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 고속도로의 '신공항 톨게이트' 모습. |
정부가 ‘깎아준다’는 표현을 써가며 가격을 계속 내리고 있는 요금이 있다. 민자고속도로 통행료 얘기다. 지난해 10월 인천공항 고속도로 통행료가 6600원에서 3200원으로 내린 걸 비롯해 전국 대부분 민자고속도로가 순차적으로 가격을 깎았다. 가격 인하는 어디서든 환영을 받는다. 내가 내는 돈이 줄어든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 같은 할인 정책이 본격화된 건 지난 2018년 8월 문재인 정부가 반년간 연구, 관계 기관 협의를 거쳐 ‘민자고속도로 통행료 관리 로드맵’을 내놓으면서다. 국민 부담을 줄이는 정책 추진 내용이 대대적으로 홍보됐고 별 반대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러나 공짜는 없다. 모든 민자고속도로 통행료는 물가 상승률 등을 고려해 올라가도록 설계·협약돼 있다. 통행료 미인상에 따른 부족분은 정부가 물어야 한다. 실제 매년 정부가 민자고속도로 운영사에 주는 지원 금액은 크게 증가하고 있다. 내년 정부 예산을 살펴보니 지난해 16개 민자고속도로의 정부 지원액은 930억원에서 1885억원으로 2배 늘어난다. 통행료 인하 정책의 청구서가 날아오는 셈이다.
정부 돈을 들여 민간 운영사의 손실을 보전한다는 건 고속도로를 이용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짐을 지운다는 뜻이다. 인천공항 고속도로를 한 번도 이용하지 않은 사람도 통행료를 함께 분담하라고 하면서 ‘가격 인하’란 말을 쓰는 건 언어유희일 뿐이다.
더욱이 정부는 통행료를 낮춘 대신 유료 도로 운영 기간도 대폭 늘려놨다. 인천공항 고속도로의 경우 애초 2030년까지만 유료 도로로 운영될 예정이었지만, 통행료를 깎은 탓에 2061년까지 유료 도로로 유지된다. 유료 도로로 운영되는 기간이 늘어나면 유지비 등 총액도 늘어나 결국 국민 부담도 커지게 된다는 게 전문가들 견해다. 민간 회사 입장에서도 달가운 결정일 리 없다. 이들은 빠른 자금 회수가 중요하다. 기간이 길어지는 건 리스크다.
정부는 예산 과다 지출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통행료를 낮춘 일부 사업을 한국도로공사 같은 공기업에 떠넘기기도 한다. 실제 내년 민자고속도로 운영사에 대한 정부 지원 금액이 1885억원에 그치는 것도 인천공항, 대구~부산, 천안~논산 등 민자고속도로 사업을 재구조화해 국가 예산이 아니라 한국도로공사 등이 보전하는 방식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돈을 내는 주체만 변경한 것인데, 이 3개 민자 고속도로 운영사에도 연간 3500억원 규모 금액을 내야 한다. 한국도로공사는 지난해 연말 기준 부채 규모가 38조원이 넘는다. 일평균 이자로 갚아야 할 돈만 27억원이다.
외면하고 싶은 얘기지만, 애초부터 통행료를 깎아준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민자도로는 이용한 이들의 통행료를 통해 운영되는 게 기본 원칙이다. 지금이라도 통행료 현실화에 나서야 한다.
[김아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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