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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돈 인출 심부름 해주면 건당 10만원” 용돈벌이 하려다 감옥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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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법률사무소

보이스피싱 범죄 인출책 역할

‘고수익 알바’ ‘대출 보장’으로 광고

모르고 했어도 ‘말단 조직원’ 간주

사기방조 혐의 등 유죄로 처벌

실형 받거나 수천만원 물어낼 수도

인출책 1년8개월형…총책 11년5개월형

작년 피해액 4400억, 4만8000명 당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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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직인 박아무개(33)씨는 지난 3월 ‘최빛나’씨라는 사람에게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체크카드를 줄 테니 카드에 입금된 돈을 인출해 알려주는 계좌로 무통장 송금하면 건당 10만원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박씨는 한달 남짓 동안 최씨가 준 체크카드에서 7차례에 걸쳐 1997만원을 인출해 요구한 계좌로 송금했다. 단순한 인출-입금 작업이었지만, 박씨는 이로 인해 지난달 대구지법 서부지원에서 징역 1년2개월을 선고받았다. 알고 보니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입금한 돈을 인출해 전달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법원은 사기방조와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며 “이런 범행은 전체 조직원을 검거하기 어려운 구조적 특성이 있어 범행 일부에만 가담한 하위 조직원이더라도 엄중한 처벌을 통해 근절할 필요가 크다”고 판단했다.

일흔이 넘은 황아무개(72)씨는 ○○은행 상담직원이라고 밝힌 사람한테 “당신 계좌에 입금된 돈을 인출해 직원에게 전달해주면 실적을 쌓아 대출해주겠다”는 말을 들었다. 황씨는 자신의 계좌에 입금된 돈 2900만원을 인출해 보이스피싱 조직원에게 건넸다. 마찬가지로 사기방조와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황씨는 지난해 6월 대법원 3부(주심 조희대 대법관)에서 징역 6개월이 확정됐다.

보이스피싱 범죄에서 단순히 돈을 인출하거나 전달했다가 실형을 선고받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공범이 아니라고 부인해도 무의식중에 보이스피싱 범행 가능성을 인식했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범행이 반복적이고 3명 이상이 활동한 조직 사건의 경우 ‘범죄단체 조직·가입 활동죄’를 적용해 가중 처벌된다. 진의와 무관하게 보이스피싱 말단 조직원으로 간주돼 처벌을 받는 셈이다. 대검찰청 자료를 보면, 조직적인 보이스피싱 사건에서 인출이나 대출 상담, 대포통장 모집 등을 맡은 단순 가담자 384명의 69%인 265명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본인 통장을 빌려준 채 인출책으로 활동하면 피해 금액을 배상해야 할 수도 있다. 지난해 11월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보이스피싱 조직에 통장을 빌려주고 인출해 전달하는 일을 한 지아무개(33)씨 등에게 보이스피싱 피해액의 80%인 1600여만원을 갚으라고 판결했다. 지씨는 “소득세 누진을 피하기 위해 그런다. 물품 판매대금을 개인 계좌로 입금받아 회사에 전달해주면, 수고비로 200만원을 주겠다”는 말을 듣고, 본인 계좌로 돈을 받은 뒤 인출해 건넸다가 거액을 물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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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검찰은 보이스피싱이 사회문제로 떠오르자 2016년 10월 ‘보이스피싱 사건 처리 기준’을 마련해 대응을 강화했다. 조직성이 드러난 범죄의 경우 범행을 주도한 총책이나 콜센터 관리자 등 중간 가담자뿐 아니라 인출자나 통장양도자 등 공범도 구속수사를 진행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인출책이나 운반책 같은 단순 가담자에게는 보통 징역 5년이 구형되는데, 이들의 1심 평균 형량은 징역 1년8개월에 이른다. 총책은 1심에서 평균 징역 11년5개월을, 중간관리책은 평균 4년1개월을 선고받았다.

대검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조직이 전부 드러나려면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가 폭넓게 이뤄져야 한다. 이 때문에 실제 조직범죄로 처벌받는 사례는 전체 보이스피싱 범죄의 극히 일부”라면서도 “단순히 보이스피싱 금액을 인출해준 행위만으로도 실형을 선고받을 수 있으니 ‘대출 보장’ ‘고수익 보장 아르바이트’ 등 광고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4440억원, 피해자는 4만8743명으로 전년(2431억원, 3만919명)보다 각각 82.7%, 57.6% 늘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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