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계점 치닫는 ‘송환법’ 집회
10주째 계속되는 시위…민관 ‘악화일로’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지난달 15일 범죄인 인도 조례(송환법) 추진 보류 입장을 밝혔다(가운데 사진). 하지만 홍콩 시민들은 바로 이튿날 “마음은 이미 갈가리 찢어졌다” “악법을 철회하라”고 적힌 플래카드 등을 들고 완전 철회를 요구하는 도심 거리행진에 나섰다(위). 시위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지난달 30일 홍콩 경찰은 콰이청 경찰서 앞에서 시위대를 향해 고무탄 총을 겨누기도 했다. 홍콩 | EPA·AP·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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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인 인도 조례’(송환법) 반대로 촉발된 홍콩 시위 사태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시위는 홍콩 특별행정구 정부에 대한 반대가 중국을 향한 저항으로 번진 후 이제 중국과 미국·영국 등 서방세력의 국제갈등으로까지 확대됐다. 중국 당국은 홍콩 사태를 정권에 대한 도전인 ‘색깔혁명’의 일환으로 규정하고 중국 인민군 투입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일요일인 11일에도 홍콩 시내 곳곳에서 10주 연속 시위가 열렸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쯤부터 홍콩 코즈웨이베이의 빅토리아공원에서 수천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형 집회가 열렸다. 경찰은 빅토리아공원 집회를 허가하되 외부 행진은 불허했지만, 시위대는 경찰 경고에도 인근 거리를 점거한 채 행진을 벌였다. 카오룽반도 서북쪽 삼수이포에선 수천명 시위대가 도로를 점거했고, 경찰은 최루탄을 쏘면서 해산을 시도했다. 지난 9일 시작된 홍콩 국제공항 시위도 이날로 3일째 이어졌다. 홍콩 시위는 어떻게 시작됐고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점점 임계점으로 치닫게 됐는가.
■ 발단은 치정살인
대만서 여자친구 죽인 홍콩인
다시 보낼 방법 없어 처벌 못해
당국 ‘범죄인 인도법’ 강행에
시민들 “중국서 악용” 거리로
발단은 지난해 2월17일 발생한 살인사건이다. 홍콩인 찬퉁카이(陳同佳·20)가 대만 타이베이의 한 여관에서 함께 여행 중인 여자친구 판샤오잉(潘曉穎·20)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후 홍콩으로 달아났다. 판샤오잉이 ‘배 속에 있는 아이의 아빠는 옛 남자친구’라고 고백하자 격분해 목을 조른 것이다.
대만 경찰은 판샤오잉 부친의 신고를 받고 수사에 들어가 찬퉁카이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대만 당국 연락을 받은 홍콩 경찰은 같은 해 3월 찬퉁카이를 체포해 범행을 자백받았다. 그러나 처벌은 쉽지 않았다. 홍콩 당국은 찬퉁카이를 범행지역인 대만으로 송환할 수 없었다. 대만 당국은 신병을 인도받아 살인죄로 기소하기를 원했지만 홍콩은 대만과 범죄인 인도 조약을 맺지 않고 있다. 홍콩도 처벌할 수 없었다. 홍콩은 속지주의를 채택하고 있어 홍콩 내에서 죄를 저지른 내국인·외국인에게만 형법을 적용한다.
홍콩 당국은 궁여지책으로 그에게 여자친구의 돈을 훔친 절도와 장물처리 혐의를 적용했다. 찬퉁카이가 홍콩 도주 뒤 판샤오잉의 현금카드로 돈을 인출해 사용한 것을 발견한 것이다. 지난 4월29일 찬퉁카이에게 2년5월의 징역형이 선고됐고, 홍콩과 대만 모두에서 ‘살인하고도 무죄인가’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 어떻게 정치적 시위가 됐나
문제는 홍콩 당국이 이 사건을 구실 삼아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 등에도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도록 ‘범죄인 인도 법안’을 밀어붙인 것에서 시작됐다. 홍콩 당국은 올해 3월29일 법안을 마련하고 4월3일 입법회 본회의에서 1차 심의를 하는 등 법안을 일사천리로 밀어붙였다. 6월12일 2차 심의가 예정돼 있었다. 홍콩 정부 수반인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과 정부, 친중파 의원들이 주도했다.
