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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6 (일)

주방 심부름하던 열네 살 소년… 홍콩 '퓨전의 제왕'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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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싱 리]

홍콩 最高 중식당 '모트32' 셰프

中 조리법에 서양 식재료 더한 랍스터 누들·멜론 딤섬 등 화제

온종일 음식을 배달하고 바닥을 닦았다. 14세 소년은 그래도 싱글벙글했다. 물과 기름이 끓고 연기와 불꽃이 치솟는 주방에 매료됐다. 소음과 열기, 땀내음과 음식 냄새가 뒤엉키는 순간조차 황홀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주방 허드렛일을 했다. 누구보다 일찍 나와 가게를 쓸고, 퇴근 시간이 지나고도 자청해서 일했다. 6개월쯤 지났을까, 그를 눈여겨보던 주방장이 물었다. "주방 일 한번 해볼래?" '모트32' 총괄셰프 맨싱 리(52)는 이때를 지금도 또렷이 기억했다. "신이 나서 '네!'라고 아주 크게 대답했다. 뭐든 열심히 하면 남들이 봐준다는 걸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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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의 맛을 교직(交織)하는 건 맨싱 리의 장기다. 최근 서울 레스케이프 호텔을 찾은 그가 튀긴 랍스터와 계란, 고수를 함께 넣고 만든 서양식 맑은 수프(bouillon)를 들어 보였다. 맨싱 리는 "색다른 음식을 만들 때도 기본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고운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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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트32(Mott32)'는 현재 홍콩에서 가장 인기 있는 모던 차이니스 레스토랑으로 꼽힌다. 1851년 미국 뉴욕 모트 스트리트32번가에 들어섰던 중국 식료품점에서 이름을 따왔다. 현재 캐나다 밴쿠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분점이 있고 곧 싱가포르와 방콕에도 들어선다. 우리나라 레스케이프 호텔의 중식당 '팔레드 신'도 맨싱 리 셰프의 자문을 거쳐 완성됐다. 중국의 광둥·쓰촨·베이징식을 넘나드는 조리법을 서양 식재료에 적용해 새로운 맛을 뽑아내는 것이 특징. 중국식 볶음국수에 캐나디안 랍스터를 올리고, 북경 오리에 캐비아를 올리는 식이다. 멜론을 넣은 딤섬, 이베리코 등심을 중국 정통식으로 구운 BBQ 같은 요리가 그렇게 나왔다. 지난달 말 서울에서 만난 맨싱 리는 그러나 고지식한 사람이었다. 그는 "좋은 음식은 기본에 충실한 마음, 게으름 부리지 않는 태도, 남의 의견을 듣는 열린 귀에서 나온다"고 했다.

◇"남들 다 하는 음식을 다르게"

주방에 들어갔지만 웍(wok·우묵한 무쇠냄비)을 잡기까진 5년이 더 걸렸다. 부엌은 군대이고 지옥이었다. 채소 다듬는 일만 온종일 했다. 안 되겠다 싶어 일본의 한 광둥식 중식당으로 건너가 3개월쯤 일했다. 그곳에서도 맨싱은 막내였다. 추운 겨울에도 새벽같이 일어나 가게를 쓸었고, 매일 밤늦게까지 남아 요리를 홀로 연습했다. 홍콩에 돌아와 대기업이 운영하는 음식점에 취직하고, 2012년엔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중식당 '만와'의 총괄셰프가 되어 미쉐린 별 2개를 따고 나서도 그의 이런 습관은 바뀌질 않았다. 맨싱 리는 "반복과 성실만이 비결이었다"고 했다. "가령 관자를 볶을 땐 몇 초까지만 볶아야 물이 안 생기면서도 보드랍게 익는지를 알아야 한다. 누가 가르쳐준다고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몸이 깨달아야 한다. 남다른 요리를 하는 것보다 어려운 건 남들 다 하는 음식을 '다르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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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중식당 '모트32'의 대표 요리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세 번 구워내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완성한 와규 비프 립 스테이크, '팔레드 신'의 갈라디너 메뉴였던 랍스터 집게발을 얹은 튀긴 면 요리, 농어의 일종인 바닷물고기 그루퍼와 다진 배추·고추를 넣은 딤섬. /고운호 기자·Mott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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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것들? 이젠 전 세계서 찾아온다"

'모트32'를 지휘하면서 맨싱 리는 낯설고도 친숙한 요리를 빚어 내는 데 힘을 쏟았다. 맨싱 리는 "북경 오리는 누구나 만들지만 우리가 만드는 북경 오리는 다르다"고 했다. "오리털을 기계로 뽑으면 몸에 상처나 멍이 생긴다. 그런 오리로 구워내면 껍질이 덜 매끈하다. '모트32'에선 이런 오리를 쓰지 않는다. 한 번 더 돌아보고 차이를 만드는 거다." 맨싱 리의 또 다른 장기인 생선찜도 비슷하다. 리 셰프는 "80~90%가량만 쪄내서 식탁에 올릴 때까지 내열로 더 익도록 한다. 손님 앞에 탁 내려놓는 순간 완벽하게 촉촉하고 보드라운 상태를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처음 주방에서 일할 땐 '셰프'란 말이 없었다. 다들 '주방것들(廚房佬)'이라고 했다. 이젠 우리 요리 비결을 알기 위해 전 세계에서 찾아온다. 그것만으로도 일한 보람이 있다."

[송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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