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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절 가수라 하는 것도 부끄러워요”…순도 1000% 인디가수 천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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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앨범 ‘김일성이 죽던 해’ 호평 일색

호기심 자극하는 제목 심상찮아도

알맹이는 아름다운 인디 포크와 팝

“1994년 씁쓸한 추억 노래로 담아

로커니 포크 가수니 규정짓지 않아

평단 호평은 단편선 프로듀싱 덕”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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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이 죽던 해>는 싱어송라이터 천용성의 첫 앨범 제목이다. 뭐지? 혼란스러운 시대상이나 정치적 이념을 표현한 음악인가? 살짝 긴장한 상태로 음악 재생 버튼을 누르는 순간, 별의별 생각은 싹 날아가버린다. 거기엔 그저 아름다운 팝이 있을 뿐이다. 개인의 내밀한 정서를 담은, 케이팝이 있기 전 1980~90년대 가요를 닮은 노래들이다.

“김일성이 죽던 해인 1994년 저는 초등학교 1학년이었어요. 사실 기억은 전혀 안 나요.” 최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천용성이 말했다. 그럼 왜 이런 제목을? “한살 많은 친구와 티브이를 보는데 김일성 사망 당시 얘기가 나왔어요. ‘저때 기억나? 사람들이 막 생필품 사재기하고 난리도 아니었어. 근데 그때 나에겐 이런 일이 있었거든. 뭐냐면 말이지….’ 그 친구 얘기를 듣고 노래를 만들었죠.” ‘김일성이 죽던 해’는 실은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생일선물로 줄 인형을 샀다가 주지 못한 씁쓸한 추억을 담은 노래다. 이를 앨범 제목으로까지 삼은 건 순전히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였단다.

다른 노래들도 마찬가지다. 사랑하고 이별하고 그리워하고 고민하던 개인적 경험담을 녹여낸 노래가 대부분이다. ‘순한글’ ‘난 이해할 수 없었네’ ‘전역을 앞두고’ 등은 내밀한 이야기를 꾹꾹 눌러쓴 일기장과도 같다. 책에서 영감을 얻은 노래도 있다. 윤대녕 작가의 소설과 같은 제목의 타이틀곡 ‘대설주의보’, 박래군 인권운동가의 책 <아! 대추리>를 읽고 만든 ‘나무’가 그렇다.

고등학교 스쿨밴드 기타리스트로 음악을 시작한 천용성은 2007년 대학가요제에 나가기 위해 밴드를 꾸리고 처음 곡을 썼다. 예선에서 탈락했지만 그때 마련한 장비로 작곡을 계속 했다. 혼자 하다 보니 록에서 팝으로 음악 성향이 바뀌었다. 군 제대 뒤 그는 “연락할 수 있는 유일한 음악가”인 싱어송라이터 단편선에게 데모곡을 보냈다. 천용성을 만난 단편선은 “볼빨간사춘기처럼 되고 싶으냐? 내게 원하는 게 뭐냐?”고 묻더니 “음악은 좋다”며 프로듀서를 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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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에는 ‘순도 1000% 퓨어 인디 포크’라는 홍보 글귀가 무색하게 다채로운 노래들이 담겼다. 조동익·이병우가 결성한 전설의 포크 듀오 어떤날이나 동물원 같은 노래가 있는가 하면, 윤상의 일렉트로닉·신스팝을 닮은 노래도 있다. 어떤 곡에선 실험적인 현대음악의 자취마저 느껴진다. 곽푸른하늘, 도마, 비단종 등 다른 가수 목소리를 빌린 곡도 있다.

“저는 스스로를 로커니 포크 가수니 규정하지 않아요. ‘순도 1000% 퓨어 인디 포크’는 드립일 뿐이죠. 심지어 가수로 규정하는 것조차 부끄러워요. 노래도 잘 못하고, 남들은 5분 만에 곡을 쓰기도 한다는데 저는 되게 힘들게 만들거든요.”

당사자는 쑥스러워해도 평단 반응은 호평 일색이다. 그는 “단편선의 프로듀싱 덕”이라고 공을 돌렸다.

앨범 표지는 엄마와 아기 사진이다. 천용성의 근래 사진들을 본 디자이너는 머리를 싸매더니 “차라리 어릴 때 사진으로 가자”며 1988년 돌잔치 사진을 골랐다. 어머니는 표지 보고 뭐라고 하시더냐고 물었다. “제가 앨범 낸 것도 아직 모르세요. 인터넷도 잘 안 하시거든요. 요즘 저 대학원 논문 쓰는 줄 아실 텐데….” 앨범이 너무 떠도 곤란해질지 모르겠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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