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9 (일)

"인생의 쓴맛 단맛 다 보고나니 재즈가 더 맛있네요"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재즈 만화가·음악평론가 남무성, 16년만에 새 책 '재즈라이프' 내

2003년 삼십 대 중반이던 음악평론가 남무성(51)은 여덟 평 남짓한 골방에 혼자 틀어박혀 있었다. 국내 첫 재즈 전문지 '뭉크뭉크'를 만들었고 재즈 시상식까지 주최했지만 자신이 운영하던 잡지사와 음반 제작사를 모두 동업자에게 넘긴 뒤였다. 휴대전화 전원도 끄고 두문불출하던 그는 어느 날 종이 뭉치 앞에 펜을 들고 앉았다. 그러고는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빈털터리가 되니까 제일 좋아하는, 그리고 잘하는 일을 해보자 싶었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수도 없이 공책에 끄적거렸던 게 만화지만 이제 아예 겁도 없이 '프로'로 나섰던 것. 그렇게 태어난 책이 20만부 이상 팔린 '재즈잇업(JAZZ IT UP)'이다. 재즈 입문서로 불리는 이 만화책은 일본과 대만에 수출됐고, 2015년 절판 이후 정가의 2~3배 가격에 중고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조선일보

음악에 관한 만화만 그리는 음악평론가 남무성이 16년 만에 만화 '재즈 라이프'로 돌아왔다. /고운호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는 뮤지션은 아니지만 국내에서 재즈 대중화를 위해 힘써온 인물로 통한다. 한때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운영했던 재즈바는 재즈 뮤지션들의 사랑방과 같았다. '윈터플레이'의 트럼피터 이주한, 블루스 기타리스트 최우준, 색소포니스트 이정식, 노르웨이 재즈가수 잉거 마리 같은 재즈 뮤지션들이 찾았다. 운 좋으면 '빛과 소금'의 장기호, 재즈 디바 웅산이 노래 부르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가 16년 만에 다시 재즈 만화를 들고 나타났다. 생활 속 에피소드와 함께 국내외 재즈 뮤지션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명곡들을 소개한 작품 '재즈라이프(JAZZ LIFE)'. 첫 책이 재즈 입문서였다면, 이번엔 '재즈 원포인트 레슨서'를 낸 셈이다. 그는 "30년간 재즈를 들어온 내가 보장하는, 정말 좋은 재즈 음악들"이라고 했다. 독자들을 손쉽게 음악 세계로 끌고 들어가는 그 특유의 스토리텔링은 이 책의 큰 장점이다. 예를 들어, '달달하고' 쫄깃한 회 한 점에 소주를 걸치며 재즈 피아니스트 오스카 피터슨을 떠올리고, 영화 '라라랜드'를 보며 1958년 영화 '사형대의 엘리베이터'에 삽입된 고전 재즈곡들을 불러내는 식이다. 그는 "재즈는 음반 모으는 재미가 쏠쏠한데 입문자들은 어떤 앨범을 사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면서 "유튜브 같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수록곡을 직접 찾아 들으면서 읽어보면 좋을 것"이라고 했다.

그가 소장한 재즈 앨범은 2만여장이다. "수록곡 전체를 기억한다고는 말 못하지만 듣긴 다 들었다"고 했다. 수많은 재즈 뮤지션의 표정, 말투를 실제와 비슷하게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었던 것도 이렇게 모은 앨범들 덕분이다. 그는 "LP는 CD와 달리 얼굴이 대문짝만 하게 나와 있어서 앨범을 들으며 표지에 있는 뮤지션 얼굴을 자세히 보게 된다"며 "한 뮤지션을 깊게 파고들면 그 사람의 음악만으로도 기분이 어떤지, 표정이 어떤지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첫 만화의 성공 이후, 록 음악을 다룬 '페인트 잇 록(PAINT IT ROCK)', 장기호와 함께 만든 '팝 잇 업(POP IT UP)' 등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재즈로 돌아왔다. 그는 "록이 청춘이라면, 재즈는 인생"이라며 "이제 겨우 쉰 넘었지만 인생의 쓴맛, 단맛 보고 나니 재즈의 매력을 더 알게 되더라"고 했다. 대학 1학년 때 LP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시작한 재즈를 30년 넘게 들어온 애호가의 재즈 예찬이었다.

[김수경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