그러자 많은 시민들이 시위에 나섰다. 중국 정부가 이 법을 악용해 홍콩 거주 중국인은 물론 홍콩의 반중국 인사나 인권운동가를 중국 본토로 잡아가면서 홍콩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2015년 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비판하는 ‘금서’ 출판 관련자 5명의 실종사건을 지켜본 터라 반발이 거셌다.
재야단체 민간인권전선 주도로 시작된 반대 집회는 점점 규모가 커졌다. 4월10일에는 103만명까지 참가자가 늘었다. 2차 심의가 예정됐던 6월12일 입법회 인근에 수만명의 시위대가 몰리자 경찰은 무력 진압했고 8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이에 람 장관은 6월15일 송환법 추진 중단을 선포했지만 다음날 홍콩 인구의 27%인 200만명의 시민들이 송환법 완전 철회, 폭력 진압 진상규명, 람 장관 사퇴 등을 요구하며 거리로 쏟아졌다. 홍콩 반환 기념일인 지난 7월1일에는 시위대 일부가 입법회 입구를 부수고 강제진입했다. 지난달 21일 일부 시위대는 중국 중앙정부 대표기관인 ‘중앙인민정부 홍콩특구 연락판공실’ 앞으로 몰려가 중국을 상징하는 휘장에 검정 페인트를 뿌렸다. 중국 정부에 대한 반감을 드러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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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갈등으로 비화되나
미·중도 충돌했다. 홍콩 친중국 매체들이 지난 6일 미국 영사가 시위 주도자들을 만난 사실을 공개한 것이 시발점이 됐다. 매체들은 해당 영사 실명·얼굴 사진 등은 물론이고 영사 자녀의 이름까지 공개했다. 이에 미 국무부는 8일 ‘폭력배 정권’이라고 비난했고, 홍콩 주재 중국 외교부 사무소는 “강도 같은 논리”라고 다시 반박했다.
영국도 뛰어들었다. 도미닉 라브 영국 신임 외무장관은 지난 9일 람 장관과의 첫 통화에서 “폭력이 (홍콩 시민) 다수의 합법적 행동에 그늘을 드리우면 안된다”며 중국군 투입을 반대한다고 했다. 중국 화춘잉(華春瑩) 외교부 대변인은 같은 날 입장발표에서 “무책임한 내정간섭을 중단하라”고 했고,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도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중국은 이미 (아편전쟁으로 홍콩을 영국에 빼앗긴) 1842년의 중국이 아니다”라고 했다.
■ 중국 인민군 투입하나
시위대 반중 정서 심해지자
중국 “색깔혁명” 강경 대응
군대 투입 가능성까지 거론
미·영 ‘국제 외교전’ 가능성
중국 당국 반응도 격해졌다. 지난 7일엔 홍콩 시위 사태를 정권에 대한 도전인 ‘색깔혁명’으로 공개 규정하고 인민군 투입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중국에서 홍콩 사무를 총괄하는 홍콩·마카오사무판공실 책임자인 장샤오밍(張曉明) 주임은 선전에서 열린 홍콩 시국 좌담회에서 “일국양제 마지노선에 도전하는 것”이라며 “명백한 ‘색깔혁명’의 특징을 가진다”고 했다. 이어 “중앙정부는 여러 동란을 평정할 다양한 수단과 강한 힘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중국이 시위 핵심 주동자 1000여명의 신상을 파악하고 강한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다. 만약 중국이 군사력을 투입하면 ‘제2의 톈안먼 사태’가 될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다만 국제도시인 홍콩에 군을 투입할 경우 후폭풍이 톈안먼 사태 때보다 클 것인 만큼 중국 당국이 실제 행동에 나설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군사력 투입이 이뤄질 경우 홍콩 시위를 지지했던 미국·영국 등이 반발하는 등 홍콩을 둘러싼 국제외교전이 격화될 가능성이 있다. 송환법 반대의 본질을 가리고 외부 ‘적대세력’의 개입을 부각시키려는 중국이나, 미·중 무역갈등 와중에 중국을 비판할 구실을 찾은 미국으로선 물러날 여지가 없다. 이런 상황들을 감안할 때 시위 사태가 조용히 마무리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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