 반찬은 깍두기, 미역줄기볶음, 명이장아찌가 전부였다. 나올 때 1만8000원을 냈다. 허씨는 이를 포함해 지난주 평일 점심으로 칼국수, 육회비빔밥, 삼계탕, 샌드위치를 먹었다. 단품 식사 메뉴만 골랐지만 총 6만4300원을 썼다. "평범한 한 끼들이었을 뿐인데 돈을 허공에 날린 느낌"이라고 했다. 강남구 직장인 박효상(28)씨는 "가성비가 좋다고 소문난 식당들은 멀리 있고, 대기 줄도 길어 한정된 점심시간 안에 이용하기 어렵다"며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회사 근처 식당에 간다"고 했다.

서울의 점심 값은 외국과 비교해도 비싸다. 일본의 유명 저가(低價) 덮밥 체인점 '요시노야'의 점심특선(최근엔 소고기덮밥) 가격은 500엔(5470원). 서울시내 '김밥천국'의 식사류 기본 가격이 6000원이다. 1인당 GDP(국내총생산)를 감안하면 서울 쪽이 30% 이상 비싸다. 미국 뉴욕에서도 6~7달러 정도면 일반적인 직장인 점심 메뉴인 샌드위치나 길거리 햄버거 세트를 먹을 수 있다.

비싼 서울 점심 값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종로구 메밀국숫집 '미진'은 올해 4월 메밀국수 가격을 500원 올려 9000원을 받는다. 식당 관계자는 "직원을 10명 넘게 쓰는데 최저임금이 급등해서"라고 했다. 올 초 콩국수 가격을 1만원에서 1만1000원으로 올린 여의도 '진주집' 직원은 "인건비, 재료비, 임대료 등 뭐 하나 안 오른 게 없다"고 했다. 강남구 역삼동 생태찌개집 '아야진' 주인은 "올해 임대료만 10%가 올랐다"고 했다.

특히 오피스 권역은 도심 개발의 영향까지 받는다. 종로구청 직원 이모씨는 "4~5년 전만 해도 구청 주변에 한 끼 5000~6000원대 식당이 많았는데, 지금은 국숫집·라면집을 빼곤 거의 전멸 상태"라고 했다. 그는 "재개발로 대형 오피스 빌딩들이 잇달아 들어서면서 유동 인구가 1만명 가까이 늘어났고, 식당마다 직장인들이 줄을 섰다. 그러자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올렸고 밥값도 따라 오른 것"이라고 했다.

반대로 직장인들은 점심 값 지출을 줄이는 추세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올해 남녀 직장인 1380명을 대상으로 점심 값에 얼마나 쓰는지 물었더니 평균 6110원을 쓴다는 응답이 나왔다. 전년(6230원) 대비 2% 줄어든 숫자다. 2015년 6566원, 2016년 6370원, 2017년 6100원으로 거의 매년 줄었다. 잡코리아 관계자는 "구내식당을 찾거나 편의점 도시락 등으로 점심을 해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의미"라고 했다.

[강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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