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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6 (일)

“개인 유전체 정보, 차세대 정밀 휴먼케어 사회의 핵심” [나의 삶 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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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체 연구 분야 세계적 권위자 이민섭 박사 / 美유학 과정 유전자 증폭기술 접해 / 2013년 한미 합작회사 EDGC 설립 / 유전체 분석 정밀치료서비스 제공 / 한국 게놈연구 분야 후발주자 불구 / 글로벌 경쟁력 키워 기술 격차 좁혀 / 맞춤형 진료·처방·건강관리 기대 / 2003년 국내 광우병 사태 발생 당시 / 美 발병한 소 캐나다서 유입 밝혀내 / 국가적 위기 해결 공헌한 기억 생생 / 유전체 연구분야 다양한 학문과 연결 / IT 등 융합 휴먼테크산업 발전 계기 / 기술인프라 기반 정밀의학 힘 쏟아야

세계일보

온화한 성품의 이민섭 박사는 “한국이 가장 특화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산업 분야가 바로 개인 유전체 연구 분야”라면서 무궁무진한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소개했다. 하상윤 기자


“2026년쯤이면 10억명의 인류가 개인 유전체 정보와 데이터를 일상생활에 활용하는 신인류 시대가 열립니다. 개인 유전체 정보는 새로운 ‘디지털 나(Digital Me)’입니다. ‘디지털 나’는 차세대 정밀 휴먼 케어(Precision Human Care)의 핵심이지요.”

평생 인간 유전체 연구에 몰두해 온 이민섭(66) EDGC 대표의 말이다. 이 대표는 인천 송도 신도시와 미국 시애틀에 연구실과 회사를 두고 있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면서 미래 개인 유전체 정보 시대를 준비하고 있는 이 대표는 세계 유전자 연구 분야에서 손꼽히는 인물이다.

2003년 국내에서 광우병 사태로 미국산 쇠고기 불매운동이 번졌을 무렵, 이 대표는 미국에서 광우병 소의 유입 경로를 밝혀내 미 농무부에 크게 공헌했다. 이로 인해 그는 일약 미국 유전체 연구 분야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했다. 1년 중 절반은 미국에서 연구활동에 매진하는 이 대표를 인천 송도 연구실에서 만났다.

-유전체 연구에 천착하게 된 동기는.

“40여년 미국 유학에서 박사학위 취득 이후 PCR와 같은 유전자 증폭기술을 접하게 되었다. 2001년 당시엔 PCR 기술이 막 꽃피우던 시기였다. PCR로 인해 순수학문 분야였던 분자생물학이 유전공학 생명과학 등으로 분화되어 질병 진단과 임상에 활용되는 시기였다. 유전자 연구에서 엄청난 진전을 이뤄낸 시기였는데, 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며 새로운 유전자 분석법에 빠져들게 되었다.”

-PCR란 무엇인가.

“유전자(DNA) 증폭기술을 가리킨다. 유전자를 인공적으로 만들 수 있는 기술이다. 예전엔 생명체 안에 넣어서 유전자를 생성했는데, PCR 기술로 인해 유전자를 인공적으로 합성하고 이를 증폭시킬 수 있게 되었다. 유전자 연구가 학문의 영역에서 산업 영역으로 들어오게 된 계기가 PCR이다. 유전공학의 문이 비로소 열리는 계기였다.”

-사실상 게놈 연구가 막 꽃을 피우던 시기였다.

“맞는 말이다. 게놈 연구는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를 주도했던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발전되기 시작했다. 하버드 의대에서 박사후 과정을 마친 직후 미국 유전체 연구 기반 제약사인 ‘제네상스(Genaissance Phamaceuticals)’와 유전체 진단 개발사인 시쿼놈(Sequenom)사에 스카우트되었다. 게놈 기반 유전자 분석기술이 의료뿐 아니라 다양한 산업에 활용되는 것을 직접 경험하는 기회였다.”

-미국에서 유전체 정보 분석 회사를 직접 설립했다는데.

“2011년 차세대 유전체 분석기술(NGS)을 바탕으로 하는 ‘다이애그노믹스 (Diagnomics)’를 직접 창업하게 되었다. 2013년 한미 합작회사인 이원다이애그노믹스 게놈센터(EDGC)와 2015년 플랫폼 포털사업인 ‘마이지놈박스’(MyGenomeBox)를 설립했다. 그야말로 한국과 미국에서 유전체 해독, 분석 및 서비스를 할 수 있는 종합 유전체 회사 두 곳을 직접 운영했다.”

-우리나라 게놈 연구는 어떤 수준에 와 있는지.

“한국의 게놈연구는 미국 등에 비해 후발주자다. 하지만 한국 출신 연구자들이 해외에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면서 기술격차가 많이 좁혀졌다. 유전체 사업은 많은 정보와 기술을 함께 다루는 융합 연구 분야이다. 연구 두뇌가 많은 우리나라에서 차세대 핵심 주력산업으로 키울 수 있는 분야가 게놈 연구 분야이다.”

-세계적인 게놈 연구의 흐름은.

