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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금)

[NEWS&VIEW] 홍콩 놔두자니 '하나의 중국' 상처, 때리자니 경제가 치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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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딜레마]

中군부 "선전서 홍콩 10분" 경고

조선일보

지난 13일 홍콩 시위대가 점거한 홍콩 국제공항에서 중국인이 구금·폭행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제 중국인의 신변까지 위협하는 지경에 이른 홍콩 시위대를 향해 중국 정부는 "테러리스트와 다를 바 없다"며 시위대를 거세게 비난했다.

14일 오후 홍콩 공항은 정상화됐지만 급기야 중국 군부는 '선전에서 홍콩까지 10분이면 된다'는 경고 메시지를 날렸다. 오는 10월 건국 70주년이 다가오면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시간에 쫓기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는 분석까지 더해지면서, 중국의 무력 개입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하지만 군 투입이라는 카드는 그 후과(後果)가 너무 큰 자해적 수단이라는 게 시 주석의 딜레마다.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자유무역 질서에 편입되면서 초고속 성장을 구가해온 중국이 1989년 톈안먼 사태 때처럼 자신의 주권하에 있는 시민에 대해 무력 진압을 고민하고 있다. 미국이 허락한 자유무역의 사다리를 통해 경제 대국에 올라섰지만 정치 체제 면에선 30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못한 채 1997년 홍콩의 주권을 돌려받은 중국이 더 이상 홍콩을 품을 수 없는 본질적인 위기에 맞닥뜨린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홍콩 시민이 요구하는 정치적 자유 확대를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하고 '하나의 중국'만 강조하고 있다. 이번 사태에 대한 정치적인 해결이 막힌 상태에서 홍콩 시위 사태는 이제 무력 진압 외길로 향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하지만 자유무역의 혜택을 고스란히 받은 중국이 자유무역의 상징과도 같은 홍콩을 억압하려는 역설에, 국제사회의 우려와 비판 또한 갈수록 커지고 있다. 설상가상 미·중 무역 전쟁, 대중(對中) 원심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대만 문제까지 겹쳐 홍콩 사태는 난해한 고차방정식으로 변했다.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미치 매코널 미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등 국제사회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만약 중국이 무력 진압을 할 경우 "덩샤오핑 시대 이래 쌓아올린 40년 개혁·개방 역사를 거스르는 행위"라거나 "WTO에 가입해 자유무역의 혜택을 가장 많이 입은 나라가 어떻게 자유무역의 금자탑과도 같은 도시를 진압하느냐"는 거센 비난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조선일보

헬멧과 보호구를 착용한 경찰들이 13일(현지 시각) 홍콩 국제공항에서 공항을 점거한 시위대를 향해 분사기로 최루액을 뿌리고 있다(왼쪽 사진). 미국의 우주기술 업체 맥사 테크놀로지는 홍콩 인근 도시인 중국 선전의 대형 스타디움에 12일 군용차들이 집결해 있는 모습을 촬영한 위성사진을 공개했다(오른쪽 사진). /로이터·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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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중국 여론은 전날 홍콩 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중국인 구금, 폭행 사건에 대한 비난으로 들끓었다. 시위대가 '중국 본토 경찰'이라며 한 중국 국적 남성의 손발을 묶고 집단 폭행해 그가 의식을 잃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4시간 만에 홍콩 경찰에 구조된 이 남성은 자신은 선전 출신으로 친구들을 만나러 공항에 왔다고 주장했다.

시위대는 중국 환구시보 기자도 구금·폭행했다. 중국 매체들은 카트에 손발이 묶인 이 기자가 "나는 홍콩 경찰을 사랑한다. 때리려면 때리라"고 외치고, 시위대가 그에게 물을 퍼붓고 발길질하는 장면을 종일 방영했다. 당시 현장에서 폭행 주도자를 체포하려던 한 경관이 권총을 뽑아들고 시위대를 겨냥하는 일촉즉발의 상황도 일어났다.

