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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칼·망치 들고, 방공호에 불지르고… 전쟁은 그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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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피습 현장… 김지원 기자 르포

조선일보

지난 17일 찾아간 이스라엘 남부 비에리 키부츠(집단농장)에서 한 주택의 주방이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다. 지난해 10월 하마스의 공격으로 파괴된 뒤 이 같은 모습으로 남아있다. /김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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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남부 비에리 키부츠(집단농장)에 지난 17일 들어서자 조용한 여느 시골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곳곳에서 새소리가 들렸고 나무에는 작은 그네가 매달려 있었다. 이곳이 8개월째 수만명이 목숨을 잃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불과 5㎞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정도로 고요했다. 그러나 마을 중심부로 들어갈수록 이 고요함은 비극의 증거임이 드러났다. 지난해 10월 7일 국경을 넘어 침투한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무장대원들이 집단 학살과 민간인 납치를 단행한 이 키부츠 곳곳에선 그날의 참혹함을 목격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은 이후 납치된 인질을 구해내고 하마스를 뿌리 뽑겠다면서 8개월 넘게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 마을엔 빨간 동그라미가 외벽에 그려진 집이 많았다. 한 주민은 “집주인이 하마스에 살해됐음을 뜻하는 표식”이라고 했다. 주택들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보니 총탄 자국 수백개가 보였다. 살아남은 주민들이 간신히 피란을 떠나고서 돌봐주는 이가 없어 아사(餓死)한 고양이 사체가 길바닥에 눌어붙은 모습엔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1946년 세워져 수십년간 주민들이 가족처럼 지내온 이 키부츠에선 주민 1100명 중 120명이 하마스에 살해당했다. 목숨을 건진 주민들은 대부분 이스라엘 북동부 사해(死海) 지역으로 피란했다. 남기로 한 주민은 100명 남짓이다. 농사일을 끝내고 모인 노인들의 대화 소리, 이곳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찼던 마을은 폐허로 버려졌다. 남편·자녀와 함께 비에리에서 30년 이상 살았다는 주민 닐리 시나이(72)씨는 “8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믿을 수가 없다. 이곳은 그저 평화로운 사람들이 살아가는 작은 공동체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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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찾아간 이스라엘 남부 비에리 키부츠(집단농장)에서 한 주택이 불에 타 뼈대만 남은 채 전소되어 있다. 지난해 10월 하마스의 공격으로 파괴된 뒤 이 같은 모습으로 남아있다. /김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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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가자지구 국경 가까이에 접근하자 통째로 불타고 기관총으로 난사당한 집들이 오솔길 옆에 늘어서 있었다. 뼈대만 남은 한 주택 안에 들어서니 모든 살림살이가 부서진 채로 먼지와 함께 나뒹굴고 있었다. 집 한쪽에 마련된 방공호는 하마스가 문을 따려다가 실패하자 불을 질러 천장·벽지·바닥이 모두 까맣게 녹아내린 채였다. 벽이 그을리고 문짝이 뜯겨나간 부엌에 놓인 썩어가는 양파와 마늘만이 이곳에 사람이 살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닐리씨는 하마스가 침투해온 날을 “살아 있는 지옥이었다”라고 묘사했다. 오전 6시 30분, 사이렌 소리에 온 마을이 잠에서 깼다. 이윽고 마을 단체 대화방에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을 받고 있다’는 메시지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가자지구) 국경과는 거리가 먼 편인 곳에 사는 그는 “무슨 상황인지 처음엔 실감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때 국경 가까이 살던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테러리스트가 집 바깥에 있다”는 딸의 절박한 목소리를 들은 남편은 말릴 새도 없이 총을 챙겨 차를 몰고 딸의 집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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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이스라엘 남부 비에리 키부츠에서 만난 주민 닐리 시나이(72)씨. 이곳에서 30년 이상 거주했다는 그는 10월 7일 하마스 습격 당시 남편을 잃었다. /김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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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 지붕에서 하마스와 대치하던 남편은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되지만, 여전히 유해를 찾지 못했다. 겨우 목숨을 건진 딸과 손주들은 마을을 떠났다. 닐리씨는 “하마스는 가장 잔인하고 원시적인 방식으로 주민을 살해했다. 칼로 찌르고 망치로 때리고 한 살짜리 아기의 머리에도 총을 쐈다”고 했다. 남편 이야기를 할 때도 덤덤하던 그는 희생당한 아이들 이야기에 눈물을 쏟았다. “우리는 여전히 지옥(같은 기억)에 살고 있습니다.”

곧이어 찾은 레임(Re’im) 음악 축제 현장은 거대한 공동묘지 같았다. 축제가 열리던 숲속 공터엔 희생자들의 사진과 이름 등이 적힌 팻말이 수백개 박혀 있었다. 지난해 10월 7일 이곳에선 수천명이 참석한 ‘수퍼노바 페스티벌’이 열리는 중이었다. 오전 6시 30분 패러글라이더를 탄 하마스 대원들이 머리 위로 날아왔고, 곧이어 기관총이 장착된 픽업트럭과 오토바이 등을 탄 이들이 축제 참가자들에게 총탄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만 364명이 사망하고 인질 40여 명이 가자지구로 끌려갔다. 이 축제에 참여했다가 반(反)나체 상태로 하마스 대원에게 납치됐던 이스라엘계 독일 여성 샤니 루크(22)의 시신이 지난달 가자지구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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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하마스 공격으로 346명이 숨지고 40여 명이 납치됐던 레임 음악축제 현장을 17일 찾았을 때 희생자들의 사진이 담긴 팻말과 수백 개의 이스라엘 국기와 마주했다. 가장 앞쪽 사진의 주인공은 공습이 시작되자 하마스 대원들을 피해 인근 방공호로 달아났다가 살해된 당시 스물일곱 살의 여성 샤니 베나미. /김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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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희생자 대다수는 20대 초중반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현장에 있던 추모객 등은 팻말 속 앳된 얼굴들을 바라보며 얼굴을 감싸쥐고 울거나 희생자 사진에 하트 모양 스티커 등을 붙이고 있었다. 로뎀(35)씨는 “처음 방문이 아닌데도 올 때마다 마음이 무너진다. 모두가 너무 어린 나이에 희생당했다”고 했다. 추모를 위해 미국 뉴욕에서 왔다는 로지타(60)씨는 “8개월이 지났지만 그날의 비극은 현재 진행형”이라며 “이곳에서 일어난 일이 전 세계 어느 국가에서나 일어날 수 있다. 세계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라고 했다.

이스라엘은 이 ‘지옥’을 만든 하마스에 복수하고 인질들을 구출하겠다며 지난해 10월 이후 가자지구를 공격 중이다. 가자지구에서 3만5000명이 넘는 민간인이 사망했다고 알려지며 국제사회의 비난에 직면한 상황이지만 이스라엘은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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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아비브=김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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