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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3 (월)

카드 명세서를 보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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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신성진의 돈의 심리학(49)



중앙일보

최근 가장 뜨거운 이슈는 '일본의 경제 침략'입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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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의 눈과 귀를 집중시키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이슈는 ‘일본의 경제 침략’입니다. 친구들과 가벼운 얘기를 나누고 경조사 소식을 전하는 밴드에서 이와 관련한 ‘썰전’이 펼쳐졌습니다. 한 친구가 요즘 SNS에 돌고 있는 ‘아베야 고맙다~’로 시작하는 글을 공유했고, 이 글에 대해서 한 친구가 ‘이성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요지의 글로 반박을 하면서 오랜만에 친구들이랑 토론도 하고 격한 감정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반도체 산업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에 관해서 관심은 있지만 대부분 자세하게 알지 못한 상황이고, 직접 무언가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 우리 대부분은 ‘불매운동’에 대해 관심이 있습니다. 효과에 대해 궁금하고 어떻게 실천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인지 고민도 합니다.

정치집단이나 하나의 시민단체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국민이 SNS를 통해 소통하면서 진행하는 일본 상품 불매운동, 여행 안 가기 등을 보면서 참 자랑스럽기도 하고 일본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시민들의 자발적 저항’에 일본인들이 참 당황하고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 우쭐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물자와 용역을 이용하거나 소모하는 소비를 중단하고 특정 목적을 관철하기 위해 특정 상품의 구매를 거부하는 운동(두산백과)을 불매운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적용해보면, 일본의 문화를 경험하고 다양한 먹거리와 볼거리를 즐기는 소비를 중단하고 일본에 분노한 우리의 마음을 드러내고 일본 경제에 가장 약한 고리를 공격하기 위해 선택하는 것이 ‘일본에 가지 않겠습니다’라는 일본여행 불매운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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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불매운동이 한창인 가운데 지난 4일 일본행 여객선이 오가는 부산국제여객터미널에는 여행객이 없어 한산해진 모습입니다. [연합뉴스]



불매운동은 늘 불편하고 재미가 없습니다. 사고 싶은 것을 참아야 하고 가고 싶은 곳에 가지 말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효과가 없으면 곧 중단되고 맙니다. 하지만 이번 불매운동은 우리의 생각을 바꾸고 있어 그리 쉽게 끝날 것 같지 않고 불편하고 재미없는 운동이 아니라 ‘의미 있는 행동’, ‘함께하는 자각’으로 점점 더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불매운동에 동참하면서 우리는 ‘대일무역적자가 매우 큰 금액이고 지속해서 누적됐다’, ‘우리가 생각보다 많은 일본 제품을 사용하고 즐기고 있었다’, ‘일본은 삼국시대부터 지금까지 늘 우리나라를 침략하거나 정복하려고 해왔다’ 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제대로 깨닫게 되면서 결심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마트에 가서 맥주 파는 코너에 ‘일본 맥주는 팔지 않습니다’라고 쓰인 것을 보면서, 다양한 상품 판매대에서 일본제 상품들이 사라진 것을 보면서 ‘소비란 무엇일까?’, ‘무엇인가를 사고판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소비란 늘 우리의 생각과 가치관을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그런 점에 대해 구체적인 생각을 하든 안 하든 상관없이 우리는 늘 소비를 통해 우리를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집단적인 불매운동에 참여하든 하지 않든, 개인적으로 우리는 늘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대로 자신에게 익숙한 패턴을 갖고 소비하면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갑질기업’이나 도덕적인 문제가 있는 기업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떤 사람은 그 기업의 상품을 사지 않지만 어떤 사람은 상관없이 삽니다. 어떤 사람은 조금 비싸지만 공정무역커피를 사고 어떤 사람은 맛으로만 상품을 선택합니다. 어떤 사람은 ‘환경’을 생각하면서 물건을 사고 어떤 사람은 편리를 기준으로 물건을 삽니다. 어떤 사람은 명품을 사고 어떤 사람은 저렴한 제품을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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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이나 우유를 살 때는 브랜드에 대한 저의 기준이 있었지만, 맥주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맥주를 살 때도 저의 기준이 생긴 것 같습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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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들을 하다가 개인적으로 ‘나는 어떻게 해 온거지?’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라면을 살 때 맛에 상관없이 사는 브랜드와 사지 않는 브랜드가 있습니다. 우유를 살 때 사는 브랜드와 사지 않는 브랜드가 있습니다. 하지만 맥주를 살 때는 일본 맥주를 사지 않거나 어떤 맥주를 산다는 기준은 없었습니다. 이제 또 하나 기준이 생긴 것이죠. 저는 아마 앞으로 평생 일본 맥주를 마시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누구나 저와 똑같은 기준을 가지고 라면, 커피, 맥주를 사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각자 생각이 있음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번 일본 불매운동을 경험하면서 소비에 반영된 나의 심리, 나의 생각, 나의 가치관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생각하고 소비를 하면 내가 원하는 삶을 살게 되지만 생각 없이 소비하면 내 생각과 내 삶은 전혀 상관없는 것이 됩니다. 착한 소비, 또는 윤리적 소비와 관련된 몇 가지 테마를 가지고 정리를 해 보면 좀 더 쉽게 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윤리적 소비는 소비자가 상품이나 서비스 따위를 구매할 때 윤리적인 가치판단이나 의식적인 선택을 하는 것, 또는 윤리적으로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모습이 ’텀블러‘를 활용하는 환경을 고려하는 소비입니다. 매일 사용하는 엄청난 일회용 종이컵의 사용량을 줄이고 때로 가격도 할인받을 수 있는 소비 형태로 누구에게나 좋은 소비일 수 있습니다.

