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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2 (일)

억만장자 성범죄자, 교도소서 극단적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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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통령들 친구’ 불린 엡스타인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 등 재판 중

보석 기각 뒤 독방서 극단적 선택

피해자들 “죗값 물을 기회 사라져”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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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들의 친구’라고 불릴 만큼 화려한 인적 네트워크를 자랑했던 억만장자 제프리 엡스타인(66)이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 재판 도중 교도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급작스런 그의 자살 소식에 그를 법정에 세우기 위해 수년간 싸워왔던 피해 여성들은 허탈감을 토로했다. 아울러 그의 자살을 막지 못한 교정 당국에 대한 비판도 고조되고 있다.

미성년자 성범죄 혐의로 뉴욕 맨해튼 메트로폴리탄 교정센터에 수감 중이던 엡스타인이 10일 오전 6시30분께 감방에서 목맨 채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곧 숨졌다고 <뉴욕 타임스>가 보도했다.

헤지펀드 매니저 출신 억만장자 엡스타인은 2002∼2005년 뉴욕과 플로리다에서 14살짜리 등을 포함해 20여명의 미성년자를 상대로 성매매를 한 혐의 등으로 지난달 6일 체포돼 기소됐다. 마사지를 해달라고 미성년자들을 맨해튼 센트럴파크 인근 초호화 맨션으로 불러들인 뒤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혐의다. 혐의가 유죄로 인정되면 최장 징역 45년을 선고받을 상황이었다. 그는 혐의를 부인하며 자신의 집에서 머무르며 재판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보석을 청구했지만 지난달 기각됐다.

그는 2008년에도 최소 36명의 미성년자에게 성행위를 강요한 혐의로 종신형을 받을 뻔한 적이 있다. 하지만 검사와의 감형 협상(플리바게닝)으로 성매매 등 일부 혐의만 인정해 13개월만 복역한 바 있다. 13개월 복역 기간 중에도 ‘근로석방’ 혜택을 받아 1주일에 6일간, 하루 12시간씩 감방에서 벗어나 자신의 사무실에서 지낼 수 있었다. 이번에 성매매 수사가 재개되면서, 2008년 당시 엡스타인이 자신의 부와 정·관계 다양한 인맥을 활용해 특혜를 받은 것이란 사회적 논란도 재점화됐다. 당시 감형 협상에 관여한 검사 중 한 명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알렉산더 어코스타 노동부 장관이다. 어코스타 장관은 ‘봐주기’ 논란 속에 엡스타인이 체포된 뒤 일주일 만에 사임했다.

엡스타인의 자살 소식이 전해지자, 그를 법정에 세우기 위해 수년간 싸워왔던 피해 여성들은 ‘죗값을 묻게 될 수 없다’며 분노와 허탈감을 쏟아냈다. 미성년자 시절 엡스타인에게 지속적으로 성적 착취를 당했다고 폭로한 버지니아 주프레는 <뉴욕 타임스> 인터뷰에서 “여기까지 매우 어렵게 왔는데, 그가 책임을 물을 기회를 앗아갔다”며 “그가 더는 다른 사람들을 해할 수 없게 됐다는 게 다행스럽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론 화가 난다”고 말했다. 엡스타인에게 16살 때 성폭행을 당했다는 미셸 리카타도 “내가 바랬던 건 그의 죽음이 아니라, 단지 그의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르길 바랬을 뿐”이라며 허탈해 했다.

이런 가운데, 재소자에 대한 교정 당국의 관리·감시 허술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고조되고 있다. 엡스타인이 지난달 보석 기각 이후 이미 한차례 극단적 선택으로 보이는 시도를 해 병원으로 이송되는 등 전조가 있었는데도, 제대로 관리를 못 했다는 비판이다. 엡스타인은 성범죄 혐의로 구속된 이후 극단적 선택 시도 가능성이 있는 재소자들에게 취해지는 ‘특별감시’ 대상에 올랐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지난달 29일 이 명단에서 제외됐으며 이후 교도소 내 특별동에서 독방 생활을 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메트로폴리탄 교정 센터 규정상 2명의 교도관들이 30분마다 모든 재소자를 점검하도록 돼 있는데, 엡스타인이 극단적 선택을 하던 밤에는 이 규정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로이터> 통신의 보도도 나오고 있다.

윌리엄 바 법무장관은 이에 법무부 감찰관에게 즉각적인 조사를 지시하는 한편, 미 연방수사국(FBI)도 별도의 조사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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