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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 (목)

건보료 18개월 밀렸는데…봉천동 탈북 모자 죽음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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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2892명 늘렸지만 구멍

위기가정 체크시스템도 유명무실

재개발 임대아파트라 작동 안해

기초수급비 등 도움도 못받아

중앙일보

건보료 메인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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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악구 탈북자 한모(42)씨와 아들 김모(6)군의 사망은 사회보장시스템의 한계를 보여준다. 아파트 월세·전기요금·수도요금·가스요금, 건강보험료 등이 18개월 가량 밀려 있었지만 복지 안전망에서 체크되지 않았다. 게다가 정부가 지난해 8월 충북 증평군 모녀 사건을 계기로 위기 가구 발굴 대책을 대폭 강화하고, 사회복지 공무원 2892명을 채용했지만 두 달 가량 지날 때까지 사망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모자(母子)는 지난달 31일 자신이 사는 임대아파트 관리인이 발견했다. 경찰이 집을 조사했을 때 냉장고에 물·쌀 등의 음식이 없었다고 한다. 먹을거리라고는 고춧가루뿐이었다. 통장 잔고 ‘0원’이었다. 한씨가 마지막으로 5월 중순 3858원을 인출했다고 한다. 경찰은 부패 정도를 봐서 모자가 5월에 숨진 것으로 추정한다. 관악경찰서 관계자는 “타살이나 자살 정황이 없어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했다”고 말했다. 그는 “냉장고에 음식이 없었다는 사실만으로 굶주려서 숨졌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통장엔 0원, 집에 물·쌀도 없어

보건복지부·관악구청·경찰 등에 따르면 한씨는 아파트 월세(임대료)와 전기·수도·가스요금 18개월 치를 안 냈다. 가스요금 45만원을 포함해 480만원의 임대료와 공과금이 밀렸고 임대보증금(1074만원)에서 제했다. 한씨는 1년여 동안 중국에 살다 지난해 9월 아들과 둘만 귀국해 관악구 임대아파트(그동안 비워둠)에 다시 들어갔다. 주민센터에 찾아가 아동수당·가정양육수당을 신청해 각각 10만원을 받았다. 당시 정부 자료에는 한씨의 소득이 없고 금융소득 300만원이 나왔지만 이 정도는 공제대상이어서 소득인정액을 0원으로 확정했다. 그런데도 기초수급자로 보호받지 못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소득인정액이 0원이면 관할구청이 기초수급자로 보호해야 했는데 왜 안 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만약 근로능력이 있는 기초수급자로 인정됐으면 자활사업에 참여해 최소 월 160만원의 소득을 올릴 수 있었다.

한씨는 올 1월 중국인 남편과 이혼하면서 한부모가정이 됐다. 이혼 사실이 정부 자료에 들어왔지만 한부모가정 복지 제도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 18세 미만의 자녀를 둔 저소득 한부모가정은 월 20만원의 양육비를 받는다. 하지만 한씨가 신청해야 하는데, 그러질 않았다. 제도를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어느 누구도 이를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한씨의 복지 혜택은 20만원이 전부였고, 올 4월 아들이 6살이 되면서 아동수당이 끊겨서 가정양육수당 10만원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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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사각지대 발굴시스템의 허점.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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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사각지대 발굴관리시스템(이하 발굴시스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이 시스템은 정보기술(IT) 강국인 한국이 자랑하는 거의 세계 유일의 제도다. 전기요금·수도요금·가스요금·관리비·임대료·건보료·연금보험료 체납, 금융(이자) 연체 등 14개 기관의 29가지 정보를 종합해 위기 징후 가구를 파악한다. 29가지 빅데이터를 토대로 두 달마다 500만 명의 위기 예상 가구를 머신러닝으로 5만 명을 선별한다. 종전에 기초수급자·차상위계층·한부모가정·긴급복지대상이었던 사람을 골라낸다. 이 명단을 지자체에 통보해 공무원이 방문 확인한다. 하지만 한씨는 월세·전기요금·수도요금을 18개월 체납했지만 복지부에 통보되지 않아 발굴시스템에서 발견하지 못했다.

한부모가정 지원도 몰랐을 가능성

왜나하면 한씨 아파트가 공공임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 시스템은 공공임대주택 중 영구임대·국민임대·매입임대 주택만 관리한다. 한씨 집은 재개발 임대아파트라서 빠졌다. SH공사가 위탁 관리한다. 관리사무소가 SH공사에 체납 사실을 보고했지만 발굴시스템으로 가지 않았다.

게다가 전기·수도 요금은 아파트 통합 관리비에 포함돼 있어서 한전이나 상수도사업본부에서 파악할 수 없었다. 복지부의 다른 관계자는 “아파트 통합 관리비에 전기요금과 수도요금이 들어있어서 단독주택 등이 아니라면 단전·단수 가구를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씨는 건강보험료를 18개월 체납했다. 건보료는 6개월 체납하면 발굴시스템에 통보한다. 한씨가 지난해 9월 입국하면서 건보료 체납 사실이 복지부의 이 시스템에 통보됐다. 하지만 머신러닝에서 위기가정 5만 명을 선별할 때 건보료 체납의 비중이 작아서 한씨는 방문 확인 대상에 들지 못했다.

정부는 지난해 증평 모녀 사건 이후 복지 위기 가구 발굴 및 지원 대책을 쏟아냈다. 전국 읍·면·동의 찾아가는 보건·복지 서비스를 전국으로 확대했다. 주민센터의 복지전담팀이 도움이 필요한 주민을 직접 찾아나선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지난해 9월 사회복지 공무원 2892명을 채용했다. 하지만 한씨 모자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복지부 고위 관계자는 “복지 사각지대 발굴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다른 나라에서 시도하지 않는 적극적 행정”이라면서 “앞으로 계속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전국의 모든 아파트관리사무소에 월세 등의 체납 사실을 의무적으로 신고하고 건보료 체납기간을 6개월에서 3개월로 줄이는 내용을 담은 법률 개정안이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고 있다.

관악구청 관계자는 “주위에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구청에 알려달라고 ‘복지 통장’이나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홍보한다. 하지만 한씨는 외부 활동을 별로 하지 않았다. 밖으로 많이 활동했으면 알았을 텐데”라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이태윤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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