“세계적으로 게놈 기반 유전자 연구는 학문과 발견의 단계를 넘어 정밀의학에 적극 활용되는 시대에 들어섰다. 의료 분야 임상 적용은 물론 일상생활에 적용되는 소비자 유전체 시대(Consumer Genome Era)로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다. 유전체 분석은 7개월 주기로 관련 산업이 두 배씩 성장하고 있다. 그 속도는 앞으로 좀 둔화되겠지만 유전자에 기반한 맞춤형 진료나 처방, 그리고 건강관리에 핵심적인 정보를 줄 것이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방법은 정밀의료에 있다고 했다. 무슨 의미인가.

“최근 인간의 수명은 계속 늘어나 100세 기대수명 시대에 와 있다. 특히 한국은 고령화가 가장 빨리 진행되는 초장수 국가이다. 정밀의료란 개인에게 차별화된 질병 예방과 의료를 제공하는 의료혁신을 말한다. 병원의 획일적인 치료에서 벗어나야 한다. 종래 의료의 혁신이란 획일적인 질병의 치료에 집중된 나머지 실패한 측면이 있다. 건강 수명을 연장하려면 개인별 차별화된 예방이 절실하다. 맞춤형 정밀치료를 시행한다면 효과적인 의료와 더불어 의료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개인별 신체의 차이점을 정확하게 측정하고 예측할 수 있는 정보가 개인 유전체 정보이다. 개인 유전자 분석이 정밀의학의 핵심인 이유이다.”

세계일보

이민섭 이원다이애그노믹스 대표. 하상윤 기자


-개인의 유전자 정보에 맞춘 건강법을 소개한다면.

“나의 유전자는 내가 어떤 질병에 취약하고 잘 걸릴 수 있는지를 알고 있다. 내가 어떤 운동이나 식단을 짰을 때 나에게 가장 도움되는지, 특정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지 등을 알려주는 시대에 왔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다. 나의 유전자 지도가 말해주는 나를 제대로 파악하고 이해해야 한다. 나의 미래, 특히 노년에 올 수 있는 다양한 질병을 사전에 예방하고 지연시킬 수 있다. 개인 유전체 정보 시대의 이점이다.”

-미국 유학이나 연구과정에서 느낀 보람을 소개한다면.

“박사학위 직후 미국 코네티컷 소재 제네상스(Genaissance) 제약사에서 근무했던 2003년 당시였다. 미국 농무부과 함께 광우병 소의 출처를 유전자 분석으로 규명하는 작업을 맡게 되었다. 제네상스 유전자 검사실장이었던 나를 포함한 연구원들이 유전자 분석을 이용해 원인을 추적했다. 그 결과 광우병 발병 소가 캐나다 앨버타의 한 목장에서 수입된 것을 밝혀냈다. 캐나다에서도 같은 검사를 진행했는데 우리보다 나흘 뒤에 동일한 검사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미국 정부로서는 큰 위기였다.

“미국에서 최초로 발생한 광우병 케이스였기에 미국의 주력산업인 축산물 수출이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되었다. 광우병 소가 미국산이 아닌 외국에서 수입한 송아지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 당시 한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에서 미국 축산물 수입을 금지했다. 나를 비롯한 20여명의 연구자는 의심가는 캐나다 여러 목장의 종우(種牛) 정액 등 검사에 필요한 자료를 농무부로부터 넘겨받아 나흘 만에 어느 목장 출생인지를 밝혀냈다. 미국의 국가적 위기를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기억이 생생하다.”

-국내 과학이나 의학 분야에 대한 견해는.

“개인 유전체 연구 분야는 생명공학, 의학 분야뿐만 아니라 다양한 학문과 연결되어 있다. IT와 컴퓨터산업이 지난 20여년간 전공 분야에 상관없이 모든 산업의 근간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개인 유전체 분야도 이렇게 될 것이다. 미래 휴먼케어 사회의 주력이 될 수 있도록 정부나 교육기관은 준비해야 할 것이다. BT와 IT가 융합된 차세대 휴먼테크 산업으로 발전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시기를 놓치지 말아야 뒤처지지 않는다.”

-국내 연구 분야의 취약점이나 개선할 점은.

“우리의 우수한 인력과 시스템은 글로벌 경쟁력을 키워 왔다. 하지만 종래 한국형 의료시스템은 일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한국은 전 세계 여러 국가 중 정밀의학을 가장 효과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인프라와 다양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다. 개인 유전체 정보 기반 정밀의학에 더욱 힘을 쏟는 시스템이 되어야 한다. K-Health가 글로벌 트렌드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새로운 기술과 사업 기회에 대해 좀 더 적극적이고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고와 구조를 가져야 한다. 한국의 우수한 인력이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바람직한 개선 방향을 소개한다면.

“대한민국은 우수한 인적 자원과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 그리고 첨단 IT 인프라와 정보기술 등 많은 선제적 환경을 갖고 있다. 개인 유전체 분야는 한국이 가장 큰 경쟁력을 가지고 세계를 리드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분야가 될 것이다. 과도한 국내 경쟁과 한국형 사업모델, 규제 탓을 하기보다는 해외시장을 확대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일부 집단이나 개인들의 이기적인 입장을 내세우기보다는 좀 더 거시적인 안목을 가져야 한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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