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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6 (일)

[발자취] '영구와 땡칠이' 등 100편 찍고 한국 B급 영화의 전설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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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남 감독 암투병 중 별세

조선일보

남기남(사진 왼쪽) 감독과 대표작 ‘영구와 땡칠이’.


'영구와 땡칠이' '슈퍼맨 일지매' 등 B급 코미디 영화와 한국형 가족 영화 시리즈를 만들어 온 남기남(77) 감독이 24일 오후 6시쯤 별세했다. 당뇨 합병증을 앓던 남 감독은 3개월 전 암 진단을 받고 서울 순천향대병원에 입원해 투병 생활을 하다 이날 오후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나 서라벌예술대(현 중앙대)를 졸업했고, 1972년 김지미·태현실 주연 '내 딸아 울지 마라'를 연출하며 데뷔했다. 3대에 걸친 기생 집안의 우여곡절을 그린 작품으로, 남 감독은 이 영화를 놓고 "내 진짜 정체성을 보여주는 건 이 작품"이라고 했다.

초기에는 '불타는 정무문'(1977) '불타는 소림사'(1978) 같은 B급 액션 영화를 주로 찍었다. 1989년 개그맨 심형래의 애드리브와 권선징악이 뚜렷한 한국형 서사를 결합한 '영구와 땡칠이'를 내놓으며 가족·어린이 시리즈로 방향을 틀었다. '영구와 땡칠이'는 당시 여름 극장가를 강타했다.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당시 180만명까지 관객을 모았다고 추산된다. 4편까지 후속작이 나왔고 영화에 출연한 심형래·김학래·박승대 등은 당대 스타가 됐다.

그는 '빨리 찍기'와 '몰아 찍기'의 대가이기도 했다. "사흘이면 영화 한 편을 만든다"고 할 정도였다. 촬영 현장에서 필름이 조금밖에 남지 않았다는 스태프 말에 "그럼 찍지, 남기남?"이라고 농담한 일화는 유명하다. 스스로도 "'뭘 남기남'의 남기남입니다"라고 종종 인사했다고 한다. 기억력이 비상해 출연 배우들의 모든 대사를 외우는가 하면, 영화 콘티 전체를 머릿속에 넣고 여러 장면을 동시에 찍었다고 한다. 이 덕에 40년간 100편이 넘는 영화를 완성했고, 할리우드 B급 영화감독에 빗댄 '한국의 에드 우드' 같은 별명을 얻었다.

1990년대 이후 연이은 흥행 실패로 수십억원을 잃고 나서도 연출을 계속했다. '개그콘서트' 멤버들이 출연한 '갈갈이 패밀리와 드라큐라'(2003) '동자 대소동'(2010) 등을 내놨다. 2009년 제47회 영화의 날 기념식에서 공로영화인상을 받기도 했다. 남 감독은 당시 "영화 인생 50년에 단상에 올라와서 상 받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나는 지금도 아이들을 위한 영화를 찍고 있다"고 했다. 유족은 부인과 아들, 손자 등이 있다. 빈소는 순천향대서울병원, 발인은 26일 12시, (02) 792-1643

[황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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