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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문화와 삶]유서 같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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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가까이 음악인들을 지켜봐왔다. 대부분 스스로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고 부르는 친구들이었다. 모두 시작은 미약했다. 끝은 각기 달랐다. 입소문을 타고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 친구들이 있었다. 어쩌다 출연하게 된 방송을 통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친구들이 있었다. 차곡차곡 한 단계씩 스스로를 알리며 대기만성을 이룬 친구들이 있었다. 재능이 있다 하여 모두 성공한 건 아니다. 나는 안타깝고 괴로웠다. 운이 따르지 않아 결정적 고비에 기회를 놓치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잠시 반짝했던 영광의 순간을 잊지 못하고 현실을 외면하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세월과 정비례로 증가하는 현실의 무게에 눌려 빛나던 총기를 잃은 친구들을 볼 때마다.

경향신문

불운의 소산일 때도 있지만 그보다는 ‘예술가의 자존심’을 내려놓지 못한 탓이 컸다. 무대의 조명 아래서는 결코 드러나지 않는, 일상의 형광등 아래서 간혹 드러나는 그림자를 친구들은 화려한 조명의 기억으로 덮으려고 했다. 음악인들이니 자신이 만든 곡과 무대 위에서의 연주를 통해 자신을 드러냈겠지만 예술인으로서 모두 보여줄 수 없는, 현실인으로서의 자신은 생활의 현장에서 계속 닳아가고 있었다.

20년 가까이 글로 먹고살았다. 주로 남의 이야기를 썼다. 음악에 대해 썼다. 이렇게 저렇게 돌아가는 세상에 대해 썼다. 내 이야기를 쓴 적은 없다. 처음 글로 온전히 밥을 책임질 수 있었을 때는 맹렬히 내 이야기를 쓰기도 했다. 그 글을 묶어 책을 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책은 망했다. 홍보 한번 제대로 못하고 묻어야 했다. 그 후로 나에 대해 써본 적이 거의 없다. 어차피 책 한 권으로 큰 반향을 일으킬 생각은 없었다. 나는 계속 썼다. 남에 대해 썼다. 글은 때로 다른 부가가치의 시작점이어서 강연과 방송 같은 다른 활동도 따랐기에 혼자 사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먹을 만큼 먹고 마실 만큼 마시고 놀 만큼 놀 수 있었다. 오늘 일하고 오늘 놀았다. 사는 게 마냥 재미있었다. 사는 게 재미없다는 평범한 친구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나이는 계속 쌓였고 세상도 그만큼 변해갔다. 글을 쓸 수 있는 잡지는 매년 사라졌다. 긴 글을 읽는 사람들도 매년 줄어갔다. 물론 지금도 사라지고 지금도 줄어간다. 글로 전달되던 내용들은 영상으로 전달된다. 그 와중에도 마감 때마다 머리를 싸매고 자판을 두드리는 내가 마치 타이태닉호에서 연주하는 사람이 된 기분이 들곤 했다. 그럼에도 스스로 위안하곤 했다. 오만가지 핑계를 대가며 현실을 외면했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게 아니라고. 어쩔 수 없었다고. 반성보다는 도피로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남아 있는 게 없었다. 현실이 바짝 목을 죄어오고 있었다. 나는 그 현실이 자객처럼 다가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보병부대였다. 뚜벅뚜벅 진군해왔다. 사주경계를 하지 않았을 뿐이다. 음악 하는 친구들처럼 ‘예술가의 자존심’ 따위에 빠져 있었던 것일까. 내가 예술가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얼마전에 편의점 아르바이트에 지원했다. 이렇게는 안되겠다 싶었다. 글쓰는 사람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일을 해보고 싶었다. 간단한 이력서를 제출했다. 나이 지긋한 점장은 “이렇게 화려한 경력을 가지신 분이…. 하실 수 있겠어요?”라고 물었다. 화려하다니요.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며칠 후 연락이 왔다. “미안합니다. 다음 기회에 뵙겠습니다.” 그가 나한테 미안해야 할 까닭은 없다. 문자를 들여다보며 많은 것들에 대해 미안해졌다. 과거의 나에게, 나의 현실 도피로 속 끓인 사람들에게. 친구들을 안타까워할 필요가 없었다. 일로 인해 생긴 약간의 조명으로 창백한 형광등 불빛을 덮으려 한 건 오히려 나였다. 친구들이 힘들다고 했다면, 그 속내를 좀 더 자주 주고받았다면, 힘든 속마음을 나도 좀 더 쉽게 털어 놓을 수 있었을까. 반성한다. 남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의 일부만이라도 나 자신에 대해 온전히 썼다면, 이야기했다면 어땠을까 하고. 유서 같은 글 한 편이라도 썼다면 어땠을까 하고.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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