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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0 (일)

[카페 2030] 돈 벌러 한국 온 캄보디아 치대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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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입국장에 외국인 근로자들이 입국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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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리튬전지 공장 화재의 희생자 대부분은 이주 노동자였다. 이번 사고를 보면서 10년 전 만난 캄보디아 청년이 떠올랐다. 이주노동자들에게 한글과 우리말을 알려주는 일을 하며 알게 됐는데, 시키지 않아도 배운 낱말을 공책에 빼곡히 써오곤 했었다. 자국의 유명 대학 치대생이었던 그는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고 했다. 다니던 페인트 공장에서 일주일에 2번 이상은 꼭 야근을 했다. 돈을 더 벌려면 말을 잘 알아들어야 한다며 주말에 쉬지 않고 공부하러 오기도 했다. “꿈이 뭐냐” 물었더니 아프지 않고 아내와 함께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라고 했다.

외국인 사망 사건을 접할 때마다 연락하는 장례지도학과의 한 교수는 이번 사건을 두고 “무력하다”고 했다. 그는 외국인 사망자 시신을 비행기에 태울 수 있게 방부 처리해 송환하는 일을 해오고 있다. 신원이 확인돼야 가족과 연락해 일을 진행하는데, 화재로 시신이 심하게 훼손된 외국인들은 신원 확인도 쉽게 되지 않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외국인들이 평소 사용하던 칫솔 등 생활용품에서 채취한 DNA의 감정을 통해 겨우 신원을 확인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혐오는 계속해서 쏟아진다. 이들이 내국인의 일자리를 뺏고 있다는 논리다. 이들의 국적을 거론하며 손가락질하기도 했다. 사고 직후 정부 탓 하던 민노총도 다르지 않다.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정부 대책은 전달체계도 부실한 안전교육 교재 개발이 전부였다”고 비판했지만, 이들은 이달 초만 해도 서울 종로구의 한 도로에 “세금으로 짓는 건물은 외국인이 아닌 국민이 일할 수 있게 합시다”라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걸었다.

84만3000명. 이 외국인 노동자 수는 국내 전체 취업자의 3%에 해당한다. 이들이 진짜 한국인들의 일자리를 뺏고 있을까.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외국인 노동자 10명 중 7명은 30명 미만의 근로자가 있는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의 절반 정도는 한 달에 200만~300만원 수준의 월급을 받는다. 하지만 제조업계는 내국인이고 외국인이고 할 것 없이 해마다 일할 사람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2022년 기준 제조업체들이 인력 공고를 냈지만 미충원 인원은 외국인이 7000명, 한국인이 5만1000명이었다. 한국인이 기피하는 직종을 외국인들이 겨우 채우고 있다는 의미다.

올해는 국내 노동자들이 중동으로 가서 건설 공사를 하기 시작했던 1974년으로부터 50년째 되는 해다. 50년 전 건설 노동자들이 중동행 비행기에 올라서며 했던 생각과 현재 국내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생각이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다. 10여 년 전 한국에서 꼬박 1년을 지내다 돌아간 캄보디아 청년의 안부는 간간이 페이스북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아들과 딸 곁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가족과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꿈을 이뤘구나 느껴지기도 한다. 이번 희생자 한 명 한 명도 그런 꿈을 가졌을 것이다. 안타깝게 생을 뺏긴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신지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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