중국 정부는 시위대를 거세게 비난했다. 홍콩 관련 사무를 총괄하는 중국 국무원 홍콩·마카오 사무판공실과 홍콩 주재 중앙정부 연락사무소는 14일 나란히 성명을 내고 홍콩 시위대를 향해 "테러리스트와 다를 바 없다"고 비난했다.

같은 날 중국 군부에선 홍콩을 겨냥한 경고가 나왔다. 중국 광둥성을 관할하는 인민해방군 동부전구 육군이 자체 위챗(중국판 카카오톡) 미디어인 '인민전선'에서 "선전에서 홍콩까지 10분"이라고 보도한 것이다. 인민전선은 선전만 부근 춘젠 체육관에 군용 도색을 한 차량이 대거 대기하는 사진을 게재하고, "10분이면 홍콩에 도착할 수 있으며 홍콩 공항에서 56㎞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고 위협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중국 외교 담당 정치국원인 양제츠가 13일 전격적으로 방미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회담한 사실이 공개됐다.

오는 10월 중국 공산당 건국 70주년 행사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시 주석 등 공산당 지도부도 더 이상 홍콩 사태 해결을 미룰 수 없는 상황에 몰리고 있다. 사상 최대 규모 군사 퍼레이드 등 대대적인 행사로 미·중 무역 전쟁 와중에 위신을 세우려는 시 주석으로선 홍콩 사태를 더 끌었다간 '중화민국의 위대한 부흥' '중국몽'을 내세운 자신의 체면이 구겨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치적 해법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결국 중국의 무력 개입으로 사태가 끝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홍콩에 군을 투입하는 '합법적인' 방법은 홍콩 정부의 요청에 응하는 경우다. 홍콩 기본법과 홍콩 주둔 인민해방군법은 "홍콩 주둔 인민해방군은 홍콩 정부가 중국 중앙정부에 요청하고 그 요청이 승인될 경우 홍콩에서 공공질서 유지를 도울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하지만 아무리 이런 합법적인 절차를 밟는다 해도, 홍콩에 대한 군 투입은 그 자체만으로도 중국에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 홍콩이라는 고도의 자본주의, 자유로운 정치 체제를 중국 공산당이 제대로 포용할 수 없음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격이기 때문이다. 대규모 자본 유출이 발생하고, 글로벌 인력들이 홍콩을 등지면서 중국 대외 개방의 창구이자 아시아의 금융 허브였던 홍콩 경제는 몰락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분석이다. 한마디로 30년 전 톈안먼 사태 때의 중국과 달리 지금의 중국은 잃을 게 너무 많다는 것이다.

군을 투입한다고 홍콩 상황이 바로 정리된다는 보장도 없다. 과격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홍콩 청년층의 극도의 분노와 반중 정서로 인해 중국의 군 투입이 유혈 사태로 번져 '제2의 톈안먼 사태'가 되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더구나 올해는 톈안먼 사태 30주년이다. 시 주석으로선 2013년 집권 이후 쌓아온 미국에 맞선 글로벌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한 방에 날리고 학살자로 전락할 수도 있다.

'일국양제'에 기반한 대만과의 평화로운 통일도 물 건너간다. 내년 1월 대선을 앞둔 대만은 대만 독립파인 차이잉원 현 총통과 친중 성향 국민당 한궈위 가오슝 시장의 양자 대결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당초 열세였던 차이잉원 총통은 홍콩 시위 사태 이후 "홍콩에서의 일국양제는 이미 실패했다"며 표심을 자극해왔다. 만약 군 투입이 이뤄질 경우 2600만 대만 민심이 중국에 등을 돌릴 수 있다.

이런 딜레마 속에 중국 정부는 홍콩 정부를 더욱 강하게 독려하고 있다. 14일 성명에서 중국 국무원 홍콩·마카오 사무판공실과 홍콩 주재 연락사무소는 "이런 극악무도한 강력 범죄는 법에 따라 엄벌해야 한다. 우리는 홍콩 경찰과 사법기관들이 단호하게 법을 집행하고 법을 엄정하게 집행하는 것을 강력히 지지한다"고 밝혔다.





[베이징=이길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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