공정무역커피 사 먹기도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지요. 이 더위에 조금 더 걸어가야 하고 가격도 조금 더 비쌀 수 있지만 가능하면 공정무역커피를 사 먹는 모습도 윤리적 소비의 한 형태입니다. 그리고 최근에 지자체에서 장애인들이 운영하는 카페에 공간을 제공하고 있는데 조금 시간을 내어 이들이 내린 커피를 마시는 것도 착한 소비가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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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용 종이컵의 사용량을 줄이고 가격도 할인받는 텀블러 사용 역시 환경을 생각하는 윤리적 소비의 한 사례입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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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을 생각한다면 텀블러는 드는 노력이 자연스럽고, 착한 기업이 성공하는 사회를 꿈꾼다면 착한 기업의 제품을 소비하는 수고가 필요하겠지요. 아프리카 노동자들의 삶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스타벅스에 공정무역커피를 요구하는 소리에 동참하고 또 주위에 그런 커피점을 찾게 마련입니다. 소비와 생각을 연결시키지 않으면 사실 생각이나 가치관은 공허한 말에 불과합니다.

괴테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금 네가 만나는 사람, 네가 자주 가는 곳, 네가 읽는 책이 너를 말해준다.” 괴테의 말처럼 누구를 자주 만나 친하게 지내는지, 자주 가서 시간을 보내는 곳이 어딘지, 주로 어떤 책을 읽는지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태고 싶습니다. “네가 어디에 돈을 쓰는지가 너를 말해준다.”

돈을 어디에 쓰는지를 기록해 보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디에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는지, 내가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단순하게 양의 문제나 재테크나 자산관리의 문제에서 벗어나 소비를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나의 가치관과 나의 무의식에 자리 잡고 있는 다양한 생각과 심리들이 내 소비를 좌지우지하는데, 과연 그것들이 무엇인지, 혹시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지출명세들, 카드영수증들이 알려주는 나의 모습은 내가 원하는 삶인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한 친구가 밴드에 올렸던 글의 첫 부분이 생각납니다. 나를 그리고 우리를 생각하게 해 주어서 ’아베야, 고맙다~‘

신성진 한국재무심리센터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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