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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수도자들의 금기’ 아스파라거스, 아직도 스테이크 옆 장식으로만?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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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아스파라거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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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물, 숙주나물, 복숭아. 이 세 가지 채소·과일의 공통점은 바로 아스파라긴산이 다양 함유된 먹거리라는 거다. 아미노산의 일종인 아스파라긴산은 아스파라거스에서 처음 발견됐다. 아스파라긴산이 숙취에 좋고 스태미나를 증진한다는 사실 때문에 중세 유럽의 수도자들은 이 식재료를 멀리해야 했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 승려들이 오신채를 멀리하는 것과 비슷한 일인 것 같다.



아스파라거스는 아스파라긴산 외에도 중요한 영양성분을 많이 가지고 있는 채소다. 기형아 생성을 방지한다고 알려져 임신부들이 필수적으로 섭취해야 하는 엽산이 풍부하고 루틴도 많이 함유하고 있다. 특히 엽산의 보고로 알려진 셀러리보다 아스파라거스에 든 엽산의 함유량이 6배가 넘는다. 아스파라거스는 노폐물 배출의 일등공신으로 간 해독 전문 채소로도 유명하다. 덕분에 아스파라거스를 많이 먹으면 술이 빨리 깨고 피부가 좋아진다는 속설도 돈다. 식이섬유, 엽산, 루틴, 아스파라긴산…. 이 정도면 거의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종합영양제와도 같다.



한국은 아스파라거스를 키우기에 최적화된 기후를 가지고 있고 재배를 시작한 지도 오래됐다. 아스파라거스도 땅두릅과 비슷하게 땅에서 솟아나는 일종의 새순이며 요리법도 두릅과 별반 차이가 없다. 하지만 두릅은 나물 반찬의 모습으로 익숙한 데 비해 아스파라거스의 비주얼은 늘 스테이크 옆에 있는 서양식 느낌이기에 쉽게 접하지 못하는 고급 식재료로 자리 잡았다. 희소하다는 이미지 때문에 유통 과정에서 마진도 더 붙일 수 있었다. 실제로는 재배량도 많고 공급도 원활한 편인데 식탁 위 조연으로만 알려져 있던 안타까운 식재료였다가 코로나 시대 이후 국내 시장이 활발해지면서 수요가 많이 늘어난 케이스다. 좋은 건 다 일본으로 수출한다는 인식이 전반적으로 깔려있던 소비자들이 우리 땅에서 나는 좋은 작물에 지갑을 열기 시작하면서 아스파라거스의 내수시장도 점차 확대되고 있고 가격도 점차 합리적으로 돌아서고 있는 추세다. 2024년 5월 기준 강원도 화천에서 나는 아스파라거스 1㎏(30~40대)의 가격은 1만7000원 선이다.



아스파라거스는 그냥 나물처럼 먹으면 된다. 데치거나 볶아서 소금이나 간장으로 간을 하고 다진 마늘과 참기름에 버무리면 가장 맛있다. 통깨나 검은깨도 조금 뿌리고 들기름으로 마무리해도 좋다. 쌉싸름하지만 달고 고소한 것이 여느 봄나물처럼 친숙한 맛이어서 게눈 감추듯 사라지는 반찬이 된다.



아스파라거스를 돈가스처럼 밀가루·계란·빵가루 옷을 입혀 튀기면 이대로 훌륭한 일품요리가 된다. 소금 후추만 간단히 곁들여도 좋고 돈가스 소스와 노란 겨자를 약간 풀어 매콤 알싸한 맛을 더하면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맥주안주다. 겉이 바삭한 뜨거운 아스파라거스튀김! 중독될 수 있다고 미리 경고하고 싶은 맛이다.



아스파라거스는 특유의 단단하고 아삭한 식감 때문에 고기요리와 잘 어울린다. 장조림에 아스파라거스를 곁들이면 영양적으로도 좋고 질감도 좋다. 고기를 다 조리고 마지막 단계에서 아스파라거스를 손가락 두마디 길이로 잘라 넣고 2~3분 더 슬쩍 조려준다. 가볍게 간장 코팅된 아스파라거스의 쌉싸름한 맛이 달콤하고 부드러운 고기와 함께 최고의 조합을 만든다.



아스파라거스가 숙취에 좋다고 알려져 있으나 아무도 국을 끓이지 않는데 순전히 콩나물 때문이다. 더 싸고 양 많은 콩나물이 있긴 하지만 아스파라거스로도 맛있는 해장국이 가능하다. 생태·북어 등의 생선국에도 좋고 고기를 푹푹 고아서 부드럽게 만든 후 피를 부어 만드는 선지해장국에도 아스파라거스가 들어가면 최고의 시너지를 낸다. 숙취 해소에 좋은 아스파라긴산의 원조니까!



아스파라거스를 달인 간장물에 부어 숙성시킨 장아찌, 마늘·생강·고춧가루에 까나리액젓을 넣고 버무려 만드는 아스파라거스 김치, 아스파라거스를 슬쩍 데치거나 볶은 후 프로슈토나 베이컨을 돌돌 말아 먹는 요리, 아스파라거스를 넣은 김밥 등 다양한 요리로 응용 가능하다.



보관이 쉽지 않다고 알려졌지만 사실이 아니다. 차가운 공기에 약한 아스파라거스는 신문지나 종이타월에 몇겹 감싸서 냉장고 안 서랍 속에 보관하면 일주일 이상 두고 먹을 수 있다. 특히 대가리 쪽에 아스파라긴산이 많이 함유돼있는데 이곳이 먼저 물러지기 때문에 종이로 잘 감싸야 한다. 양이 너무 많아 1주일 안에 모두 먹을 수 없다면 끓는는 물에 15초만 데쳐 건진 후 얼음물에 담갔다 빼서 냉동실에 보관한다. 나중에 해동하지 않고 바로 볶거나 튀겨먹으면 감쪽같다.



이미 물러버린 아스파라거스가 있다면 생크림과 함께 푹 끓여낸 뒤 믹서에 갈아 수프를 만들어 먹거나 슬쩍 데친 뒤 토마토나 다른 과일과 같이 갈아 꿀을 넣고 주스로 마신다. 잊지 말자! 제철 아스파라거스는 아스파라긴산의 원조라는 걸!



요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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